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오늘 제정된 미국의 공법 480호(PL 480)는 반가운 것이었다. 곡식이 남아도는 미국이 식량을 거저 주거나 싸게 판다니 그 나라는 한국을 구해준 혈맹일 뿐 아니라 일본에서 부르듯 ‘미국’(米國)이자 중국이나 한국에서 부르듯 ‘미국’(美國)이었다.
식량부족에 허덕이던 모든 나라들이 이 법에 따라 미국과 협정을 체결했고 전쟁 직후의 한국도 빠질 수는 없었다. 바로 이듬해 협정을 체결해 56년부터 잉여농산물을 받아들였고 이를 판 대충자금은 국방비 등으로 전용했다.
그래서 미국으로부터 싸게 들여온 식량은 궁기에 찌든 한국인의 얼굴을 바꾸고 나라의 얼굴도 바꾼다. 물론 문화도 바꾼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박목월의 ‘나그네’도 배경이 바뀐다.
박목월이 다시 그런 시를 쓴다면 적어도 ‘밀밭’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될 일이다. 밀밭은 한 때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되살아나고는 있으나 풍경화 소재가 되기는 어렵고 따라서 시에 그런 걸 쓰면 객쩍어서다.
그것은 PL 480이 원폭처럼 한국의 밀밭을 초토화시켰다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70년 이후 장기차관으로 계약내용도 바뀌었으나 그것이 처음부터 없었더라도 오늘의 농촌이 박목월의 ‘나그네’가 초탈한 듯 거닐 수 있는 한가한 풍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때 발을 딛은 외국 곡물은 물러가지 않은 채 곡식 값을 계속 억누르면서 한국인의 입맛과 함께 농촌풍경을 바꾸어 왔다. 50년대 이래 밀의 소비량은 계속 느는 데 비해 밀의 자급율은 계속 떨어져 95년에는 0.3%에 이르렀다가 2001년에는 1%까지 올랐다고는 하나 밀밭을 구경하기는 어렵다. 매일같이 밀가루 음식을 먹는 어린이들은 막상 밀밭을 봐도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하물며 ‘밀 서리’를 알 리 없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옛날의 풍정이 사라진다고 아쉬워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다. 세계가 지구촌으로 좁아질수록 그런 추세는 더할 것이고 그 끝은 어디일지 짐작도 할 수 없다. PL480은 그 시작일 뿐이고 그것은 한국의 농촌만 바꾼 것이 아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은 때로는 골치 아픈 데가 없지 않지만 미국의 무기이기도 했다. PL 480으로 생색을 낼 경우 그것은“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 그대로였다. 냉전시절 만성적으로 식량부족을 겪는 소련에게 미국의 곡식창고는 미사일 창고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문제는 냉전이 끝나도 식량무기는 폐기되지 않았고 우리가 그 당사자라는 점이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받던 한국은 반세기 뒤에 북한에 쌀을 보내게 됐으나 바로 북한이 식량무기의 현장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재미 단체들이 미국정부에 평화적 대북정책을 촉구하면서 “인도적인 식량지원을 정치무기화하지 말라”고 한 것도 그런 것이다. 미국이 “북한주민에게 식량이 배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국제식량원조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질 수 있다”며 북한을 압박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그런 것과는 다르나 남한의 정국에서도 ‘식량무기’는 쓰이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준 쌀이 군용으로 전용됐다는 주장이 그렇고 그것으로 야당이 정부의 햇볕정책을 공격한 것이 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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