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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절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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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절임 선물

<책 소개> 동방특급열차 - 김정일과 함께한 24일간의 러시아여행<하>

우리는 매일같이 다음 날의 메뉴에 대해 토론했다. 그것은 김정일 자신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그에게는 프랑스에서 수학한 훌륭한 요리사들이 많다고 했다. 러시아식, 중국식, 북한식, 일식 그리고 프랑스식 요리 중 어떠한 요리든 다 주문할 수 있었다. 메뉴는 보통 15~20가지의 요리로 구성되었다. 김정일은 미식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요리법을 잘 아는 듯했지만 식사는 매우 간소하고 적당하게 했다. 마치 시식을 하듯 조금씩 먹었다. 김정일은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 은젓가락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식탁에서 나에게도 은젓가락이 제공되었다. 나는 북한과 남한을 방문할 때 젓가락 사용법을 배웠다. 나무젓가락 사용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은젓가락은 여차하면 손에서 미끄러져 빠져 나가려 했다.

<사진 8> 노보시비르스크 츠칼로프 항공기 생산기업에서 조종사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는 김정일

한번은 메뉴에 왕새우가 있음을 알고 이 괴물에 대해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요리사에게 무어라고 말하자 요리사는 큰 접시에 이국적인 해산물을 가져왔다. 그러자 김정일은 "이것이 바로 그 왕새우입니다. 실제 모습이 어떤지 한번 보세요"라고 말했다. 접시에는 반은 바닷가재 같은 엄청난 크기의 새우가 큰 꼬리를 단 채 누워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살짝 건드려 봤다. 새우는 다리를 곧게 펴더니 살아 움직였다. 아마 그들은 모든 요리에 냉동 상태가 아닌 자연 상태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하는 듯했다. 이튿날 우리는 그 왕새우를 맛볼 수 있었다. 내겐 이국적이었던 왕새우가 어느 새 맛있는 요리가 되어 버렸다.

또 한번은 북한의 지도자가 내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보르시치(고기와 야채를 넣은 러시아식 수프)를 주문하자고 제안했다. 보르시치는 러시아인들이 만드는 것과 비슷했으나 뭔가 좀 빠진 듯했다. 아니면 반대로 동양의 양념을 너무 많이 넣어 러시아식이나 우크라이나식 보르시치가 내는 고유의 향을 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어 지느러미 요리는 아주 좋았다. 맛이 좋고 자극적이었다. 우리는 다른 전통 요리인 국수도 맛보았다. 물론 나는 이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밀가루나 메밀가루 혹은 감자 가루나 옥수수 가루로 만들지 않나 싶다. 국수는 쇠고기나 닭고기 혹은 꿩고기 육수에 말아 먹었다. 북한 사람들은 해삼이나 오징어 등의 다른 해산물도 좋아했다.

<사진 9> 노보시비르스크 소재 시베리아 국립 철도대학을 방문한 김정일

식탁에는 언제나 다양한 한식 반찬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김치는 반드시 나왔는데, 그것은 배추, 무, 또 다른 야채에 마늘, 파, 고추 등의 양념을 넣어 만든다. 가끔씩 과일과 절인 조개들이 나왔다. 김정일은 조선 사람들이 매운 것을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를 설명했다. 조선 사람들은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데 필요한 일정한 효소가 결핍된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매운 양념이 일종의 대체 효소이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에게는 매운 음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의사들에게 그 말이 옳은지에 대해 물어 봤지만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디저트로는 고유의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이 나왔고 차와 커피가 제공되었다. 우리 둘만 있을 때 김정일은 커피를 자주 마셨다. 나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단 한 차례 맛을 보았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공되는 커피는 진하고 향기로웠다. 그래도 나는 차가 더 좋았다. 그 이후 나는 차만 대접 받았다. 날씨가 더울 때는 녹차가 나왔다. 만찬이나 오찬 때는 인삼차를 끓여 내왔다. 러시아인들이 양파나 당근을 좋아하는 만큼 북한 사람들은 다양한 요리에 인삼 가루를 첨가한다. 내게 인삼차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생수는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유명한 러시아산, 북한산, 일본산 탄산수와 비탄산수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요리에는 러시아의 일반 물이 사용되는 듯했다. 식료품은 대용량 특별 컨테이너로 공급되었다. 우리의 첫 정차역인 옴스크에 다다르자 북한 사람들은 화물 트럭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에서 옴스크로 신선한 식품을 실은 비행기가 도착한 것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실은 듯한 밀봉 컨테이너들이 열차에서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운반되었다. 그러한 작업은 모스크바, 노보시비르스크, 하바로프스크에서도 반복되었다.

