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미국 작가를 모른다구요? 그럼 오 헨리는 요? 아, 어색해 할 건 없습니다. '마지막 잎새’는 아시지요? 배호의 ‘마지막 잎새’…? 맞아요. 그게 다 그거예요. 포터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에 태어난 어느 의사의 아들에게 주어진 이름이고 그가 작가가 돼 스스로 지은 이름이 오 헨리지요. 그가 지은 ‘마지막 잎새’는 노래가 아니라 소설이지만 그것이 없으면 배호의 그 노래는 나올 수 없었지요.
1910년 오늘 오 헨리는 과로와 과음 그리고 이로 인한 간경화와 당뇨에 시달리던 48년의 생애를 마감한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탓에 약국점원 텍사스 카우보이에다 감옥살이까지 거쳤던 그의 ‘마지막 잎새’처럼 고단한 삶은 소설 속의 베이먼 같은 화가도 만나지 못한 채 일찍이 땅에 떨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오 헨리가 남긴 ‘마지막 잎새’는 영원해 그가 간지 반세기 뒤에 한국서 배호가 노래로 부르더니 배호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자라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놀라운 것은 오 헨리가 막상 미국에서는 그처럼 유명하지 않아서다. 그를 아예 모르는 미국인들은 의외로 많다. 더러는 소설 내용을 듣고서야 알은 체 하면서도 “미국서는 대단치 않은 작가” 라는 식의 주석을 잊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너무 감상적이라는 문학평도 많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오 헨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감상적’이라는 평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많은 한국의 평론가들이 그의 정서가 ‘동양적’이라고 하는 것도 그 비슷한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동서양을 떠나 휴머니즘에 차 있기에 한 세기 전 서양을 무대를 한 그의 이야기가 아직도 이웃의 이야기처럼 다정하게 들린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휴머니즘은 그가 작품 속에서 꾸며낸 것이라기보다는 타고난 본성일 수 있다. 오 헨리의 다정한 인간미는 그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대목인 감옥살이에서도 비친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한 은행에서 일하던 그가 저지른 횡령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미로 도망쳤던 그는 아내가 사경에 헤맨다는 소식에 돌아와서 감옥에 간다. 그는 애처가였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갔으나 하나뿐인 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서 출옥후 선물을 사주기 위해 ‘오 헨리’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사랑스런 아버지였다. 그래서 모범수로 일찍 출옥한 그는 좋은 이웃이었던 모양이다. 출옥한 뒤에도 감방의 분위기와 그 안에 갇힌 이웃들을 떠올리며 ‘마지막 잎새’를 쓴 것도 그렇다.
그래서 ‘마지막 잎새’는 유명하지만 지하철 노숙자들 이야기가 떠들썩하던 몇 년 전에는 감옥 시절의 체험이 배어 있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 ‘경관과 찬송가’가 부쩍 떠올랐다. 거처가 없어 노숙하던 한 전과자가 겨울을 나기 위해 감옥을 가려고 온갖 짓을 다해도 실패하다가 막상 새 출발을 결심하는 순간 경관에게 걸려 감옥에 가는 이야기였다.
“매디슨 스퀘어에 있는 여느 때의 벤치에서 소피는 불안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러기가 밤하늘에 소리높이 울고 바다표범 외투를 안 가진 아낙네들이 남편에게 상냥해지면…겨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러 모습의 ‘노숙자’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경찰도 찬송가도 가까이 있다. 그래서 작가가 이를 글로 담는 순간에도 마지막 잎새들은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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