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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때문에 느끼는 존재의 초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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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때문에 느끼는 존재의 초라함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9> 영어이야기 1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곳에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낀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제일 못한다는 것을. 뭐든지 표현되지 않으면 표가 나지 않는 세상에서 언어 능력을 우선 과시할 수 있는 게 말인데, 도무지 영어로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말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얼마나 엉터리로 떠들고 있는지를 자각하면서 계속 말하는 게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산다.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우리 말 단어가 늘어나는 만큼 영어 실력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행복하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어와 독해 실력은 월등 뛰어나지만 우리보다 훨씬 단어도 모르고 문법의 기본도 없는 중국 사람들, 그것도 죽의 장막이 걷힌 지 얼마되지 않는 본토 중국 사람들이 중국말인지 영어인지 구별 안되는 발음으로 엄청나게 떠드는 것을 보는 기분은 엉망이다. 엉망이다 못해 화가 날 때도 있다. 내 발음이 훨씬 더 사전의 발음표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키위들은 내 말에는 파든(Pardon?)을 연발하면서 중국말 같은 영어는 신통하게도 잘 알아듣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아 듣는 것인지 아니면 워낙 쉴 틈 주지 않고 떠드니까 전체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누가 오래서 왔나 내가 솰라 거리면서 살겠다고 온 것을. 그런데 그 놈의 영어가 자존심을 건드릴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살 맛까지 잃어버리게 만든다. 나의 빈약한 표현 능력이 나의 존재의 초라함처럼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8살 전후까지는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울 수 있고 20대까지는 그래도 엔간히 비슷하게 말을 할 수 있지만 30대 이후에는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아예 발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흉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발음을 가끔 우리 아이가 고쳐주려고 시도하는데 그 때마다 이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나는 아이가 따라하라고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한다고 생각하고 또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만, 아이는 서너번 연습시키다가 어김없이 그냥 엄마 맘대로 발음하는 게 낫겠다고 해버리기 때문이다.

발음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억양이 영 어색해서 흉내조차 내기가 힘든 것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모든 단어의 발음보다는 억양으로 말을 알아듣는다고 하는데, 40 평생을 모노 톤의 말을 쓰던 사람이 말에 굴곡을 주는 일이 쉽지 않다. 내가 언젠가 키위 친구에게 너희가 한국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이유는 우리 말이 원래 억양이 없어서 영어를 말할 때도 밋밋하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자 동의를 했다. 그가 택시를 탔는데 동양 사람이 운전사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에 아무 억양이 없어 한국 사람 아니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대답하더라나.

그런데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 발음만 이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들끼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말해달라는 표현이 많다. excuse me, pardon (me), sorry, I beg your pardon, I did not catch you 등등.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말하면서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고 말할 때는 말하는 사람이 너무 작게 소근거려 정말 듣지를 못해서이지 무슨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해서는 아니다. 우리 말은 똑똑 떨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성가대에서 내가 가장 젊은이였다. 아니 어리다고 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일 정도로 모두 다 일흔에 가까운 은퇴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물론 귀가 어두워지고 있는 연세들이기도 했지만 앞에서 말하는 지휘자 말을 못 알아들어 오히려 나보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다음 연습을 언제 할 것인지를 정하면서 지휘자가 자기가 어느 요일은 안된다고 말했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나에게 하는 말, can이라고 말했니, can't라고 말했니. 이럴 때는 내가 영어를 참 잘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나보다 귀가 어두워서 그럴 수 있다고 이 경우에는 양보를 한다고 해도 내가 강의를 듣는 카운슬링 클라스의 친구들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내가 못 알아듣고 친구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가끔 내가 선생님이 '된다고 그런거냐 안 된다고 그런거냐' 물으면 글쎄, 나도 잘 듣지 못했는데 하는 대답을 듣기 일쑤다.

이렇게 속으로 혼자 우겨보아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말해 달라고 하면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이고 자기들끼리 못 알아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건 순전히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그런 나를 영국에서 이민 온 진짜 영국 할아버지 친구가 위로해주었다. ‘영어가 원래 잡동사니라서 그래. 그러니까 한 모음에 발음이 여러 개이고’ 어원이 워낙 여러 종류라 자기들도 어떤 단어는 어떻게 발음하는 건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한글의 모음은 예를 들어 'ㅏ' 는 아 소리 하나지만, 영어의 a는 아, 어, 애, 등등. 사실은 그 발음들 중간 쯤 되는 애매모호한 소리들을 내니 쉽지가 않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이름의 경우에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보는 게 실례가 아니고 또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름을 들으면 어떻게 쓰는지 그 스펠링을 물어보는 것도 보통 일이다. 오히려 이름을 적당히 잘못 발음하거나 많이 듣던 이름이라고 스펠링을 틀리게 쓰는 것이 크게 실례되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라면, 실례지만 이름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아니면 어떤 철자를 쓰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분명히 국민학교도 못 나온 사람 취급당할 거다.

우리 아이 이름에 있는 모음 'ㅏ'를 영어 모음 a 로 표기하는데, 학기 초에는 그것을 'ㅏ'로 발음하지 않고 'ㅐ'로 발음하는 선생님들에게 이름 틀리게 부르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이 우리 아이의 심각한 과제 중 하나다. 나 같으면 적당히 듣고 말텐데 뭘 그렇게 끝까지 선생님에게 틀렸다고 수정해주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우리 아이가 자기 친구 중에 자기 같은 애가 있다는 것이다. 불가리아에서 이민 온 아이로 이름은 ‘요나’, 그 이름의 스펠링은 ‘Iona’, 그래서 선생님들이 부르는 이름은 ‘이오나’ 라는 것이다. 그 아이는 학기 초에 한 두번 항의하고는 선생님이 부르는 그대로 내버려둔다나. 우리 아이가 자기 이름 틀리게 부르는 것을 못 참는 이유가 이곳에 살면서 받은 영향인지 아니면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영어 이름이 필요없다고 하는 그 아이 나름의 자기 것에 대한 고집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름을 발음만으로는 받아 적을 수 없는 나라에 사니까 이 정도 알아들으면서 사는 것도 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영어로 인해 가끔 느끼는 나의 존재의 초라함이 말끔히 사라져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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