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를 돌이키면 곧잘 떠오르는 시구가 있다.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오는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라는 구절이다.
어렵기로 소문난 엘리엇의 시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황무지'지만 '차라리 겨울은 따뜻했다"는 말은 '산문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4월에 무슨 사고라도 나면 바로 '황무지'의 '4월은 잔인한 달'이 떠오르는 식이다.
세계가 두 개의 얼음 덩어리로 나뉘어 찬바람이 일던 시절이 뭐가 따뜻했단 말인가. 그 두 세계가 각축을 벌이면서 제3의 세계에 자기편에 서라고 손짓을 했기에 따스한 것이다. 흑인 미스 유니버스가 나오는가 하면 노벨 문학상에 제3세계가 한 축 끼었던 전통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1966년 오늘 프랑스가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체제에 불만을 품고 그 군사동맹에서 탈퇴한 것도 이제는 따스한 기억이다. 물론 당시는 그것이 따뜻하기보다는 몸이 떨리는 소식이었다. 공산권의 공세를 막기 위해 단결해도 부족한 데 적전 분열을 일으킨단 말인가. 드골의 그 높은 콧대가 새삼 밉살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나토를 탈퇴해도 미국이 이를 막지 못한 채 회원국으로는 남아 있도록 달랜 것은 냉전시절의 따스함이다. 그 시절 나토는 말 그대로 여러 회원국의 '조약기구'였고 미국은 서방의 '맏형'이었지 '대형'(大兄)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소련의 베를린봉쇄에 따른 반동으로 1949년에 생겨난 나토는 창설 초기부터 말썽이 잦았다. 방위비 분담 같은 돈 문제는 기본이고 회원국 가운데는 터키와 그리스 같은 앙숙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정책에 제동을 걸려는 유럽과 이를 대변하는 유럽의 맏형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프랑스는 나토를 남북 2개의 사령부로 나누어 하나는 유럽이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나토 군사동맹을 탈퇴했고 이듬해는 파리의 나토 본부도 브뤼셀로 옮겼으나 회원국을 탈퇴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군사협력도 긴밀히 해왔다.
냉전이 끝나자 나토는 지난날의 가상적국 같은 폴란드 등을 받아들여 더 커졌으나 나토의 오랜 핵심이었던 프랑스나 독일은 이들 '새 유럽'에 밀려 미국으로부터 '낡은 유럽'으로 불리우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미국은 나토가 터키를 지원하도록 요구했으나 프랑스가 반대하자 미국은 프랑스가 참가하는 나토 정책결정기구인 이사회(NAC) 대신 프랑스가 불참하는 방위계획위원회(DPC)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프랑스의 역할을 평가절하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프랑스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지난 4월 파월 미 국무장관이 "프랑스가 이번 전쟁에서 취한 반전입장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것도 그렇다. 프랑스가 죄인처럼 '처벌'을 받는다는 말이 새삼 찬바람처럼 다가오면서 냉전시절의 드골이 떠오르고 그 시절이 차라리 따뜻하게 와 닿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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