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오늘 출간된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은 이제 실패한 종교의 경전 같은 존재다.‘경전’이라면 그래도 점잖은 표현이고 한 세기 남짓 광신도들로 하여금 세계를 들쑤셔 피로 물들이게 한 주문(呪文)의 묶음 같은 것으로 보는 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온 지 1세기 반이 지나면서 그 실험장이었던 공산권이 몰락한지 15년이 돼도 아직 지구상에서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13일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처음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건국대 학생 2명을 구속한 것도 그렇다. 건대 학생투쟁위원회(건학투위) 간부인 이들이 구속된 데는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점도 있으나 ‘자본론’ ‘마르크스를 위하여’ 등 ‘불온서적’을 소지하거나 그 내용을 인터넷에 게재한 것도 큰 이유로 제기됐었다.
그것은 얼핏 군사정권 시절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엄연히 정부의 출판허가를 받은 책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용공서적’으로 둔갑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따라서 그런 군사정권이 물러난 지도 오랜 이 시점에 또 그런 타령이냐는 의문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이번 사건에는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론’은 강금실 법무장관과도 인연이 깊은 책이다. 그의 전남편으로 운동권이었던 김모씨는 88년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이론과 실천’의 대표로 국내서 처음 ‘자본론’을 번역 출판했다가 구속됐고 이에 당시 판사였던 강금실은 그 부당성을 지적한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하고도 절반이 바뀌는 세월이 지나 강금실은 그 검찰의 수장(청장)을 웃도는 장관이 됐으나 ‘자본론’을 소지하거나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 법적 제재를 받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풍속도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론’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극히 한국적인 버전일 뿐이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입지가 좁아진 공안기관이 실적을 올리려 한다는 의혹 자체가 ‘자본론’을 둘러싼 본질적 논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자본론’은 아직도 그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구석이 있다. 재작년 12월에 출판된 ‘마르크스의 복수’(메그나드 데사이 저)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런던 정경대 교수이자 노동당 출신 상원의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론’이 공산주의를 찬양한 서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강조한 책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생애의 대부분을 통해 자본주의의 동력을 연구했으며 독일사회민주당의 강령을 보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했으나 사람들은 그가 30세였던 해(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볼쉐비키 등 교조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이름으로 온갖 기만을 일삼았으니 지하의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음으로써 이들에게 복수한 셈이라고 데사이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을 떠나서도 마르크스와 ‘자본론’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좌표로 아직도 살아 있다. 지난 5월 이화삼성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이라는 주제의 제1회 맑스 코뮤날레도 그렇다. 그동안 방황하던 진보적 지식인들이 새 출발을 하려 하고 있고 그 출발점은‘자본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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