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가던 북한 화물선 서산호가 미국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것은 이제 거의 잊혀진 사건이다. 그 배가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도착한 나라가 예멘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더욱 드물다. 예멘은 우리에게 '멀고 작은 나라'다.
따라서 그 예멘이 1990년 오늘 '남북통일'을 했으나 우리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라비아반도에 밟힌 듯 옆으로만 퍼진 나라가 남북통일이라니…. 대충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막상 예멘의 면적은 44만㎢로 한반도 두 배가 넘는다. 국토만이 아니다. BC 10세기의 그곳은 유명한 '시바의 여왕'의 나라였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이야기에서만이 아니라 아랍의 여러 전설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나온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마케다'로 불리우며 그와 솔로몬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국조인 메네리크 1세라고 한다.
아랍의 신화에서는 '빌키스'라는 이름으로 태양신을 숭배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솔로몬이 하느님을 섬기라는 편지를 보내도 빌키스는 받아 들이지 않고 대신 선물을 보냈으나 솔로몬이 받아 들이지 않자 솔로몬을 만나러 간다. 이에 솔로몬의 수호신은 솔로몬이 빌키스에게 혹할까 두려워 그의 다리에 털이 많이 났다고 일러준다.
솔로몬은 그것을 확인해 보려고 왕좌 앞에 유리로 된 마루를 깔았으니 과연 솔로몬의 지혜였다. 빌키스는 그 유리 마루를 물로 보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건너 간 바람에 솔로몬은 그의 다리에 털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 탈모제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그런 이야기 속에 비친 예멘은 역동적인 나라다. 여왕이 수백 마리의 낙타에 향료를 싣고 당시로서는 멀고 먼 예루살렘을 찾아 간 것이 그렇듯 무역이 활발한 나라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본 예멘은 아라비아반도에 짓눌린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지중해를 잇는 요처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종교가 도입돼 축복받은 나라이자 그 종교들이 부딪힌 틈새에서 고난을 겪는 땅이기도 했다.
예멘의 분단과 통일도 그런 배경에서 이루어진다. 북부는 일찍이 오스만 터키가 점령하고 남부는 1839년 영국이 지배함으로써 종교적 성향도 다르고 해방된 시기가 달라 이념도 달라진다.
1차대전에서 오스만 터키가 패함으로써 독립한 북예멘은 친서방적인 회교국인 데 비해 남예멘은 영국의 지배가 끝날 무렵인 6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민족해방전선이 독립 후의 국정을 주도한다. 그래서 남북한이나 베트남과는 거꾸로 남은 친동방이고 북은 친서방이어서 착각을 일으키게도 했다.
그런 남북이 20여년간 분쟁만 거듭하다가 90년에 평화통일을 이루었으나 그것은 준비된 통일은 아니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남예멘에 개방과 개혁을 권한 것이 통일의 돌파구가 됐다고는 하나 그보다는 국경 부근에서 유전이 발견돼서였다. 그러나 이 유전은 남북의 정서를 통일하기는커녕 오일달러도 제대로 가져 오지 못해 94년 다시 분쟁이 일어나 북예멘의 무력통일로 끝을 맺었다.
그럼에도 예멘은 아직도 시바의 여왕의 나라답게 활기찬 데가 있다. 북한 화물선이 억류됐을 때 살레 대통령이 전화로 석방하라고 호통을 쳐 파월 미 국무장관이 "오늘처럼 힘든 날은 없었다"고 했다. 그럴 때 그는 시바의 여왕의 후손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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