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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로 물들이는 것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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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로 물들이는 것은 싫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7>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 나오는 마릴린 몬로를 보고 생겼음직한 금발에 대한 조크가 많다.

예를 들면, 한 남자가 정원 손질을 하고 있는데 그 옆 집에서 금발 미녀가 나와 우체통을 들여다보고는 휙 돌아서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린다. 그리고는 금방 다시 나와서 다시 우체통을 들여다보고 화를 내며 들어가고 또 다시 세번째 나와서 우체통을 들여다보고 화를 내자, 이웃 집 남자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금발의 미녀가 대답하는 말, 내 멍청한 컴퓨터가 You've got mail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연한 영화 제목과 같다) 이라고 자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이처럼 그 내용은 물론 금발은 멍청하고 머리가 나쁘다는 게 주조이다. 그런데 그런 조크가 나온 것은 서양에서도 금발을 선호하기 때문이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나 의사가 허가받은 도둑놈들이라고 하면서도 부모들이 기쓰고 법대나 의대에 보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금발은 멍청하다고 조크하면서도 금발이 되고 싶어한다, 남녀 구별없이.

금발이면 다 금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우리 애가 말할 때까지.

"엄마 진짜 금발하고 가짜 물들인 금발하고 어떻게 구별하는 줄 알아?"

"몰라."

"눈썹이 노랗게 금발이면 진짜 금발이고 눈썹이 다른 색이면 진짜 금발이 아니야."

"어 그러니?"

그러고 보니 눈썹까지 노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갈색이거나 까만 눈썹을 가진 금발이다. 물론 화장을 한 걸 감안하더라도 진짜 금발은 그리 많지 않다. 어쨌거나 금발이 원래 자기네 머리색 중 하나인 백인에게는 금발로 물들인 게 눈에 튀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진짜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자연스럽다, 이태원 가게의 가짜 진짜들처럼.

그런데 동양인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까만 머리는 다른 색이 염색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탈색을 하고 염색했던 노란 머리가 물색이 빠지면서 노란 머리 가끔 섞인 흰머리에다 밑에 새로 나오는 까만 머리까지 합치면 정말 보기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아이가 어느 날 말하기를 포니 클럽 친구 하나가 자기보고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면 어떻겠냐고 했단다.

"아니, 왜?"

"나보고 여기 이민 와서 한국에 몇 번 돌아가 보았느냐고 해서 아직 한 번도 안 갔다고 했더니 나보고 그럼 이제 너는 키위다 고 하면서 머리를 물들이면 진짜 키위가 된다고 했어."

온 지 4년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친구가 놀리느라 한 말인지 아이들의 유치한 진지함으로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듣는 느낌은 놀림받은 거구나 라고 생각되었다. 그 클럽에 있는 아이들은 다 우리 애보다 나이가 많아 고등학생들이었으니까. (물론 학제가 달라 우리나라로 치면 아직 중학생 나이이기는 하지만)

"너는 금발로 물들이고 싶니?"

"글쎄..". 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머리를 물들이면 그 클럽 아이들 사이에 끼기가 더 쉽지 않을까 라고 아이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엄마 생각에는 금발이 동양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거든. 이상하게 그렇단다. 백인들은 이런 저런 색으로 물들여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데, 동양 사람 피부에는 까만 머리가 가장 잘 어울린단다.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주신 대로가 가장 아름답거든. 그래도 만일 정 물들이고 싶으면 들여도 좋은데, 금발로 들이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뒤 별 말 없더니 친구 오빠가 빨간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서는 마음에 안 들어 하루 종일 12번 머리를 감았다나. 12번 머리 감으면 색이 빠지는 염색약이었기 때문에. 그러면서 12번 감으면 빠지는 염색약도 있고 20번 감으면 빠지는 염색약도 있다는 둥 나에게 머리 염색이 영구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임을 알려주는 정보만 제공하더니 염색 이야기가 나온 지 드디어 5년 만인 작년, 머리를 염색하겠다고 선언했다.

머리 전부는 아니고 군데군데 몇 가닥 씩만. 이곳에 와 있는 한국 애들, 심지어는 꼬마들조차도 염색 안한 아이가 거의 없는 이 시대에 그것도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그러니?" 라고 일단 말하면서도 금발은 아니길 속으로 바라는데, 아이 하는 말, 짙은 파란 색으로 염색해서 그냥은 염색한 게 잘 안 보이고 불빛에서만 형광으로 파란 색이 보이게 할거라고. 나는 무조건 참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내 속 생각을 들여다 본 것처럼 아이가 덧붙이는 말, "금발로 물들이는 것은 싫어, 금발 콤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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