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오늘 심형래의 SF영화 [용가리]가 칸 국제영화제의 영화견본시장에서 2백72만달러(39억원)의 수출계약을 맺은 것은 IMF 상황에서 모처럼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라기 보다는 믿어지지 않는 소식에 가까웠다.
코미디언 출신인 심형래가 감독을 했다는 것이 우선 그랬다. 영화와는 무관한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가 코미디언이 된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감독이라니…. 배우와 감독 사이에 엄연한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고 한국에서는 [배우]와 [코미디언]도 그악스럽도록 금을 그으려 하지 않는가.
따라서 심형래가 84년에는 [배우]로, 93년에는 영화제작자 겸 감독으로 변신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 있던 영화계 인사들의 눈에도 그의 영화제작 활동은 어딘지 코미디 같은 것이었다.
심형래는 95년 자신이 만든 [파워킹]을 팔러 칸 영화제에 갈 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 그가 탄 비행기에 동승한 대기업의 영화관계자가 어디 가느냐고 묻더니 칸 영화제에 영화를 팔러 간다고 하자 허리를 잡고 웃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 심형래가 그에게 보여준 최상의 코미디였으리라. 막상 심형래는 그 길에서 [파워킹]을 130만 달러 어치나 팔았지만.
따라서 정부가 99년 그를 [신지식인 1호]로 선정하자 비웃는 소리가 요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7월 개봉된 [용가리]의 흥행이 예상보다 못해 영화는 [용꼬리]가 되고 신지식인은 [바보 영구]로 되돌아 갔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영화 유통구조에 서투른 그는 미국흥행에서 사기를 당하고 국내 흥행에서는 소송에 걸려 사기꾼처럼 비쳤다.
그런 심형래가 요즘 영화 [D 워]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D는 용(Dragon)이니 [용가리]의 노하우를 발전시킨 것이자 그것이 실패만은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원래 심형래는 [용가리]가 흥행 미숙으로 기대치에는 미치지는 못했으나 국내외에서 55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성공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총제작비 150억을 들여 내년 8월 개봉을 목표로 하는 [D 워]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 용이 되려는 이무기의 이야기. 지금까지 용이 나오는 SF영화에는 없던 동양적 캐릭터인 이무기가 등장해 5백년의 시차를 넘나들며 조선시대 한양의 거리와 LA거리가 교차되는 것으로 심형래는 그 성공을 낙관하고 있다. 예상수입을 10억 달러로 잡고 있으나 어쩌면 그 네 배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용꿈이 실현될 것인지 아니면 또 한번 이무기처럼 추락할 것인지는 점칠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비친 그는 어엿한 [신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신지식인]은 머릿속에 백과사전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원은 부족하나 우수한 IT기술을 가진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승부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사람일까. 달리 말해서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물리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박사 고사]를 치렀다면 코페르니쿠스가 수석을 할 만큼 아는 것이 많아서 그는 위대한 것일까.
87년부터 90년까지 4년간 연예인 소득 1위였던 그가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도 그렇다. 그는 더 큰 돈을 벌고 싶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고생길을 택한 것일까. 부디 후자이기를 바라며 [D 워]의 성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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