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주위에는 사람들이 자주 바뀌었으나 조선인민군 참모장을 비롯한 3~4명의 장관은 줄곧 그와 함께 이동했다. 또 그와 늘 함께한 사람들은 경호원들로 그들은 우리측 경호원들과 몇 곡의 러시아 노래를 함께 부를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사진 5>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철도부로부터 받은 선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중심
김정일은 평범한 주위 사람들에 대해 매우 소탈하게 행동했으며 측근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김정일 앞에 설 때마다 머리를 깊숙이 숙여 공손하게 인사하고 자세를 바로 하라는 장군님의 보일락 말락 하는 신호가 있을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측근들은 김정일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그에 대해 말할 때면 줄곧 '사랑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우리 장군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등 3인칭을 사용했다. 경호원들은 김정일에 대해 더욱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경호대는 키가 겨우 1백56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육군 대령이 지휘했다. 그가 특수경호대장이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측 경호원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경호팀은 약 2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일반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항상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녔다.
김정일은 카키색의 인민복을 입고 다녔다. 그는 긴 소매나 혹은 반소매에 가슴이 트였거나 막힌 점퍼를 입고 회담에 나오곤 했다.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김정일 한 명뿐이었다.
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나는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자리에 재킷을 벗고 반팔 셔츠만 입어도 되는지에 대해서 우리측 의전부장과 논의해 봤다. 하지만 국제 외교 관례에 따르면 고위급 인사를 대할 때는 오직 정장 차림만이 가능했다. 마침 정장이 2벌 준비된 덕분에 김정일을 만날 때마다 갈아입었다.
<사진 6> 상트 페테르부르그역에서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왼쪽 끝)의 영접을 받고 있는 김정일
나와 김정일이 회동하는 객차에는 에어컨이 있었지만 그리 시원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나는 내심 긴장이 끊이지 않았다. 통역사들만 배석한 상태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외국 원수와 단 둘이 마주앉아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행여 김정일에게 부정확한 답을 하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그와 대화를 마치고 내 침실 칸으로 돌아올 때는 매우 피곤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김정일이 내뿜는 강한 에너지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항상 그의 강한 기운을 느꼈다.
처음에는 우리측 경호원들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7월 26일 북한에서 온 열차가 하산 역에 도착했을 때 양측 경호원들은 권총과 기타 총기의 번호가 적힌 서류를 서로 건네며 소지한 무기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전문가의 눈에는 누가 어디에 총을 차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북측 경호원들은 권총을 2자루씩―겨드랑이 밑과 혁대―차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칼라슈니코프' 기관총도 있었다. 그들은 김정일이 자동차를 타고 모스크바나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때는 기관총으로 무장했지만 한번도 가방에서 꺼내 들지는 않았다. 나는 북한 경호원들의 실제 경호 현장을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김정일의 전용칸에서 그와 회담을 하고 있는데 나의 공보관이 장군에게 너무 빨리 다가갔다. 북측 경호원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두 팔을 비틀어 올렸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서둘지 않고 상황이 허락할 때만 우리들의 사진을 촬영했다.
한번은 북한 경호원들과 우리측 경호원들 중 누가 더 힘이 센지 가리기 위해 팔씨름 시합을 벌인 적이 있다. 객차 승강구에 의자 2개와 책상을 가져다 놓고 팔씨름을 했다. 우리 팀을 대표해서 키가 1백83센티미터인 하바로프스크 출신 경호원이 나섰다. 북한측에서도 1백79센티미터의 키에 만만치 않은 사람이 나왔다. 승강구가 꽉 들어찰 정도로 응원단이 모여들었다. 첫 판은 러시아측 대표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이겼다. 알고 보니 그는 육상, 복싱, 킥복싱을 했고 20세 때는 1백 미터를 10.7초에 주파했다고 했다. 북한 대표는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다.
