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디엔비엔푸의 '낡은 유럽' 군대/5월 7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디엔비엔푸의 '낡은 유럽' 군대/5월 7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이라크 전쟁이 싱겁게 끝나면서 미 국방장관 럼즈펠드가 프랑스와 독일을 '낡은 유럽'이라고 했던 일도 잊혀져 가고 있다. 미국내에서도 반전여론이 뜨겁던 당시 세계가 대체로 프랑스와 독일편에 서서 럼즈펠드를 전쟁광이라는 식으로 비난한 것도 이제는 우스꽝스런 기억이 됐다.

그러나 당시 럼즈펠드가 세계의 입방아에 귀가 가려웠는지는 몰라도 기가 꺾이지 않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선연하다. 그러고 보면 럼즈펠드의 '낡은 유럽'이라는 말도 터무니없는 폭언이 아니라 나름대로 근거도 있어 보인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그렇다.

1954년 오늘 프랑스군이 베트남의 디엔비엔푸에서 월맹군에게 패배한 것도 그 하나다. 프랑스군은 패배했으나 미군은 승리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베트남 전쟁'이라면 누구나 프랑스의 패배로 끝난 1차 전쟁보다 미국의 패배로 끝난 2차 전쟁을 떠올리니 베트남 전쟁의 치욕과 비난은 미국이 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패전의 모습이다. 53년 겨울부터 라오스와 북베트남 접경인 디엔비엔푸에서 계속된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5천명이 전사하고 1만명이 항복한다. 그래서 미군의 패배가 '철군'으로 끝난 것과는 달리 프랑스의 패배는 '포로송환'처럼 끝났다.

그 참패의 배경은 더 창피하다. 프랑스는 2차대전을 통해 독일이나 일본이 무서운 것은 알았는지 모르나 동남아인들을 깔보는 것은 여전해 그런 창피를 당한 것이다.

뚜렷한 보급로를 확보하지도 못한 채 낙하산으로 디엔비엔푸에 병력을 투하한 것이 우선 동남아인들을 우습게 본 것이다. 중국이 공산화되는 등 아시아가 바뀌고 있다는 역사의 흐름을 외면한 것이기도 했다. 13㎞에 이르는 요새를 쌓아 놓고 이를 믿은 것도 마지노선이 쓸모 없었다는 2차대전의 교훈을 잊은 것이었다.

프랑스의 수난은 디엔비엔푸에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그해 11월에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봉기로 역시 8년의 전쟁 끝에 알제리도 해방된다. 같은 8년전쟁이라도 알제리 전쟁은 베트남 전쟁보다 아픈 것이었다. 인도차이나가 식민지였다면 '프랑스 작가' 카뮈의 고향인 알제리는 '내국' 같은 곳이었다. 따라서 알제리가 해방되기 2년전인 60년 카뮈가 죽은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알제리 해방으로 제4 공화국이 무너지고 제5 공화국이 들어서는 등 공화국의 나이가 늘어난 것도 '낡은 유럽'의 이미지를 재촉했다. 그러나 디엔비엔푸의 보다 큰 부끄러움은 다른 데 있다. 2차대전으로 안방을 잃었던 프랑스가 연합국의 도움으로 겨우 국토를 되찾기 무섭게 지난날의 제국주의 이권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그것은 2차대전에서 국토를 뺏기지 않아 망명한 드골을 받아들인 영국이 대전이 끝나자 인도와 파키스탄을 독립시킨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우연히도 그 영국은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편에 섰다.

물론 럼즈펠드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낡은 유럽'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와 함께 낡은 유럽으로 지칭된 독일은 1차대전에서 모든 식민지를 잃어 '해방전쟁'이라는 말도 잊은 지 오래다. 그리고 전쟁에 협력한 영국이건 반대한 프랑스와 독일이건 이라크의 석유이권에 눈독을 들이는 점에서는 다같이 '낡은 유럽'으로 비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