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뉴질랜드에도 이오덕 선생이ㆍㆍㆍ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뉴질랜드에도 이오덕 선생이ㆍㆍㆍ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1> 영어이야기 3

다시 영어이야기 하나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발음 이야기 하다 보니 몇 년 전 <뉴질랜드 헤럴드>(오클랜드 유일의 일간 신문이다. 신문 구독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편하다. 또 시간도 절약된다, 이 신문 저 신문 적어도 두가지 이상 신문을 훑어라도 보아야 했던 서울에 비하면)에 실린 영어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왜 이렇게 영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가. 아마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무의식적인 열등감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동안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말 못하고, 말없이 사는 것이 먼 휴양지에 쉬러 온 것처럼 편안했다. 말에서의 해방을 즐겼다. 일일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조차 은혜로왔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와 기도 중 들리는 말로만으로도 감사와 감격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기 전에 언어 실종의 그 마음 평화로움은 점차 사라져 버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존재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져버리게 되어 있는 운명을 가진 어느 동화 속의 인물처럼 내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간다는 지독한 상실감을 맛보기 시작했다. 자기 언어의 상실은 존재의 상실이다고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바닷가를 거닐어 보았자 우울함만 더해질 뿐.

동시에 어차피 영어 쓰는 나라에 왔으니 영어를 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과 만나 수다 떠는 것을 우리 말로도 즐기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바보처럼 느끼게 만드는 영어로 더듬거리며 이야기하겠다고 일부러 사람 만나고 싶지도 않고, 이곳에서 이민자들에게 가르치는 영어 교실에서는 사실 배울 게 없고, 왜냐하면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문법으로도 수준에 넘치게 많이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대충 읽던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정성들여서. 영어 소설 ‘순교자’를 쓴 김은국 씨가 미국에 처음 도착하여 소설책을 외우며 영어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서이다. 또 말이 별거냐 글 쓰듯이 말하면 되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소설 읽는 것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서.

그래서 꼼꼼이 읽기 시작한 신문에 실린 글은 은퇴한 오클랜드 대학교 영문학 은퇴 교수님인데, 그 글을 읽으면서 이오덕 선생님이 떠올랐다. 일본어로 오염된 우리나라 말을 순수하게 되살리고자 애를 쓰시던 그 선생님이 생각난 이유는 이 교수님도 요새 젊은이들이 쓰는 영어가 영어가 아님을 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뉴질랜드 영어가 원래 영어에 가장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언어 전문가인지 일반인이었는지, 한국 사람이었는지 키위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실제로 미국, 영국, 호주 드라마를 보다가 뉴질랜드 드라마를 보면 귀가 편안해진다. 특히 뉴스 진행자의 발음은 사전에 있는 그대로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 노교수님은 뉴질랜드 젊은이들이 영어를 제멋대로 쓰고 있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뉴질랜드 영어가 영어권 내에서 이해되지 않는 다른 언어가 될 거라는 우려 겸 유감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이 싱가폴에 여행갔단다. 어느 날 숙박하고 있던 호텔의 카운터 직원이 교수님을 찾더란다. 혹시 뉴질랜드에서 오시지 않았냐고, 뉴질랜드에서 온 청년이 그 호텔에 묵겠다고 왔는데, 뉴질랜드 말을 하니까 통역 좀 해달라고 했다나. 물론 그 청년이 쓰는 말은 영어였다, 뉴질랜드 영어이긴 하지만. 이 영문학자께서 그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한심했으면 장문의 논설을 쓰셨을까 이해가 된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영문학을 전공하러 온 학생들조차 영어를 제대로 말하는 학생이 드물었다고 하면서 영어를 정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라고 해서 제대로 말할 때까지 반복시켰다는 이 교수님의 전화번호를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놓았다. 영어를 이 교수님에게 정식으로 배우면 영어를 제대로 잘 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모든 일에 언제나 그렇듯이 가정부주가 제 일을 위해 돈쓰는 일이 쉬운가. 그 전화번호는 몇 년 동안 내 수첩을 옮겨 다니다가 사라졌다. 내가 전화하여 영어교육을 받자고 해서 그 분이 허락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 글이 실리고 며칠 후 반론이 실렸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고 부인이 일본 사람인 키위인데, 오클랜드 대학의 일본어과 강사였다. 그 강사의 주장은 말이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젊은이들이 쓰는 영어가 순수 영어에서 벗어나 뉴질랜드 말이 되어가는 경향도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굳이 순수 영어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영화 Back to the Future 에서 마이클 폭스가 자기 부모가 10대였던 시절로 돌아갔을 때 런치 바에 들어가서 코크를 달라고 주문했더니 주인이 영 못 알아들어 소다수를 달라고 하니까 알아들었듯이 일년에 영어 단어가 5000 개 (나는 숫자를 기억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5자는 맞는다 싶은데, 그 뒤의 동그라미 숫자는 확실하지가 않다, 어쩌면 5자도 틀렸을 수도 있고. 어쨋거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어 그렇게 많이? 라고 놀랐던 느낌은 생생하다.) 정도가 사라지고 또 그만큼 새로 생긴다니 순수함을 고집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싶지만, 그 새로 생기는 단어라는 것이 주로 코크(콜라) 처럼 없던 물건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또는 컴퓨터 디스켓처럼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니 이미 구세대에 속한 나는 그 은퇴 교수님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 이오덕 선생님에게처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