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국어사전을 보고 놀랐다. 98년에 나온 연세한국어사전이 '촌지'(寸志)를 "뇌물로 주는 금품"이라고 풀이 해서다. 그것은 비슷한 시점에 나온 다른 사전들이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선물'이란 뜻으로 자기의 선물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물며 "마음 속의 자그마한 뜻"이라는 옛날 사전의 풀이와는 전혀 다른 말 같았다.
연세한국어사전의 그 풀이를 보고 놀란 것은 "임금님이 빨가벗었다"는 어린이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것과 비슷한 것이다. '촌지'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학부형들에게는 세금과 같은 뇌물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 근엄한 이름인 셈이다. 그러나 '뇌물'이라는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에는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가짜 옷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성한 스승'이라는 우리 사회의 금기 때문에 차마 발설하지 못하던 것을 국어사전이 터뜨린 것이다.
또 하나의 놀라움은 그것이 1751년부터 30년간 프랑스에서 간행된 백과사전을 떠올리게 해서다. '백과전서'(百科全書)로도 불리우는 이 출판물을 통해 디드로나 달랑베르 등 계몽주의자들은 중세의 허위를 깨우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바탕을 마련했다는 것이 정설이나 백과사전이 아니라 국어사전의 올바른 단어 풀이 하나라도 한 시대의 미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그러나 '촌지'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부형이 교사들에게 돈봉투를 건네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봉투를 여전히 '촌지'라고 부르는 관행도 살아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촌지=뇌물'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계몽되지 않아 촌지는 국어생활에서 위엄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백과사전이 나오고 한참 뒤인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도 3개월이 지나 빵을 달라며 베르사이유 궁전까지 행진했던 주부들은 막상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발코니에 나타나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 시대의 미망을 떨쳐버리는 것은 헌옷을 갈아입듯 간단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촌지'는 앞으로도 스승의 날 등을 맞으면 학원가의 뜨거운 화두가 될 판이다. 교장단과 전교조가 맞붙어 살벌한 분위기에서 맞는 올 스승의 날도 예외는 아니다. 서승목 교장의 자살이나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둘러싼 갈등은 스승과 스승 사이의 이야기이고 스승과 학부모의 접점은 언제나처럼 촌지다. 최근 광주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촌지 받는 12가지 기술'이 뜬 것이 그렇듯 촌지는 퇴행하기는커녕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러고 보면 연세한국어사전의 그 풀이는 우리 사회의 오랜 논의의 귀결이라기보다는 시대를 앞서간 계몽주의자들이 우리 사회에 논의하도록 제시한 방향처럼 비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뒤돌아 보면 우리는 '촌지'를 진지하게 논의해본 기억이 없다.
'촌지'는 때로는 부정한 것으로 비난받거나 때로는 신성한 존재로 떠 받들여졌을 뿐 그 정체나 존재이유를 둘러싸고 데카르트적인 논의를 거친 적은 없다. 하긴 데카르트적인 논의가 활발했다면 우리의 언어가 그처럼 어지럽고 나아가 사회 자체가 어지러울 것인가. '뇌물' '촌지' '떡값' '정치자금'… 등 생김새는 일란성 쌍둥이 같으나 이름은 딴판인 말들이 어지럽게 나돌면서 우리는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바벨탑 쌓기를 거듭해 왔다.
그 여러 이름 가운데 기자와 교사들이 받는 봉투를 지칭하는 '촌지'는 가장 단가가 작은 편이나 그 말이 너무 근엄한 것은 큰 폐해다.'뇌물'이나 '떡값'은 이름부터 더럽거나 천박해 받는 이들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데 비해 촌지는 그 멋진 이름 때문에 받는 이들이 당당한 경향이 없지 않다. 많은 교사들이 나름대로의 촌지 정당론이나 불가피론을 펴는 것도 그것이 처음부터 '떡값'으로 불리웠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촌지'와 '떡값'은 다른 것인가. 앞서의 연세한국어사전은 떡값을 "어떤 직위를 가진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주는 옳지 않은 돈"이라고 했으니 '뇌물로 주는 금품'(촌지)과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런 원칙론을 떠나 현실론에 따라 촌지를 정당화시키려 해도 먼저 떡값의 타당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공무원인 학부형이 공무원인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그 공무원은 떡값으로 그 축난 월급을 채워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에는 신성한 공무원과 보통 공무원이 있고 촌지는 신성한 공무원에게 바치는 성금 같은 것이니 떡값과는 무관한 것일까. 공무원 신자가 헌금을 하는 것이 떡값과 무관하듯이.