<사진 10> 하바로프스크 지방 의전국장 콘드라토프의 영접을 받고 있는 김정일

한번은 김정일이 쌀로(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돼지 비계)를 좋아한다면서 소금에 절인 오이와 고기만두, 흑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시베리아 지역을 달리고 있을 때 옴스크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모든 것을 메뉴에 포함시키도록 귀띔해 줬다. 옴스크 주에서 있었던 리셉션에서 반쯤 훈제된 가슴 부위의 쌀로가 제공되었다. 김정일은 맛을 본 뒤 "이것은 진짜 쌀로는 아니군요"라고 말했다. 식초에 담가 절인 불가리아식 오이도 나왔다. 그는 다시 "진짜는 나무통 속에 넣어 소금에 푹 절여서 오이가 소금기로 인해 약간 검은 색이 나야 한다는데"라고 말했다. 빵은 좋아했다. 그리고 옴스크의 보드카를 맛본 그는 맛은 인정했지만 더 마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요네즈와 치즈에 튀긴 작은 동전 크기의 만두가 조그만 프라이팬에 담겨 제공되었다. 김정일은 포크로 찍어 들며 말했다. "이게 무슨 만두지요? 만두는 좀더 크게 해서 육수에 삶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도착 전에 내가 미리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소금에 잘 절여지고 육질과 지방의 교잡이 적절하여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쌀로, 물만두 그리고 집에서 절인 질 좋은 원조 러시아식 오이가 제공되었다. 김정일은 매우 흡족해했다. 그는 그곳에서 야코블레프 주지사의 권유로 마셔야 했던 보드카 외에 이러한 안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귀환 도중 하산 역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절인 오이 한 통을 선물했다. 고가의 선물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서 그가 보다 자주 러시아에 대해 회상하기를 기대하는 뜻에서였다.

***하산 역에서의 이별**

현지 시각 2001년 8월 18일 07시 40분, 열차는 텅 빈 하산 역에 진입했다. 여기서 러시아측 차량과 북한측 차량은 서로 분리되었다. 우리측 경호원들은 김정일 지도자측 경호원들과 기념 촬영을 시작했다. 잠시 후 북한 지도자의 열차는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 러시아와 북한 영토에 각각 3개와 6개의 교각을 두고 서 있는 '우호의 다리' 위에서 제동을 걸었다. 김정일의 전용칸은 '김일성의 오두막'이 서 있는 국경 근처 플랫폼에 멈추었다. 이 오두막은 1986년 김일성 주석이 역시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방문할 당시 연해주 지도자들과 만나 환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된 것이었다.

오두막에는 조그만 식탁이 마련되었다. 나와 김정일은 그가 러시아를 떠나기에 앞서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지막으로 마주 앉았다. 김정일은 러시아측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헤어지기가 매우 아쉬운 듯했다. 우리는 24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는 동안 매우 가까워졌다. 그는 내 옆에 있는 동안은 항상 권위 있는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우리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눴다.

<사진 11> 하바로프스크시를 떠나며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김정일

김정일이 전용차에 오르자 수행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우호의 다리'를 지나 북한측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하산 역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기서 하산 지역 대표에게 평범한 러시아식 사우나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주민의 집에 현대식 설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소박한 사우나가 있었다. 찬물은 물통에, 뜨거운 물은 벽난로에 붙어 있는 가마솥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약 4시간 정도 사우나를 하면서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여러 나라에서 간혹 '동방의 수수께끼 같은 지도자'라고 불리는 김정일과 지난 3주간 여행을 하면서 쌓인 긴장감을 훌훌 털어 냈다. 사우나가 끝난 뒤 세르게이 다리킨 연해주 주지사는 우리에게 조그만 보트를 내주었다. 우리는 보트를 타고 신선한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이렇게 해서 '김정일과 함께 러시아를 여행하라'는 나의 임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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