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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처럼 누운 金洙暎/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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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처럼 누운 金洙暎/6월 16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40>

1968년 오늘 시인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숨진 것은 ‘시여 침을 뱉어라’는 그의 시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 해 4월 13일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세미나에서도 그는 이런 제목의 강연을 통해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온몸으로 시를 쓰다 죽은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 버스에 치여 죽었으나 왠지 온몸으로 시를 쓰다 간 느낌이었다. 평생 고통과 좌절을 술로 달래던 그가 술기운 속에서 정신을 잃은 것이 그렇다. 그것은 여성적인 운율로 흐르던 한국의 시에 남성적인 참여시를 제시하던 그의 선이 굵은 문학인생에 걸 맞는 피리어드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사고는 여러 차례 저승사자를 따돌리던 그가 끝내 붙들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921년 서울 태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뇌막염 등 온갖 병치례를 겪었고 그 흔적은 눈만 클 뿐 깡마른 그의 얼굴로 남아 있었다.

자라나서도 그는 여러 차례 사선을 넘었다. 일본 도쿄 상대 전문부에 입학한 그는 학병을 피하려 가족들을 따라 중국 지린성으로 갔다가 광복으로 귀국하나 곧 한국전쟁을 맞는다. 정부의 거짓 방송에 속아 서울에 남았던 그는 문학동맹을 거쳐 나이 서른 살에 인민군에 편입돼 평양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한다.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 서울로 돌아 왔으나 그는 경찰에 붙들려 모진 고문으로 상처 난 다리에서 벌레가 나올 지경이 되면서 또 한번 저승사자를 먼발치로 보았다.

시인으로써 그의 삶은 그런 속에서 여물어 갔다. 그는 자유당의 폭압 아래서 자유를 구가하다가 4.19를 대표하는 문인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4.19를 대표하는 문인이라면 누구나 소설가로는 ‘광장’의 최인훈을, 시인으로는 그와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을 떠올리지만 그는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 같은 데도 있었다.

그런 김수영에게 4.19는 너무 반가웠고 그 일주일 뒤인 26일 이승만이 물러난다는 소식에 그는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싯개로 하자’를 쓴다. “…그 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의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 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는 그 시는 시라기보다는 낙서 같은 것이어서 그 자신이 난해하기로 정평있던 ‘모더니즘의 어제’와 결별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김수영이 그처럼 흥분한 것은 4월 혁명이 미완의 혁명이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곧 친일지주와 관료 경찰들에 독점 당한 “제2 공화국/ 너는 나의 적이다/ 나는 오늘 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것은 해방공간의 임화(林和)가 ‘깃발을 내리자’에서 “노름꾼과 강도를/ 잡든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고 했던 절규가 15년 뒤에 반추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 그는 나오지 않은 채 유언처럼 ‘풀’을 남기고 그곳에서 풀잎처럼 눕는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그가 간 이듬해 신동엽이 뒤를 따르면서 60년대도 끝난다. 그들은 온몸으로 시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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