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월드컵을 개최한 한국과 일본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것은 월드컵 문턱도 제대로 밟지 못하던 일본이 16강에 진출했다거나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월드컵이 '무사히' 끝난 것이 다행이고 그것은 두 나라가 애를 쓴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월드컵이 한창이던 1994년 오늘 콜롬비아 메데인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 나라 월드컵 대표팀의 수비수였던 안드레 에스코바르가 총을 맞고 죽은 것은 주최국인 미국인들로서도 속수무책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물론 미국이 그 유명한 CIA 같은 조직을 총동원했더라면 그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것은 '월드컵 주최'와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러나 에스코바르는 분명 미국월드컵 때문에 죽었으니 주최국으로서는 기분 좋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미국팀 때문에 죽었다. 그는 미국과의 조 예선전에서 전반 33분 미국의 하크스가 센터링한 골을 걷어차내려다가 자살골을 넣어 콜롬비아는 1대 2로 졌고 16강에서도 탈락했다. 그래서 일찍 콜롬비아팀은 귀국했고 '역적'이 된 에스코바르는 고향에서 칩거하다가 모처럼 애인과 외식을 하다 총을 맞고 말았다.
그는 국제경기에 48회나 출전하면서 콜롬비아 팀을 지킨 27세의 유망주였으나 단 한번의 실수로 "자살 골에 감사한다"는 사례와 함께 12개의 권총 알을 몸에 받았다.
그것은 축구의 매력과 함께 그 무서움이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새삼 "공은 둥글다"는 말을 곱씹게 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 때까지 그 말은 흔히 축구공의 가는 곳은 예상할 수 없어 완벽한 전술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그 승부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였으나 이제 그런 축구를 보는 인간의 이성마저 예측불허가 되는 것만 같은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선수라도 월드컵 대표로 뽑히면 '나라 값'을 준다며 매수하려 해도 듣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 열성이 너무 지나칠 때 실수가 나올 수 있고 에스코바르의 경우도 그런 것이라는 것은 세계 누구나 아는 일이다.
축구의 대륙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바로 그처럼 축구가 강한 나라였기에 에스코바르가 죽었다고 볼 수도 있다. 94년 월드컵을 앞두고 지역예선이 한창일 때 축구 황제 펠레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가 일을 저지를 것이다. 우승을 한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고 예측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에스코바르의 죽음에 일조한 셈이다. 기대했던 콜롬비아의 일이라는 것이 고작 자살골이자 장외에서는 살해라는 큰일이 난 것이다.
그것은 에스코바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콜롬비아 축구의 자살로 이어져 4년 뒤에는 다시 16강 탈락을 하더니 지난해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해 아시아에 오지도 못했다.
보다 심각한 것은 그것이 축구의 비극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에스코바르를 죽인 범인은 축구 도박에 거금을 걸었다 손해를 본 마약그룹의 하수인들이었고 콜롬비아가 그런 마약조직들의 온상인 것을 떠올리면 축구장의 이성을 따지기 전에 마약으로부터 정신을 차리는 일이 급하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먼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태국은 축구 실력과 상관없이 축구도박으로 떠들썩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최강의 축구팀은 '교도소 팀'이라는 말도 그런 것이다. 도박사들과 짜고 승부조작을 해 쓸 만한 선수들이 모두 철창 안에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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