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오늘 ‘안네 프랑크’라는 유태인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1942년 오늘 13세가 된 이 소녀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 일기는 44년 8월 4일로 끝나고 소녀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병으로 죽으나 일기를 둘러싼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그의 목소리도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아직 메아리치고 있다.
5년 전 그의 일기장에서 누락된 원고 5장이 새로이 발견된 것이 그렇고 ‘안네 프랑크 산업’이라고 할 만큼 큰 재산이 된 그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산 사람들이 다투는 것이 그렇다. 지난 3월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자 ‘살람 팍스’라는 ID를 가진 20대의 건축가가 전시하의 바그다드의 모습을 일기식으로 세계에 알리자 ‘안네’라는 이름은 다시 평화를 갈구하는 대명사로 화제에 올랐다.
새로이 발견됐다는 안네의 원고는 실수로 누락된 것이 아니고 고의로 누락시킨 것이니 엄밀히는 ‘발견’이 아니다. 안네의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남은 그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딸의 원고를 출판하면서 5장을 빼내 보관하다가 80년 죽음을 앞두고 이를 안네 프랑크 재단의 직원에게 보관시켰던 것이다.
누락된 원고의 내용을 두고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당시 사춘기에 이른 딸이 성적인 호기심을 보인 부분이나 부모에 대한 불만 그리고 부모의 성에 관한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언젠가 그 누락된 원고를 보충해 나오게 될 새 일기는 단순한 보완판이 아니라 또 다른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될 것이다. 작가를 지망한 안네가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의 내밀한 세계를 그대로 그린 진짜 일기로써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과는 다르나 바그다드의 ‘살람 팍스’의 글에도 ‘한 가족’인 이라크 지도층을 비판하는 대목이 있어 한층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방송에 나온 이라크 장관들을 두고 “그들은 미쳤다. 세계를 향해 욕을 퍼붓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일이다”는 대목도 있다.
그래서 ‘살람 팍스’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미 CIA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합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만일 모사드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살람 팍스’는 안네의 일기에 이어 또 다른 유태인의 전쟁일기가 된 셈이다.
물론 그 입장은 정반대다. 오늘날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게 비친 유태인은 지난날 암스테르담의 한 집에 은신해 있던 안네의 가족을 덮친 나치 정보기관원과 다를 것 없다. 그 나치의 본산으로 침략의 대명사 같던 독일은 이번에 가장 강력히 전쟁을 말렸다.
그러고 보면 밀레니엄이 바뀌어도 ‘안네의 일기’는 배역만 달리한 채 이어지고 있고 그 배역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점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전쟁에서 일등 공신국이 된 영국인들도 우쭐한 기분을 잠시 접고 그들의 선조인 존 던이 17세기에 썼던 기도시의 마지막 부분을 음미해볼 일이다.
“누구든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상처 낸다/ 나는 인류의 하나니까/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조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사람을 보내지 말라/ 조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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