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오늘 포클랜드에서 영국과 전쟁을 벌이던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한 것은 하나의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한 아르헨티나팀도 이날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패한다. 그 패배는 이탈리아와 브라질과의 대전에서도 이어져 4년전의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뿐 아니라 축구천재 마라도나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탈락하고 만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축구대회와 남미 끝의 사람보다 펭귄이 더 많이 사는 포클랜드제도에서 열리는 전쟁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아르헨티나팀이 죽을 쑨단 말인가. 더욱이 포클랜드전쟁은 두 시간 만에 끝나는 축구시합 같은 것이 아니어서 그 해 4월 2일부터 75일이나 이어져 온 것인데 패전의 쇼크가 그처럼 컸단 말인가.
아르헨티나팀은 의외로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군사독재의 언론통제로 이날까지 자기네가 이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졌다는 소식에 쇼크를 받아 축구를 망쳤지만 그것은 그리 큰 비극은 아니다. 한국전쟁 초기에도 이기고 있다는 허위방송에 안심하고 있다가 피난을 못해 훗날 ‘빨갱이’로 몰린 지식인들의 비극은 그처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몇 배나 끔찍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축구선수의 쇼크에는 아르헨티나의 상처가 배어있다. 군사독재는 축구선수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눈과 귀도 막아서다. 아르헨티나의 헌정을 파괴한 채 나라 살림을 꿰찬 이들은 나라를 망친 끝에 전쟁이라는 도박을 걸었으나 여기서도 진 것이다.
그것은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 무리라는 말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본토에서 5백㎞ 떨어진 포클랜드를 그 곳서 1만 2천8백60㎞나 떨어진 영국이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일본이 독도가 아니라 거제도나 강화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 같다.
물론 포클랜드는 그처럼 거리로 주인을 따지기에는 그 역사적 배경이 너무 복잡하다. 아르헨티나에게 포클랜드는 16세기초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주축이 된 마젤란 탐험대가 발견한 것으로 1816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저절로 계승한 땅이다. 그러나 영국에게는16세기 후반 해군 장성인 포클랜드 자작이 발견하고 정착한 땅이다.
한마디로 이 땅의 문서는 팔레스타인처럼 ‘역사’라는 애매한 것이어서 유엔도 골치 아파 하던 것이자 지금도 명확히 주인이 갈리지 않은 채다. 따라서 아르헨티나가 정상적인 국제외교를 폈으면 영국도 골치 아팠을 것이나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싸움부터 건 것이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독재에 대한 저항과 경제적 실정을 가리기 위해 외부적으로 ‘한 건’ 하려 한 것이나 그 대상을 잘못 잡은 것이다. 당시 군부가 ‘여왕과 여수상(대처)’ 등 두 여인의 나라에 질 턱이 없다고 한 것은 그들이 국제정보는커녕 역사책도 제대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그들의 정신적 모국인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박살날 때의 영국 여왕이 ‘엘리자베스’라는 사실을 모른 것이다.
그런 판이니 제대로 전쟁준비를 했을 리도 없어 아르헨티나 군대는 영국군(2백55명)의 세배 가까운 7백12명의 군대를 대서양에 수장시킨 채 손을 들었으나 그것은 차라리 작은 비극이다. 아르헨티나 군정 6년 동안 3만명이 실종됐고 그 대부분은 비행기에 실려 대서양에 수장됐는 데 그 숫자가 2만명에서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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