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은 어떤 해일까. 간지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처음 맞는 을사년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선지 한일국교 정상화조약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던 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은 최인훈의 ‘광장’이 나온 지 5년 뒤로 남정현(南廷賢)이 단편 ‘분지’를 발표해 그 해 오늘 구속된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분지’(糞地)라는 말을 잘 몰랐거나 관심도 없었다. 당시의 한문세대들이 그것을 ‘분지’(盆地)와 혼동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 뜻은 ‘똥 땅’이었으나 소설 내용은 놀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같은 것과는 딴판이어서 더 어리둥절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해방된 조국에서 어머니는 미군에게 강간당해 미쳐서 죽고 누이동생은 미군 상사의 현지처로 학대를 받고 있으나 제대후 살아갈 길이 없어 미군의 물품을 팔던 주인공이 어느 날 한국에 온 미군의 아내를 납치하여 보복하려 한다는 줄거리로 오물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분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런 줄거리보다도 그 배경이다. 한국전쟁 12년 뒤인 그 시점에서 미군은 생명의 은인들이었고 그런 과정에서 빚어지는 그들의 탈선이나 양부인들의 존재는 사소한 옆 그림인데 그런 걸 써서 어쩌자는 표정이었다.
실은 공안당국도 이 소설이 그 해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됐을 때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북한의 ‘통일전선’과 로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에 실리자 남정현은 ‘충일기업’이라는 간판이 걸린 어느 건물에 끌려가 “이 소설은 북괴의 누군가가 써서 건네 준 것일 터이니 그 접선내용을 밝히라”는 말을 듣는다. 남정현은 북한이라는 말도 꺼낸 적이 없으나 공산주의를 고무 동조 찬양한 셈이 된 것이다.
그것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1933년부터 3년간 오클라호마 일대를 강타한 재해를 피해 캘리포니아로 간 농가의 비극을 그린 명작이었으나 그것이 발표된 1939년 무렵은 독일이 미국을 한참 악선전할 때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분노의 포도’를 들먹이며 미국을 흉보았으나 스타인벡은 치도곤이 아닌 퓰리처상을 받았다.
물론 5.16 이후 불과 4년 뒤의 상황을 두고 스타이벡을 들먹이는 것은‘분지’에서 낙원을 찾는 것처럼 넋빠진 일이다. 남정현은 67년 선고유예로 풀려났으나 74년에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또 감방신세를 진다. 보다 아픈 것은 붓을 사실상 놓다시피 한 점이다.
그러나 ‘분지’라는 ‘냄새나는 소설’은 우리 문학사의 뚜렷한 기념비로 자리잡게 됐다. 60년의 ‘광장’이 우경 일변도의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한 회의주의자의 도피적인 중립을 그린 반전문학이이라면 ‘분지’는 조국의 주인공으로서 적극적으로 주체성을 찾으려는 반전문학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실상 첫 필화사건을 일으킨 자체가 우리 문학사의 이정표다. 당시 변론을 맡은 한승헌이 그 뒤에는 자신도 감옥살이를 하다가 감사원장을 지낸 것은 또 다른 이정표다.
지난해의 여중생 사건은 새삼 남정현을 떠올리게 했다.‘糞地’를 한문으로 읽거나 쓰지 못한 세대들이 그 ‘냄새’는 더 잘 맡는 낌새여서다. 그런 속에서 40년 전에 그 냄새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전하려다 수난을 당한 한 작가의 삶은 조용히 잊혀지고 있으나 그가 제시한 작가의 길은 잊혀져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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