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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의 두 시대/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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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의 두 시대/6월 17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41>

1972년 오늘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2년 뒤 닉슨을 백악관에서 내쫓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워터게이트'라는 말이 부쩍 나도는 것도 그렇다.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전쟁을 벌인 미국정부가 꿀 먹은 벙어리 시늉을 내는 것은 알 만한 일이나 미국 언론까지 이를 채근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며 비난하는 소리에는 곧잘 양념처럼 '워터게이트'라는 말이 끼인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과 무관하게 미국의 언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워터게이트 보도 자체를 우습게 보는 시각도 있다. 평소 사유언론은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광고주는 언론소유주의 이익을 보장해 준다고 보는 노엄 촘스키는 "워터게이트는 언론과 지식인의 원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권력층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다"고 한다.

촘스키의 시각과는 다르나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워터게이트는 헷갈리는 데가 없지 않다. 처음부터 그것은 호들갑스럽게 비쳤다. 우리에게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운동원들이 야당(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붙들린 사건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사건을 두고 그처럼 놀라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들에게는 한 정당의 당원들이 다른 당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한 것이 놀라웠다면 우리는 정권 편에 선 사람들이 붙들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병신들-.' 물론 야당사람들이 그들을 잡은 것도 놀라웠다. '간이 부었나?'

워터게이트 사건 4개월 뒤에 일어난 유신을 봐도 그렇다. 집권세력은 야당 당사를 몰래 들어 간 것이 아니라 새집을 훑듯 야당정치인들을 끌고 갔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몰래 들을 것도 없었다. 자기네에게 필요한 대로 말하도록 시키는 판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미국 언론의 자세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그것은 우리에게서 너무 먼 현실이었다. 끼니를 잊고 사는 이에게 비프스테이크를 레어로 구웠느니 웰던으로 구웠느니 하는 투정처럼 들렸다.

그래서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워터게이트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언론탄압'이니 '족벌언론의 횡포'니 하던 말이 무성하던 재작년 전혀 딴판의 얼굴로 찾아온 것은 더 놀라웠다. 그 해 7월 17일 워터게이트 사건의 산파역인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 캐서린 그레이엄이 죽자 일부 언론이 워싱턴 포스트의 소유가 캐서린의 아버지 어니스트 메이어에서 남편 필립 그레이엄을 거쳐 캐서린으로 이어졌다며 족벌언론 예찬론을 내세운 것이다.

족벌언론의 안정된 환경에서 권력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워싱턴 포스트 같은 신문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세무조사로 망했으리라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것은 새삼 어떤 식인종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식인종들에게 붙들린 탐험대원이 보니 한 식인종은 영국에 유학을 왔던 친구였다. 그래서 "왜 유학까지 해놓고 식인종 생활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래서 난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가 탈세 같은 것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차이점은 젖혀둔 채 '세습경영'이라는 공통점만 내세운 것이나 사람이라도 포크로 먹으면 문명인이라는 식인종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 놀랍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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