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오늘 서강대 총장 박홍은 청와대 오찬에서 “대학 안에 주사파가 생각보다 깊이 침투해 있다.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사회주의 노동자 청년동맹)과 김정일이 있다” 고 한 것은 52년 미국의 상원의원 매카시가 “국무성 안에 205명의 빨갱이가 있다”고 한 것보다 놀라운 데가 있었다.
매카시는 당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는 비미(非美)활동조사위원장으로 그런 정보에 가까웠으나 박홍은 그런 것과는 무관했다. 굳이 찾자면 ‘대학 안에’서 일하는 정도였으나 당시는 대학을 ‘직장’으로 삼는 정보원들도 많았다. 더욱이 사노맹이나 사로청에 이르면 안기부 장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박홍의 발언이 놀라운 것은 그의 신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날 그의 모습과 너무 다른 것이 더 놀라웠다. 그는 5.17 직후 합수부에 끌려가 5일간이나 단식을 했고 그런 과정에서 심한 눈병이 생겼으나 “차라리 눈이 멀어 더러운 세상 보지 않겠다”고 한동안 수술을 거부해 주위사람들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그는 신부로써 전태일 추모미사를 집전하다 끌려가기도 했으니 정보당국의 눈에는 붉은 색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박홍이 “사회각계에 진출한 주사파가 1만5000 명에서 3만 명에 이른다”느니 “북한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사람이 교수가 되기도 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놀랐으나 그를 관심있게 지켜본 이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89년 국내서 처음 직선제로 총장이 된 뒤부터 행보가 달라지기 시작해 91년 김기설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나자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던 박홍은 주사파 발언으로 안기부장을 웃도는 우파의 ‘사상적 대부’처럼 됐다. 안기부장이 자신의 발언에 근거를 대야한다면 대부의 발언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유난히 우락부락한 그의 모습도 새삼 눈길을 끌었다. 바로 몇 년 전에 국내에서 번역된 이탈리아 작가 죠반니노 콰레스키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에 나오는 돈 까밀로 신부를 떠올리는 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보스까치오라는 소읍에서 우파인 싸움꾼 신부 까밀로와 공산당원이자 읍장인 무식한 빼뽀네의 이전투구를 그린 것으로 그 주인공 까밀로가 한국인 대역을 찾은 셈이다. 우연인지 박홍도 소년시절에는 싸움꾼으로 소문났었다.
하지만 싸움꾼과 신부라는 공통점을 벗겨놓고 보면 그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까밀로와 빼뽀네는 사사건건 싸우면서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않은 것은 물론 마을을 위해 때로는 협력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것은 좌우대립을 그린 작품 가운데 가장 휴머니스틱한 명작으로 공산권에서나 서방에서나 금서로 지정했어야 했다. 공산권에서는 혁명이념을 타락시키고 서방에서는 반공전열을 흩트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김기설이 죽은 지 4시간 뒤에 “죽음을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세력이 있다”는 그의 발언에서는 까밀로에게서 풍기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그는 97년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가장 이름난 총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뒤로 주사파의 배후에 있다던 김정일이 남한의 대통령을 만나는 등 환경이 바뀌더니 지난달에는 그도 재단이사장으로 작은 변신을 한다. 이사장님, 서강의 이사장님!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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