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가 공병장교 출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놀라는 이가 많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면 마땅히'싸우는 군인'인 보병이나 포병 또는 기갑 출신이어야지 어떻게 총이나 칼 대신 망치나 대패를 든 공병장교 출신일 수 있느냐는 표정이다.
그러나 맥아더는 공병장교 출신으로써 처음 '외도'를 한 것이 아니고 그 정도도 심한 편은 아니다. 1836년 오늘 숨진 루제 드 릴은 공병장교 시절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작곡했으니 공병이기에 앞서 군인으로써 외도한 셈이다.
물론 그것은 오늘의 시점에서 본 것일 뿐이다. 루제 드 릴은 국가를 지은 것도 아니고 '라 마르세예즈'라는 노래를 지은 것도 아니다. 1792년 4월 25일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병 대위로 있던 그는 오스트리아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룻밤 사이에 '라인강의 군대를 위한 진군가'를 지었다.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이여/ 영광의 날이 왔도다/ 독재에 항거하는 우리의 / 피묻은 깃발은 날린다/ 보라/ 저기 압제자 야비한 무리들의 칼/ 우리의 형제 자매와/ 우리의 처자들을 죽인다/ 무기를 들어라/ 대오를 지어라/ 나가자 나가자 우리 함께/ 압제자의 피로 옷소매를 적시자…"
따라서 그것은 국가도 아니고 자세히 보면 군가 같지도 않다. 그것은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일반국민에게 '무기를 들어라'고, 그래서 군인이 되라고 하는 절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절규는 너무 호소력이 있어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지면서 당시 파리를 연합국으로부터 사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국민병들은 이 곡을 행진곡처럼 불렀다.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출신의 6백명이 8백㎞를 행진하면서 부른 것이 너무 극적이어서 이 노래는 '마르세이유 군단의 노래'를 거쳐 '라 마르세예즈'로 이름이 바뀌어 3년 뒤에는 '국민의 노래'가 된다.
프랑스 혁명이 좌절되고 군주제가 부활되자 이 노래는 자취를 감추었으나 제3공화국이 들어서자 이 노래는 1879년 국가가 된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혁명의 기간이 약 1세기라는 주장을 입증하듯 혁명 90년만에 국가로 완성된 것이다.
'라 마르세예즈'의 그런 생명력은 '애국'이 아닌 '민주주의'의 힘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조국이기에 프랑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봉건적인 압제를 물리쳐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되는 나라를 사랑한 것이다. 그 프랑스를 침공하는 전제국가들도 그저 '외국'이 아니라 국민군이 아닌 '용병'의 나라였고 그것은 '라 마르세예즈' 제3절에서 드러난다.
"뭐라고! 외국의 무리들이/우리 땅을 지배한단 말인가!/ 뭐라고! 저 돈에 팔린 용병들이/우리의 자랑스런 전사들을 쳐부술 수 있단 말인가! /"
따라서 '라 마르세예즈'가 생겨난 그 해 8월 10일 스위스 용병들이 지키던 튀를리 궁전을 공격하던 시민군들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프랑스 혁명의 압권이었다. 그리고 루이 16세를 지키기 위해 단 한 명의 배신자도 없이 768명 전원이 전사한 스위스 용병도 봉건시대의 마지막 찬연한 불꽃같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라 마르세예즈'가 부러운 것은 그런 배경만이 아니다. '나가자 조국의 아들 딸이여'라고 외쳐도 돌아보지도 않는 '조국의 아들 딸'들이 많은 우리는 아직 라 마르세예즈 이전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듯 한 점이 더 안타까운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