지난 2일 국정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으로 많은 말을 했다. 그 중에서 '언론개혁'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와 몇 가지 대안까지 제시했다. 특히 공정한 의제, 정확한 정보, 냉정한 논리가 언론의 기능인데 이를 언론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통해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 표명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어쨌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데 오비이락의 혐의가 짙은 것도 사실이다. 노대통령의 언론개혁과 관련된 그 동안의 주장은 대부분 청와대 및 정부여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때만 나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번 발언도 청와대 부속실장의 접대파문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노대통령이 진심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갖게 만든다. 또한 공공성 강화를 통해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과 법제화의 대안과 전략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이런 철학과 정책 및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감정 섞인 문제제기만 풍성했다. 한데 이런 문제제기의 대상에 대한 적의에 가까운 감정도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다. 노대통령의 감정이 집중되고 있는 대상이자 언론개혁의 제1차 대상이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 같은데, 과연 조중동과 노대통령의 코드가 무엇이 다른지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대통령이 조중동에 대해 포문을 열 때마다 걸려 있는 문제는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다. 소위 신기득권층과 구기득권층의 벌이는 날카로운 정쟁과정에서 노대통령은 어김없이 '언론개혁' 발언을 해왔다. 분명한 것은 정치영역을 두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코드는 노대통령 및 청와대의 코드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닌 바에 여러 영역에 관한 노대통령과 조중동의 코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냉정히 보면 정치를 제외한 다른 거의 모든 영역에서 조중동과 노대통령의 코드간에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노동ㆍ농업ㆍ환경ㆍ경제ㆍ통일ㆍ외교 등을 살펴보면 노대통령이 보수언론 특히 조중동에 대해서 지난 2일처럼 그렇게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들 영역에서 청와대와 조중동은 거의 일치하는 '코드'를 과시해왔기 때문이다.
철도 노동자 파업에 대한 경찰투입 및 약 1백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 농민들의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비준반대투쟁 탄압, 새만금사업 강행기조 유지 및 핵폐기장 설립 부안군민 반대시위 폭력진압, 법인세 인하, 햇볕정책의 사실상 폐기,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지지 및 파병 등 노대통령의 입장과 이를 적극 지지해 온 조중동의 보도태도를 보면, 도대체 어떤 점에서 노대통령과 조중동의 코드가 다른지 찾아낼 길이 없다.
오로지 정치영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치하고 상부상조하는 노대통령과 조중동의 관계를 보건대, 노대통령이 조중동을 그토록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다른 영역은 다 보수화했지만 언론개혁은 초심을 유지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조라고 할지라도 지금처럼 시민사회단체를 관변단체나 어용단체로 전락시키는 발언이나 홍위병 논란에 끌어들이는 발언은 안된다. 언론개혁은 불평불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여당의 정책으로 말하는 것이고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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