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문기자 양평(梁平)의 '그 해 오늘은'의 연재를 시작한다. 양평 기자는 1970년 한국일보에서 언론활동을 시작한 이래 서울경제신문(1988년ㆍ부국장), 세계일보(1999-2003년) 등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약해 왔다. 또 지난 99년 10월부터 역사 속의 오늘을 지금의 시점에서 되짚어보는 '그 해 오늘은'을 세계일보에 연재했으며 현재 '서울칼럼니스트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이제는 역사용어가 된 '문민정부'지만 그 '문민'은 아직도 어색하다. 그 정권은 군인출신 대통령과 그 앞에 차렷 자세로 서있던 민간출신 정치인의 합작품이니 '군민'이건 '민군'이건 '군'이 들어가야 구색이 맞는다. 그럼에도 '군'이 빠진 것은 허전하고 그 대신에 쓰인 '문'은 그 정체를 몰라 황당하다. 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달리 글을 숭상해서일까. 글쎄…
그럼에도 문민정부는 군사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역사의 시작이다. 그 정권이 출범하던 해인 1993년 오늘 근로자의 날이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복원된 것도 그 하나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1923년부터 5월 1일에 맞던 '노동절'이 35년만인 58년부터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에다 날짜가 3월 10일로 바뀐 것은 역사의 파행이었다. 따라서 그 날짜가 35년만에 복원된 것은 35년만에 나라를 되찾은 것과는 다르나 분명 하나의 '광복'이었다.
5월 1일이 이사하기 좋은 날처럼 행사하는 데 길일이고 3월 10일이 불길한 날이어서는 아니다. 1866년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던 시카고 노동자들의 피가 어린 5월 1일은 1890년부터 세계 노동자들의 축일인 메이 데이여서다.
물론 메이 데이라면 지난날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에서 더 성대하게 치르던 '레드 크리스마스'같은 축일이었으나 서구에서도 이 날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인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던 해방공간에서 우리도 이 축일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러던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반공을 위해 다행인지 모르나 메이 데이에서 이탈한 것은 우선 모양새가 외로웠다.
따라서 메이 데이로 되돌아 간 것은 하나의 빛을 되찾은 셈이나 그것도 온전한 광복은 아니었다. 우리의 '광복'이 '분단'과 동의어이듯 되찾은 5월 1일도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로 분단돼 있다. 그 두 말은 얼핏 동의어 같으나 '추석'과 '한가위' 같은 것은 아니다. '노동'과 '근로'라는 말이 크게 달라서가 아니다. 억지로 구분한다면 노동(勞動)은 일한다는 뜻이고 근로(勤勞)는 열심히 일한다는 정도다.
그 차이는 영어로 구분할 수도 없어 '메이 데이'는 되돌아 왔으나 노동절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셈이다. 노동자에게 그 날은 노동절이고 사용자에게는 근로자의 날인 것이다. 그것은 역시 영어로는 같은 말인 '국민'과 '인민', '친구'와 '동무'가 우리 민족을 가르고 있는 것과 같다.
그 간극은 오늘날까지 메워지지 않고 있다. 노동쟁의가 곧잘 피로 얼룩지며 경찰이 사용자들에게 매수됐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도 '메이 데이' 이전 시대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남의 노동자들과 북의 로동자들이 함께 메이 데이 행사를 치르기도 했으니 어쩌면 우리는 남한의 국어통일도 못한 채 남북통일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족통일이 필연이듯 그 통일도 필연적이다. '삼당야합'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삼당통합을 통해서도 우리 역사는 앞으로 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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