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법원이 '대전법조비리' 사건으로 불구속기소된 전 대전MBC기자 고모씨에 대해 명예훼손혐의를 인정하여 징역8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사건은 '취재ㆍ보도의 자유와 명예훼손'간의 첨예한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대전지법 형사4단독 손철우 판사는 지난 20일, 1999년 1월의 이른바 `대전법조 비리' 보도와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전 대전MBC 기자 고모(43)씨에 대해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으며 같은 혐의로 기소된 대전MBC 기자 3명에 대해서는 징역 4-8월에 집행유예 1-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각각 선고했다고 한다.
손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이모 변호사를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보도 근거로 삼은 자료의 입수경위와 보도 결정경위, 충분한 취재 여부, 자료의 기재 내용, 보도시 사용된 어휘들의 일반적 의미 등을 고려할 때 비방 목적이 있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판결을 내리는 것은 판사의 고유한 권한이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문을 작성하리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 적용의 타당성과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언론법제 전공 학자의 몫인 만큼 이번 판결에 대해 몇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손 판사가 판시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부분.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 하지만 보도근거로 삼은 자료의 입수경위와 보도결정경위, 충분한 취재여부..." 등의 이유로 내세워 이모 변호사의 명예가 훼손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분은 기자들의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보도내용과 어휘 등을 보면 일반인들에게 이 변호사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될 수 있어 손 판사의 판단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형법 제310조는 바로 이런 명예훼손죄에 대한 언론인들의 면제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언론보도를 모두 명예훼손죄로 옭아매면 걸리지 않을 비판적, 고발기사는 없기 때문이다. 형법 제310조는 '위법성 조각사유'조항으로 이 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그 보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가지 조건만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우리나라 법원도 일본의 판례를 원용하여 '상당성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상당성 원리'란 기자가 허위의 사실을 진실이라고 잘못 알고 그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당성 원리는 1969년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에서 소위 '지지사건'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우리나라도 1988년 대법원(1988년10월11일 선고85다카29)판결에서 "형사상으로나 민사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있으면 위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바로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확인하며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소중한 법리로 인식되고 있다.
손 판사가 'MBC 네 명의 기자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면 당연히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사유'조항도 살폈을텐데 왜 이 법의 적용은 외면했는가 하는 부분은 의문으로 남는다. 더구나 기자들이 흔하게 범해온 '사문서절취나 신분위장' '무단 가택침입' 등과 같은 명백하게 실정법을 위반한 사항에조차 제대로 법적용을 하지 않고 '봐주기식'으로 넘어간 것은 언론자유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었던가.
1998년 국민일보 변모 기자가 수사 검사방 침입과 서류절취 사건이 벌어졌을 때 검찰은 실정법 위반으로 기자를 구속했지만 '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관대한 처분'에 따라 불과 며칠만에 풀려나왔다.
99년 대전법조비리사건은 과거의 기자들이 법을 위반하면서 취재ㆍ보도하던 관행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미 그 전에 의정부 지원 이모 변호사 법조비리사건으로 변호사가 구속된 사건까지 있었던 만큼 기자라면 취재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법조비리'에 대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고 취재할 만한 고발취재대상이었다. 더구나 이번에 실형을 선고받은 고모 기자 등 4명은 나름대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지방에서 드물게 입체취재에 나서는 등 성실하게 취재ㆍ보도에 임했다.
이들의 보도가 모두 허위라면 이 변호사가 법원 직원 등에게 건넨 돈의 액수와 유죄판결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이 변호사는 94년 1월부터 97년 7월까지 사건을 소개한 검ㆍ경찰 및 법원 직원 등 1백여명에게 소개비조로 1억여원을 건넨 혐의로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으나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징역 8월을 선고하면서 기자를 법정구속까지 했어야 했던가에 대한 의문이다. 한 정치인에 대해서는 징역 5년에 벌금 30억원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은커녕 형집행조차 하지 않은 판결은 어떤가.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반사회적 권력형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이나 중형을 선고받은 언론사 사주들에게는 법정구속은커녕 모두 집행유예나 형집행정지로 풀어주면서 고작 징역 8월을 선고한 기자에게는 법정구속이라는 인신구속으로 '언론자유'를 옥죄는 '깊은 의도'를 납득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구속된 기자가 보도한 '대전법조비리'가 과연 공공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변호사들과 일부 검사, 판사와의 유착과 비리커넥션은 종종 사회문제화 됐지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법으로 먹고 사는 변호사의 비리를 밝히기도 어렵고 수사권을 독점한 검찰을 감시, 고발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판사들의 납득할 수 없는 행각도 부분적으로 공개될 뿐 성역처럼 존재해 왔다. 인간이 인간에게 합법적으로 목숨까지 끊게 하는 힘을 가진 판사들을 상대로 비리, 고발기사를 만들어내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이 한국현실이다.
더구나 정보공개법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예외조항이 많아 실효가 없는 상황에서 기자가 어렵게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법조비리'를 보도하는 것이 한국 법조계의 투명하고도 깨끗한 풍토조성의 목적이라고 보지 못하는가. 이변호사와 구속된 기자 사이에 사적인 원한관계나 이해관계가 드러났다면 당연히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으로 기자를 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식이라면 법원은 국민의 지지보다 변호사의 로비대상으로 전락하고 향응의 대상으로 비쳐지게 될 위험성도 있다.
법은 형평성을 상실할 때 그 파괴력과 정당성은 의심받게 되고 강자의 악세서리로 전락한다. 기자가 취재ㆍ보도상의 문제로 가벼운 형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정말 구속돼야 할 기자들은 검찰에서 '공소시효'운운하며 봐준 선거철에 수백, 수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기자들이다. 부패하고 노회한 기자들은 법망에서 벗어나고 열심히 취재ㆍ보도한 젊은 기자들을 잡아넣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법적용이다.
한가지 언론계에 납득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이것이 지방 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언론사 기자들 모두의 문제고 중앙언론사 모두가 문제시해야 하지만 정작 중앙 신문사나 중앙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무식한 것인가 무관심한 것인가. 언론사 사주가 판매, 영업문제로 세무비리에 연루될 때만 대대적인 지면을 할애하고 기획기사까지 동원하여 '언론자유'운운 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기자의 구속과 실형선고는 철회돼야 하고 모든 언론사들은 '무엇이 진정한 언론의 자유'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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