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과 베트남이 외교관계 수립협정을 체결한 것은 왠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20년 후’를 떠올리게 했다. 다정했던 두 친구가 20년 뒤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 뒤 약속대로 만나게 되나 한 친구가 다른 한 친구 때문에 쇠고랑을 차게 되는 이야기다. 그 20년 사이에 한 사람은 경찰의 길을 걸었고 다른 사람은 범죄로 이름을 날려 현상범인이 돼 있었던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의 수교에 무슨 문학적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다. 미국이 야반도주하듯 베트남을 떠난 지 정확히 20년 뒤에 다시 만난 것이 소설의 제목을 떠올리게 했을 뿐이다. 20년 전에는 원수로 헤어진 두 나라가 악수를 한 것도 친구였던 두 사람이 경찰과 범인이라는 적대관계로 바뀐 소설과는 반대다.
그러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20년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은 두 경우가 마찬가지다. 미국에 대한 증오가 풍화돼 다시 만난 것이 그렇고 그 사이 너무 달라진 상대의 모습도 소설 같다. 베트남은 해방전쟁을 치를 때의 당찬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외로운 모습이었다. 20년 전 베트남의 해방을 축하해 주던 소련 등 ‘형제’들은 보이지 않고 앞에는 ‘대형’같은 미국이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은 사치스런 생각이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복구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고 여기에는 대형의 도움이 필요했다. 2001년 미국-베트남 무역협정이 발효되자 이듬해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20억 9천만 달러( 11월말 현재)로 116%나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런 사정을 빤히 아는 미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도 6년이나 뜸을 들인 끝에 무역협정을발효시킨 것은 해방전쟁의 패자가 승자에게 가하는 얼차려 같았다.
미군과 베트남 여인들 사이에 태어나 ‘부이도이(먼지 같은 인생) 집단수용소’에 수용됐던 ‘아메리시안’들도 살아 남은 자들은 모두 20세가 넘는 청년이 된 것도 세월의 무게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마침 그 무렵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뉴욕서 한참 히트할 때였고 바로 그 해는 한국의 이소정이 제9대 ‘미스 사이공’으로 열연할 때였다.
베트남과는 원래 거리가 먼 영국에서 89년 공연된 이 뮤지컬은 사이공의 술집에서 미군병사 크리스와 만나 결혼한 베트남 여인 킴의 아메리칸 드림과 그 비극을 그린 것이자 아메리시안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킴을 데리고 가지 못한 채 떠난 크리스는 다시 결혼을 하고 그의 아이를 낳은 킴은 그를 찾아갔으나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자살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판 나비부인’이라는 말을 듣는 이 뮤지컬을 두고는 아시아 여성을 너무 모독한다는 것에서부터 미국의 베트남전을 합리화한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지만 ‘미스 사이공’이 태어난 배경을 살피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 뮤지컬은 85년에 신문에 나온 한 사진과 기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킴처럼 아메리시안을 낳은 여인이 남편의 소재를 알게됐으나 이미 부인이 있어 본인은 갈 수 없게되자 아이만이라도 풍요한 미국에 보내게 되자 공항이 울음바다가 되는 사진이었다. 그것이 해방전쟁을 이룬지 10년 뒤고 그 10년 뒤에는 미국과 수교를 하게 됐으니 무엇을 위한 20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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