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오늘 제 13대 국회에 설치된 ‘5공 비리 특위’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고대 이집트의‘피닉스’(Phoenix)라는 불사조의 신화가 떠오를 수도 있다. 이 새가 불에 타서 죽으면 그 잿더미에서 다시 피닉스가 태어난다는 이야기처럼 5공특위 청문회는 5공 총수 전두환을 융단폭격 했고 그 잿더미에서 또 다른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그 대통령이 노무현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당시 무명의 이 초선의원은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날리면서 청와대로 가는 정지작업을 끝낸 셈이다.
당시의 청문회 스타들을 고르라면 사람마다 다른 얼굴들을 들고나오나 노무현이 빠지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노무현과 이인제가 다투던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그를 싫어하는 한 수구신문은 겉으로 드러난 노무현보다 이인제가 숨은 스타였다는 식의 글을 싣기도 했으나 그 글을 쓴 기자 자신도 그렇게 믿었을지 의문스럽다.
노무현은 당시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더니 청문회가 끝나기 전에 ‘대통령 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14년 뒤에 이 ‘대통령 감’은 실제로 대통령이 된다. 만일 5공특위가 구성되지 않았거나 그것이 TV에 생중계되는 청문회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청문회 스타 노무현의 등장은 생각할 수 없고 따라서 지난해의 대선이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 됐을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돌이켜 보면 그 14년은 노무현이 ‘청문회 스타’로 달라진 자신의 위상과 씨름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가 청문회 2년 뒤 3당 합당을 한 YS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평소의 소신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하나 청문회 스타의 체통과도 무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청문회 스타는 5공의 비리를 잘 캐내는 ‘재능’만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배우도 일류스타가 되려면 외모나 연기만이 아니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는 판에 정치 스타가 정의감을 떠나서 성립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감 스타라면 지역감정의 산물인 3당 야합에 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문회 스타가 아닌 보통의 부산ㆍ경남 정치인이 가야국 맹주 같은 YS를 따라 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청문회 스타도 YS의 한 칼에 의원 배지를 잃지 않았던가. 그러나 노무현이 잃은 것은 국회의원 배지라는 지분일 뿐 ‘전국 스타’의 지분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가 맹주에게서 쫓겨나고도 고향을 계속 찾아가 고통을 자초한 것이나 그것이 안타까워 노사모가 생겨난 것도 청문회 스타가 아니었다면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과정에서 노무현을 유독 미워하는 언론들이 생겨난 것도 그렇다. 그가 청문회 스타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는 처음부터 언론의 관심 밖이었거나, 언론에 고분고분 했거나, 언론에 조용히 밟혀서 노사모나 안티조선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대통령이 됐다. 그것은 전두환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 던졌던 그에게 누군가로부터 명패가 날아 올 수 있음을 뜻한다.
북한 송금을 두고 나도는 ‘통치행위’도 그렇다. 그는 5공 청문회에서 안현태 전 경호실장이 안가(安家)의 소재와 운영에 관해서 ‘통치행위’와 관련된 사항이라 답할 수 없다는 말에 “국회에서까지 함부로 써먹는 통치행위라는 것이 증인과 증인이 모시고 있던 권력의 국민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공박해 ‘잘못했다’는 답을 들었다.
<이 란은 이번 주부터 월-금요일, 주 5회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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