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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Why not"과 "왜 안그러겠어"의 차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5> 영어이야기 7

***why not**

뉴질랜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 일년 정도나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아이가 내가 무엇을 물어볼 때마다 '왜 안그러겠어' 라고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밥먹을래 하고 물어보면 왜 안 먹겠어 라고 대답을 한다거나 도서관 갈래 하면 왜 안가겠어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은 그냥 들어주었지만, 계속 그렇게 대답하는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어른이 말을 하면 예 아니오 존대말은 못할 망정, 응 아니 라고 라도 대답을 해야지 왜 안그러겠어 라고 되바라진 대답을 하다니. 도저히 못 참겠다 하고 아이를 앉혀놓고 막 야단을 쳤다. 너 무슨 말버릇이 그러냐, 엄마가 네 의견을 물어보면 예 하든지 아니오 하든지 둘 중 하나이지 왜 안그러겠어 라니. 왜 그렇게 버릇없이 말하니 등등 화를 잔뜩 내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야단 맞는 아이의 표정은 도저히 자기가 왜 야단을 맞는지 모르고 그냥 엄마가 화를 내니까 그냥 알았다고 해주는 것 같았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자기가 잘못한 것도 모르다니 더욱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반성하는 표정이 아니라는 것까지 트집잡아 야단치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았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갑자기 머리를 한대 쾅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왜 모르겠다는 표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 아이가 정말 뭐가 잘못이었는지 몰랐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가 왜 안그러겠어 라고 말한 것은 한국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why not을 한국말로 그대로 옮겨놓은 말이었다.

영어를 배우고 있는 아이가 영어를 그대로 한국말로 옮겨 써먹다가 혼난 거다, 무식한 엄마에게.

우리 말을 그대로 영어로 옮겨놓아 콩글리쉬가 되듯이 영어를 그대로 우리 말로 옮겨놓고 보니 예의없는 말이 되고만 거다. 다시 아이를 붙잡고 설명했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고 내가 네 말이 영어를 한국 말로 옮겨 놓은 걸 이제 알았다, 그런데 한국 말로는 너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 무척 버릇없는 말이고 특히 어른에게는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안된다고 말해주었더니 그 때서야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가 한국말을 해도, 물론 지금까지 나하고는 한국말만 하지만, 그 말이 정말 한국말인지 아니면 영어식 표현을 한국말로 하고 있을 뿐인지 생각해본다.

***anemia, amnesia**

속이 답딥한데 트림도 잘 나오지 않고 자다가 깨는 일이 많아졌다. 배가 고파지는 일도 없었다. 이 곳에 온 지 한 3, 4 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한 두 주일 참다가 병원에 갔다. 속이 답답하다, 뭐가 얹힌 것 같다, 명치 끝이 답답하다 등을 도대체 영어로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난감한 생각에 한영사전을 들고 갔다. 내가 말하는 것을 못 알아들으면 사전을 찾아 이것이다라고 보여주려고. 다행히 의사가 아주 친절한데다가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어서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 내가 열심히 말했는데 상대방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처럼 난감하고 말을 막히게 만드는 일이 없다) 그 사전을 펼쳐보이지 않아도 되었다.

의사는 진찰을 하더니 위에 염증이 있을 수도 있으니 내시경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나는 내시경 검사를 해본 적이 없지만 남편이 서울서 내시경 검사하고 나서 엄청 고생하고 그 이후 정말로 위가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사는 웃으면서 너 chicken (겁쟁이)이구나 라고 했다. 닭띠인 나는 그래 난 정말 치킨이다고 하면서 띠에 관하여 설명해주고 웃고 넘기려고 했지만 의사는 어린아이도 검사하는데 뭘 겁내냐고 내시경을 받아보라고 계속 권했다. 더구나 내 눈꺼풀 안쪽이 핏기가 없이 너무 하얗기 때문에 빈혈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혹시 위에 출혈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계속 도리질했더니 일단 피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빈혈임을 정확히 알기 위하여 부족할지도 모르는 피를 다시 좀 뽑아주고 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의사가 직접 전화를 했다. 내 피 속에 철분 수치가 정상인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지극히 낮다고 하면서 당장 병원에 오라고 했다. 약간 놀랐지만 빈혈이야 내 평생 달고다니는 것인데 뭘 하는 심정으로 병원에 갔다. 의사는 다시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졸랐다. 그래서 그러면 하자고 했더니 사립병원에 가면 당장 검사할 수 있지만 검사비를 700불 쯤 내야 하고 아니면 자기가 국립종합병원에 의뢰하여 서너 달 기다리면 검사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꼭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급할 일 없다 싶고 공짜로 검사할 일을 돈내고 하기도 아까와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꿀을 사서 먹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 미국에 꿀을 많이 수출했었는데, 그 해 미국의 꿀 농사가 풍년이라 꿀의 수출이 줄어들어 이 나라 꿀 값이 아주 헐했다. 1kg짜리 6개든 한 박스를 50불에 사와 아침마다 공복에 한 숟가락씩 퍼먹었다. 처음에는 티스푼 하나 먹고도 속이 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먹었더니 한 일주일 지나 괜찮아졌고 그 다음부터는 밥숟가락으로 하나씩 푹 퍼서 먹었다. 그리고 나서 배가 고파지면 물 한컵 마시고 다시 배가 고파지면 뭔가를 먹기 시작했다.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었는데, 배고파지는 것이 고마와 나로서는 드물게 꾸준히 먹었다.