물론 그런 가설은 유치한 것이나 막상 우리 사회의 정서는 그런 수준에서 멀지 않다. 떡값을 옹호하는 말은 들은 적 없으나 촌지를 미화하는 말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이 그렇고 스승의 날이면 교사들의 박봉을 걱정하는 소리가 요란한 것도 그렇다.
그것은 얼핏 반가운 일이다. 2차대전의 영웅인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려거든 교사의 봉급을 올려주라"고 했듯 교사의 처우를 걱정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반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설이 잘못된 것이면 철없는 사회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촌지를 옹호하는 데 동원되는 주장들이 상당부분 그렇다.
촌지를 옹호하는 말은 대충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군사부(君師父)일체라 스승은 나라님이나 부모 같아서 그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면 촌지에 시비를 거는 것은 불충이나 불효 같은 것이 되고 만다.
물론 그런 주장은 억지다. 오늘날 군은 나라님에서 국민의 머슴으로 격하되고 부는 처자의 눈치나 보고 있는데 왜 유독 사만 들먹거린다는 말이 아니다. 옛날에도 군사부 일체를 찾는 사제관계는 예외 가운데도 예외 같은 것으로 공자와 그를 따라 천하를 주유하던 제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공자가 가르칠 때는 스승이고 가난한 그들 일행이 밥상에 마주 앉으면 아버지였다. 그리고 공자가 뜻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그가 작은 나라라도 다스리게 됐다면 그들은 신하가 됐을 것이다. 공자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안회(顔回)는 이(吏)를 맡을 만 했으나 단명해서 죽고 없었다면 증삼(曾參)이 맡았을까. 그리고 이재에 밝은 자공(子貢)은 호(戶)도 공(工)도 무방하나 무뢰한 출신으로 순박하고 용맹한 자로(子路)는 분명 병(兵)을 맡는 식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사들이 지난날의 스승들보다 가난하다는 듯한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난날 스승의 대명사인 훈장들의 생활고는 잘 알려져 있다.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全彰爀)이 훈장이었다는 사실을 들 것도 없이 '훈장×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훈장이 마음고생으로 속이 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하나 학부모들의 처분에 맡겨진 훈장들의 가난한 삶이 엿보이기도 한다.
'촌지'라는 말이 애당초 도입된 과정도 수상하다. 기자들이 받는 봉투건 교사들이 받는 봉투건 촌지라고 불러야 한다는 문헌은 없는데도 유독 그 두 직종이 받는 봉투에 그 말이 쓰이는 것부터 그렇다. 그 성격은 떡값이나 뇌물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음에도 그 말이 따로 살아 있는 것은 그 수혜자 가운데 매스컴을 움직이는 기자들이 있어서일까.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직업이기심으로 볼 수 있으나 기자들이 자기네들과 무관한 '정치자금'에도 관대한 것을 보면 무관심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맨 처음 약삭빠른 취재원이나 학부형이 가던 길에 봉투에 쓴 '촌지'가 어느새 국어사전에 자리를 굳혀 뇌물과 떡값으로도 지겨운 우리 사회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희극이다.
길거리 약장수들을 단속하면서도 그들의 약을 '가짜 약'이라고 부르지 않고 상표에 쓰인 대로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그것은 자신의 사유는 접어 둔 채 매스컴의 힘에 쓸려 따라서 말하는 것이니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면 '극장의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촌지라는 헛된 말에 속아 스스로 뇌물과는 다른 촌지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시장의 우상'이라고 할까.
정답이 어느 쪽이건 그것은 국어의 문제다. 그리고 '유신' 같은 말이 그렇듯 우리 역사의 비극은 국어의 수난사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나온 새 국어사전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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