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스(NEISㆍ교육행정 정보시스템)로 인해 마주 보고 달리던 기차 같던 정부와 전교조가 간신히 충돌을 면했다. 양쪽이 속도를 줄여서인지 원래 철로 같은 것이 아니어서 살짝 비킨 것인지는 따질 겨를이 없다. 네이스를 둘러싼 논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 라운드의 싸움이 시작돼서다.
예상대로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당국(교육인적자원부)이 전교조에게 백기를 들었다고 비난하고 교총은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퇴진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6월 7일에는 항의 집회를 열 계획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서 숨이 막히면서도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전교조와 대척점에 있는 교총이 교육부총리의 퇴진 서명운동을 벌이고 ‘반정부 집회’를 열려 하는 것이 1989년 오늘 전교조가 연세대에서 기습집회를 열고 결성된 일을 떠올리게 해서다.
원래 교원노조는 세계적 추세로 한국에서는 4.19 혁명으로 싹이 텄으나 그것은 5.16으로 짓눌리고 말았다. 그래서 교원노조 움직임은 오래 잠적했으나 6.29 선언이 나온 87년 9월 27일 한신대에서 결성된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는 그 씨앗이었다.
그러나 6.29라는 위장항복 끝에 태어난 6공 군사정권이 전교조의 결성을 방관할 리 없는 데다 두 조각이 난 야당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전교조 결성은 모진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원래 한양대에서 결성집회를 갖기로 해놓고도 제2, 제3의 장소를 마련할 만큼 신중을 기해야 했다.
한양대는 이미 이틀 전부터 전경으로 원천봉쇄 됐고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은 무정차 통과역이 됐으며 이미 와있던 교사와 지지 학생들은 모두 연행 됐다. 제2의 장소인 건국대도 봉쇄돼 전교조는 연세대 도서관앞 민주광장에서 불과 2백명의 교사와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결성됐다. 윤영규 교사(전남 체고)가 핸드 마이크로 개회했고 그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날치기 집회였다. 그나마 이들도 전경들에게 끌려갈 판이었으나 연세대 재학생들이 가로막아 주었다.
따라서 이들은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부를 겨를도 없었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을 부수고/ 침묵의 교단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보이는가 강물, 참교육 피땀 흐르는/ 들리는가 함성, 벅찬 가슴 솟구치는/…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
이 노래를 계기로 결혼하게 된 작사자 차봉숙과 작곡자 주헌신도 부부교사가 되기 무섭게 부부실업자가 되는 등 1천5백명의 교사들이 교단을 쫓겨난다. 그 뒤의 경과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교단을 쫓겨난 교사들은 문민정부 아래서 돌아 오고 전교조는 10년 만에 국민의 정부 아래서 합법화된다. 그럼에도 ‘참교육의 함성으로’에서 두 번이나 나온 ‘굴종’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굴종’은 오늘날 교총의 전신이었던 대한교련 시대를 두고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독재정권의 하수기관이었고 내부적으로는 81년 문공위 국회의원들에게 화문석 돗자리를 바쳐 비난을 받았던 대한교련과 그것으로 상징되는 한국 교육계의 굴종-. 아니면 그런 교육계의 어른들 아래 화문석처럼 깔렸던 교사들의 심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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