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오늘 이스라엘이 '축포'소리도 요란한 가운데 건국을 선언한다. 다만 그 축포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피도 쏟게 했다. 1차대전 당시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던 영국이 유태인과 아랍인 모두의 협력을 얻으려 한쪽에는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하고 한쪽에는 팔레스타인 건국을 약속한 결과였다. 그 대영제국이 2차대전 이후 힘없는 보통제국이 되어 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어 도망치듯 물러가자 다음 순서는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주민의 주먹싸움뿐이었다.
따라서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는 그 날은 이스라엘 건국일이자 제1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날이고 그 전쟁이름도 둘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독립전쟁이고 아랍측에게는 팔레스타인 전쟁인 것이다.
이름과 상관없이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아랍의 바다에 떠있는 듯한 65만 유태인들이 아랍 연합군에게 승리했으니 마치 양치는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격이었다. 하지만 그 뒤 2차(56년) 3차(67년) 4차(73년) 전쟁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점차 골리앗처럼 우람스러워졌다.
이스라엘의 유태인이 오늘날 5백40만명으로 늘어나고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1백30만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차 중동전쟁에 참가한 모든 아랍권이 오늘날 이스라엘 앞에서 왜소해 보인다는 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의 맏형 같은 미국의 위상도 그렇다. 냉전 초기였던 당시의 미국이 소련과 더불어 공동챔피언이었거나 소련을 가까스로 따돌린 1인자였다면 오늘날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본산이다. 이번의 이라크 전쟁으로 그 서슬은 한층 푸르다.
미국의 서슬이 푸른 판에 이스라엘의 표정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달 3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양측에 '로드맵'이라며 전달된 중동평화안을 두고 이스라엘이 보이는을 반응도 그렇다. 양측이 공존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측은 자살테러를 막는다는 등 그 내용은 상식적인 것이나 이스라엘이 여러가지로 시비를 걸고 있다. 1차 중동전쟁 이래 고국을 떠난 팔레스타인 주민과 그들의 후손 4백만이 귀환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그렇다.
사실상 미국이 만들어 낸 평화안을 이스라엘이 트집을 잡는 것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선심을 쓰려는 부시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하고 맏형에게 한번 해본 배부른 투정 같기도 하나 반세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그림이다.
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수반 아라파트가 사실상 실권을 잃은 채 두 나라의 지지를 받는 아바스가 수상에 오른 것도 격세지감이다. 팔레스타인 수상이 이스라엘이나 미국주재 대사로 아그레망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난날 번주국의 새 국왕이 대국의 승인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부시가 지난 9일 선심쓰듯 제시한 미ㆍ중동 자유무역지대(FTA) 창설안도 그렇다. 오늘날 무역부진에 시달리는 아랍국들은 이를 환영하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요르단의 경우가 말해주고 있다. 84년 미국 및 이스라엘과 자유무역지대를 설정한 요르단은 87년 7백만 달러에 불과하던 대미수출이 지난해는 4억 2천만 달러로 늘어났으나 경제는 완전히 이스라엘에 종속되고 말았다. 따라서 아랍측은 경제의 이스라엘종속을 막기 위한 5차 전쟁을 펴야 하나 그 전쟁만은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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