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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다른 아버지/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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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다른 아버지/5월 20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17>

1980년 오늘 '강한 미국'을 내세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돼 40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로널드 레이건의 치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그는 재선해 그 2기 집권도 89년에 끝났으나 오늘날의 부시 정권은 그의 제3기 집권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부시(2세)의 '아버지'는 41대인 부시 1세가 아니라 레이건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물론 그것은 호적이나 유전인자와는 무관한 인상평이다. 이를테면 레이건이 집권하자마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한 것이나 부시가 북한 등을 '악의 축'이라고 한 것이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칼럼니스트 빌 켈러가 '레이건의 아들'이라는 에세이를 쓴 것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레이건의 제3기는 부시 1세의 통치라고 했으나 그렇지 않다. 41대인 부시 1세는 부시 1기에서 끝났고 레이건 3기는 42대인 부시에서 시작됐으며 이제 제4기를 맞기 위해 그는 이라크에서 북한으로 가지 않을까…"

레이건과 부시의 한반도 정책이 한국인들을 겁주거나 화나게 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시는 북한에 특사를 보내어 핵문제 같은 것을 해결하려는 클린턴 방식보다는 "악의 제국은 경제를 봉쇄하고 그래도 저절로 무너지지 않으면 무력을 쓴다"는 레이건 식의 냉전전략을 선호하는 인상이다.

레이건의 한반도 정책은 물론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뜻 있는 한국인들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81년 1월 20일 취임하자 1주일도 못돼 아직 정식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은 전두환을 불러 2월 2일 회담을 한 것이 그런 것이다.

미국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남 먼저 초청한 것이 기분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가 정식 대통령이 아니라 2월 25일 대선을 남기고 있는 임시 대통령 같은 신분이어서도 아니다. 그 선거는 그 전해 5.17에 사실상 판가름난 상태였다.

그것이 한국인들을 화나게 한 것은 미국이 광주의 학살로 피묻은 손을 남보라는 듯 버젓이 들어준 점이었다. 그 이듬해 부산의 미 문화원 방화는 그 답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4년뒤 서울 미 문화원을 점거한 학생들은 "우리는 왜 미 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는가"라는 선언에서 레이건의 전두환 초청을 지적했다.

그런 비난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것도 '강한 미국'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못한 채 '악의 제국'만 쓰러졌다. 그리고 레이건이 간 뒤 12년 뒤에 나타난 부시 치하에서 미국은 '강한 미국'이기에 앞서 '무서운 미국'으로 비친다.

최근에는 그 두 사람 옆에 또 낯익은 인물이 섰다. 냉전시대 말기에 대처리즘이라는 보수적 경제이론으로 역시 보수적인 레이거노믹스와 흥겹게 춤을 추었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이다.

그는 지난 달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국가경영(Statecraft)>이라는 저술을 통해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물질적 능력은 물론 도덕적 능력까지 갖춘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했으니 이제 강한 미국은 '도덕적 미국'이 된 것이다. 이 '철의 여인'이 "미국은 세계의 가장 위대한 민주국가답게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는 전사"라고 한 것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그 책은 이라크전쟁 전인 지난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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