그 후 그들은 또 한 차례 겨뤘는데 이번에는 북한측 대표가 이겼다. 결국 시합은 무승부로 끝난 셈이다. 북측 보좌관들은 팔씨름에 응했던 러시아 경호원의 계급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는 농담으로 장군이라고 답했다. 아마도 북측 경호원들은 그 농담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가 김정일을 만나러 가는 나를 수행할 때면 존경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진 7> 김정일 전용칸에서 김정일과 마주 앉아 담소하고 있는 풀리코프스키. 벽에 붙어 있는 전광판에 열차 속도가 시속 49km로 적혀 있다.
북한측 경호원들의 나이는 모두 35세 이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헐거운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아마도 옷 속에 숨긴 무기가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측 경호원들은 치수에 꼭 맞는 옷을 입었지만 재킷 속 어디에 총을 숨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 경호원들은 자주 우리측 경호원들을 껴안고 어깨나 등을 가볍게 치거나 손가락으로 배를 찔러 보는 등 장난을 치면서 총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려 했다. 북한측 경호원들은 나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한 경호원이 우연인 것처럼 내 몸에 손을 스치더니 또 다른 경호원이 번갈아 가며 손을 스치곤 했다.
한번은 열차 복도에서 김정일의 밀착 경호원 중 한 사람과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그의 단단한 근육을 느낄 수 있었다. 장군의 경호원들은 매우 출중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담 무쌍한 용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초청자측인 우리가 경호를 맡아 그들의 도움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측 경호원들은 북측 동료들이 '지나치게 의욕적'이라고 푸념하면서 김정일 경호는 우리측이 주도한다는 점을 그들에게 정중하게 일러 주곤 했다. 열차 내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지내다 보니 우리들 대부분은 몸무게가 늘었다. 북측 경호원과 팔씨름을 한 우리측 경호원은 체중이 8킬로그램이나 늘어 '전투용' 체중으로 복귀하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두 대의 김정일 전용 방탄 '메르세데스'도 잘 보관되었다. 열차 한 량이 오직 이 자동차 두 대를 위해 배정되었다. 하지만 방러 기간 내내 단 하루 운행되었을 뿐이다. 우리 일행이 모스크바 시내를 이동할 때에도 승객은 타지 않고 운전기사만 탔을 뿐이다. 북한 지도자에게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차 한 대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열차를 이끄는 기관차 전담 경호원은 2명이었다. 한 명은 모스크바에서 저격병들과 함께 왔고, 또 다른 한 명은 우리 열차의 통과 지역을 담당하는 연방보안위원회 전문가였다. 예를 들면 '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구간에서는 기관실에 기관사들과 함께 연해주 담당 연방보안위원회 전문가가 탑승했다. 철저한 안전대책에도 불구하고 차창이 깨지는 사고가 두 차례나 일어났다. 다행히 북한측 차량이 아니라 러시아측 차량의 창문이었다. 아마 지나가는 열차에 돌팔매질을 하는 시골애들이 한 짓인 것 같았다. 우수리스크 근교와 모스크바 근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한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던 중 선로 위에서 작은 시멘트 덩어리가 발견되어 열차가 급정차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열차에 앞서 달리던 선도 기관차가 통과할 때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결국 선도 기관차가 통과한 직후 누군가 '공작'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마주 오던 열차의 기관사들이 시멘트 덩어리를 발견하고 가까운 역에 연락을 해준 덕분에 우리도 신속하게 이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제때 열차를 정차하여 장애물을 치운 뒤 다시 출발했다. 더 이상 선로 위에 장애물을 던져 넣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앞서 진행하는 선도 기관차 외에 또 한 대의 기관차가 줄곧 우리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기관차의 임무는 행여 다른 열차가 우리를 따라잡을 경우에 대비하여 김정일의 전용열차를 뒤에서 경호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칸의 일반 차량에 나뉘어 탄 우리측 연방 경호원들은 무더위 때문에 무척 고생이 많았다. 에어컨이 설치된 김정일의 전용칸에 있던 나도 흠뻑 젖을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나는 비록 여차장들이 와이셔츠라도 세탁해 줬지만 경호원들은 옷마저도 세탁할 곳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에서 전용열차에 특수 차량이 부착되어 거기서 경호원들은 몸을 씻고 세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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