5통째 먹고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내시경 검사하러 오라고. 사전을 다시 들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갔다. 내가 왜 검사받을 필요가 있는지는 이미 나의 의사가 소견서를 보냈을테고 나는 이미 정해진 검사를 받을테니 별로 말이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간호원이 검사하기 전에 적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하면서 챠트를 들고 나와 마주 앉았다. 나이 이름 등 인적사항을 묻고, 당뇨가 있냐는 등 병력에 관하여 묻고 나서는 왜 이 검사를 받으러 왔냐고 물었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않은 질문이었다. 아니, 내가 왜 검사받으러 왔는지 모르다니. 내 의사가 보낸 기록이 이 사람들에게 없나 싶어 되물었다. 내 의사가 왜 검사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보내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그것과 상관없이 또 기록을 하는 거라고 했다. 빈혈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려고 생각해보니 빈혈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피가 부족하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 간호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였다. 말하는데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는 말이 엉겨붙기 시작하여 더욱 더 바보 같이 말이 버벅거려진다. 빈혈이라는 단어를 알기는 알았었는데, a, n, m 자가 들어가는 것은 알겠는데 그 정확한 단어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amnesia 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 간호원이 진지하게 그러냐고 하면서 그 단어를 적어넣었다. 나는 속으로 그런 단어가 있나, 아니면 내가 무안할까봐 그냥 내가 발음한대로 적어넣나, 빈혈이라는 단어에 s자는 분명히 없었는데, 엣다 모르겠다, 어쨋거나 내시경 검사하기로 하고 왔으니 내가 무슨 단어를 말했든지 간에 나는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검사대에 누웠더니 마취제는 아니지만 신경안정제를 주사놓는다고 하면서 하나 둘 셋을 세라고 말했다. 나는 손등에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의식이 없어졌다. 한숨 푹 자고 났더니 회복실이었다. 나보다 나중에 검사받은 아주머니가 나보고 이제 깼냐고 하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아주머니는 목구멍 안이 아프다고 하면서 투덜거렸다. 내가 너는 자지 않았니 물으니 잠은 무슨 잠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주사맞으며 한숨 자고 일어나니 개운한데 저 아줌마는 좀 투덜이 스머프 같다 생각하며 일어났다, 간호원 실에 가서 가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간호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검사 결과를 주었다. 위가 그려져 있고 십이지장과 위를 검사했는데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꿀이 효과가 있었나보다 생각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자고 깨었더니 회복실이더라고 말해주었더니 검사를 하기는 했냐고 물었다. 어째 아무렇지도 않은가고, 그러고 보니 나도 좀 이상했다. 다른 아줌마는 그렇게 목이 아프다고 불평했는데.

며칠 후였다. 책을 읽는데 amnesia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책을 보는 순간 어머 진짜 이런 단어가 있네 놀라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의미는 기억상실증, 또는 건망증이었다. 혼자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빈혈이라고 말한다는 게 기억상실증이라고, 아니면 건망증이라고 대답한 셈이니, 또 그 때 그 간호사가 진지하게 끄덕이던 것도 생각나고 이건 완전 코메디였다. 그 날 저녁 남편에게 낄낄거리며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하는 말, “그 사람들이 당신 내시경 검사한 게 아니라 뇌시경 검사한 거 아니야, 아니면 아예 검사를 하지 않았거나, 목도 안 아팠다며” 라고 놀렸다.

글쎄 나도 내가 검사를 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 한가지는 내가 이제는 anemia 빈혈과 amnesia 기억상실증이라는 단어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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