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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시대'의 시작/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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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시대'의 시작/5월 10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9>

1869년 오늘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다. 그러나 {철도공사 하는 일은 언제까지나/ 철도공사 하는 일은 끝이 없다네/…} 라는 [철도공사] 노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와 아이오와주의 오마하를 잇는 이 철도 이후에도 8개나 되는 횡단철도가 놓이면서 [철도공사]는 민요가 돼 한국에서도 한세기 남짓 유행했다.

그 노래가 한국에서 뜸해질 무렵 [태평양 시대]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우연일 뿐이나 따지고 보면 태평양 시대는 대륙간 횡단철도와 함께 시작된 셈이다. 대서양에서부터 서쪽으로 나가던 개척자들의 역마차가 태평양에서 멎을 수는 없었다. 19세기가 가기도 전인 1898년 그들은 하와이를 병합하고 스페인에게서 필리핀을 빼았았다. 실은 철도공사가 한창이던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것도 태평양 시대의 서곡인 셈이다.

그런 면을 떠나서 이 철도공사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링컨 치하에 시작된 것도 눈길을 끈다. 남북전쟁이 남북으로 갈라진 미국을 난폭하게 통일한 것이라면 횡단철도는 동서로 갈라진 미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한 것이고 그 두 주역은 링컨인 셈이다.

실은 이 철도공사도 얼핏 평화적이나 그 내면에서는 남북전쟁 같은 싸움을 거쳤다. 당시 정부는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가 새크라멘트에서,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는 오마하에서 출발하라고만 했지 공사범위는 사전에 정해 주지 않았기에 두 회사는 더 많은 구간을 확보하려고 처절한 경쟁을 했다. 그래서 두 회사가 7년간 있는 힘을 다해 싸운 끝에 만난 유타주 프리몬토리는 한국전의 휴전선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그 곳서 만나 함께 박은 골든 스파이크는 휴전이 아닌 종전선언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남북과 동서로 통일된 셈이나 그것이 세계 평화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달려온 카우보이들이 바다 건너에서 또 다른 황야를 찾았다는 것은 역사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대륙간 횡단철도가 착공되기도 전인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黑船)이 도쿄 앞바다에 나타나 불평등 조약을 맺는 등 미국의 제국주의는 이미 태평양 건너편에 선을 보였다.

철도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 저임 노동자들을 투입한 것도 또 다른 태평양시대의 서곡이었다. 청나라 말기였던 당시 많은 중국인들이 민생고를 피해 헐값에 품을 파는 [쿠리(苦力]로 이 철도공사에 참가했으나 그 부작용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시 철도회사와 미국 정부는 값싼맛에 쿠리들을 고용했으나 공사가 끝나 이들이 상업 등 여려 업종에 진출해 유럽인들과 경쟁하면서부터 일이 시끄럽게 됐고 결국은 미국판 황화론(黃禍)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당시 백인들이 중국인 쿠리들에게 얼마나 인도주의적으로 대해 주었는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중국의 인권문제는 오늘날 심각한 화두가 돼있다.

한마디로 [철도공사]는 가벼운 민요로 끝나기에는 너무 무거운 시대의 변천이고 그것은 미국의 횡단철도만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경부선이 그렇다. 그리고 한국과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를 잇는 [철의 실크로드] 공사도 복잡한 이야기만 오갈 뿐 진척이 없는 것은 그것이 [공사]가 아닌 [역사]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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