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싹한 연애> 포스터 ⓒ상상필름 |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어릴 적 사고로 죽은 인주라는 이름의 친구 귀신이다. 그 사고에서 여리는 살고 인주는 죽었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형상으로 구천을 떠도는 인주 귀신은 한 발짝 한 발짝 여리에게 빠져드는 마조구에게 나타난다. 한평생 안고 살 공포를 떨쳐 버리되 대신 사랑하는 여리를 포기하는 삶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흉측한 처녀 귀신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해도 여리와의 사랑을 이어갈 것인지, 마조구는 결국 기로에 서게 된다. 과연 둘의 사랑은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될 것인가.
마조구는 당최 소심한 캐릭터다. 기존의 '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마조구가 공포를 극복하고 용기를 펼쳐 귀신을 물리치고 결국 여리를 차지하는 '유치찬란한' 결말을 가져갔을 것이다. <오싹한 귀신>의 미덕은 그 같은 뻔한 이야기는 애당초 구축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귀신은 없어지지 않는다. 여리에게는 끊임없이 이런저런 귀신이 나타나고 마조구는 (마술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령들을 퇴마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귀신과의 위험한 동거를 받아들인다.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참 나, (요즘 세상에선) 연애하기도 참 힘들어."
여리와 마조구가 나누는 연애담, 또 그들이 겪게 되는 음산한 공포를 보고 있으면 '99% 대 1%'라는 험악한 자본주의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젊은이들의 내심이 느껴진다. 영화에서의 귀신은 지금의 모든 젊은이들을 옥죄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폐다. 여기에서 귀신이란 누구에게는 때론 입시지옥 같은 존재일 수 있으며, 누구에겐 또 취업난 같은 좌절일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겐 매년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전셋값처럼 허망한 내 집 마련의 꿈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주인공들은 결국 귀신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땅의 젊은이들도 평생을 애써 봐야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공포의 정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싹한 연애>는 연애조차 오싹하게 만드는 지금의 사회 먹이사슬을 빗대어 얘기하되, 그것을 지금의 젊은 층들이 즐기는 것처럼 왁자한 풍자의 분위기로 치환시켰다. 이 영화가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포획한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그 같은 주제의식은 손예진과 이민기가 각각 구사하는 독백에서 빛을 발한다. 손예진, 곧 여리는 전화로만 만나는 친구 둘에게 어느 날 이렇게 얘기하며 흐느낀다. 그녀는 친구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자신은 상황이 이럴지언정 자신은 '행복하다'고 응답한다. 그러던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그래 알아! 난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다고 나 자신에게 몇 번이나 강조해도 난 결코 행복하지가 않아!"
이민기, 곧 마조구는 자신을 위해 자신을 떠나려는 여자에게 전화로 얘기하며 눈물을 짓는다.
"그래요. 난 귀신이 무서워요. 무서워 죽겠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무서운데, 당신은 어떨까, 당신은 오죽할까를 생각하면 그게 더 견딜 수가 없어요."
ⓒ상상필름 |
두 사람의 대사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지금의 젊은이들이 속마음으로 얼마나 뼈아픈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웅변해 낸다. 그리고 결국 이 아픈 청춘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같이 가야만 하며 그것이 현실의 좌절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가를 깨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이렇게 명징하게 반영해 내는 장면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것 참, 무책임한 수사학이다. 아픈 이유를 찾아 줘야 한다. 그리고 어루만져 줘야 한다. 그럼으로써 힘을 얻게 해야 한다. <오싹한 연애>에게 높은 평점을 주고 싶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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