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오늘 소설가 해리엇 스토 부인은 숨지나 그의 숨결은 아직도 살아 있다. 특히 한국에서 그의 대표작 ‘엉클 톰스 캐빈’은 생생히 살아 있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는 2층 통나무집으로 된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칵테일 바가 있다는 선전이 요란하다.
‘엉클 톰스 캐빈’은 흔히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으로 번역되는데 무슨 통나무집이냐고 의아해 할 것은 없다.‘캐빈’은 통나무집이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흑인노예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한 ‘엉클 톰스 캐빈’에서 양주 맛이 나느냐고 물을 것도 없다. 미국과 한국이 다른 것이 한 두 가지인가. 바로 ‘엉클 톰스 캐빈’을 낳은 배경만 봐도 한국과 미국은 너무 비슷하고 또 너무 다르다.
스토 부인이 절규한 흑인 노예 해방이라는 문제를 다수파(백인)와 소수파(흑인)의 관계로 보면 그것은 지역감정으로 황폐해진 한국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다수파의 일원인 스토 부인이 소수파의 편에 선 것은 우리에게 너무 낯설어 보인다.
여기엔 반론이 따를 수 있다. 인구가 12%와 71%로 큰 차이가 나는 데다 피부색도 다른 미국의 인종갈등과 한국의 지역감정을 어찌 동열에 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는 두 배이고 경제력은 그 몇 배나 차이가 나는 두 집단은 어쩔 수 없는 머조리티(다수파)와 마이노리티(소수파)다.
피부색이 같다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스토 부인을 비롯한 노예반대 문인들이 흑인도 백인과 같은 인간임을 강조하는 글을 쓰기에 바빴다면 한국에서는 바로 그 소수파 지역 사람들의 ‘다른 점’이나 ‘사람 같지 않은 점’을 잘 써냄으로써 ‘문호’ 행세를 할 수도 있다. 그 지적이 옳고 그른가는 ‘문호’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쉐익스피어의 ‘햄릿’도 귀신이야기 아닌가.
그것은 작가만의 문제도 아니다. 바로 작가들이 터 잡고 사는 언론사 등의 체질에서 21세기의 한국은 19세기의 미국보다 더 낡아 보이는 데다 줄곧 거꾸로만 가고 있다.
‘엉클 톰스 캐빈’의 경우도 1851년부터 이듬해까지 흑인해방운동 기관지 ‘내셔널 이어러’지에 연재된 것을 계기로 나오게 됐으니 “흑인해방운동 언론사가 작가 스토 부인을 낳고 스토 부인이 톰 아저씨를 낳고 톰 아저씨가 톰 아저씨 칵테일 바를 낳고…” 하는 순서다.
그 언론사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바로 미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사회에서 오래 잉태된 끝에 나온 것이다. 노예해방운동의 대명사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도 원래 언론인으로써 1931년 보스턴에서 ‘리버레이터’(해방자)를 창간했고 거기서 이듬해 반노예제협회가 생겨난다.
한국에는 당시의 미국에 비해 지식인도 많고 ‘민족지’도 있으나 소수파를 대변하는 ‘해방자’ 같은 언론은 드물고 그 자체가 ‘마이노리티 페이퍼’에 머물고 있다. 머조리티 페이퍼들은 소수파들과 다수파들의 싸움을 붙이기에 바쁘니 ‘민족지’와는 거리가 있다. 스토 부인의 시대로 치면 약자인 흑인들의 동병상련 같은 것을 패거리 짓이라고 일러바치거나 도망치는 흑인들을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는 남부 지주들의 신문 같다.
그 방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은 지식인의 양심과 자각의 문제이기에 뾰족한 방법도 없다. 따라서 속이 답답하면 칵테일을 한 잔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고 그럴 때는 압구정의 ‘엉클 톰스 캐빈’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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