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악(evil)’이란 말을 입에 많이 올린다. 9.11 테러가 터진 날 그는 “오늘 우리는 악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고 연설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는 이것을 “선과 악의 역사적 투쟁”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문제의 “악의 축” 발언이 있었다.
이 말은 부시의 연설문 작성자들이 제공한 것이 아니다. 부시의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 자신도 이것을 의식해서 자기보다 앞서 이 말을 쓴 대통령이 레이건뿐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 말을 쓴 미국 대통령은 레이건만이 아니었다. 클린턴만 해도 수없이 쓴 말이다. 그런데 부시의 의식 속에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른 레이건의 말만이 남아 있다. 같은 말이라도 거기 담긴 뜻이 레이건과 부시 사이에만 유독 통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클라호마 폭탄사건 때도, 르완다 사태 때도, 코소보 사태 때도, 그리고 엽기적 범죄가 일어났을 때도 클린턴은 ‘evil’이란 말을 썼다. 그럴 때 이 말은 ‘나쁜 행위’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쓰이거나 ‘나쁜 짓’이란 뜻의 보통명사였다. 그런데 레이건의 ‘악의 제국’과 부시의 ‘악의 축’이 가리키는 ‘악’은 대문자로 시작하는 ‘Evil’, 하나의 고유명사다.
고유명사 ‘악’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물과 행위의 본질을 규정하는 말이다. 보통명사나 형용사가 현상을 묘사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인식이다. 세르비아인의 코소보인 박해를 ‘나쁜 짓’이라 손가락질할 때는 왜 그들이 그런 나쁜 짓을 하는지 따질 여지가 있다. 뉴욕테러를 고유명사 ‘악’으로 규정할 때는 이유고 나발이고 없다.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가 필요충분한 설명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에 무슨 불만을 가졌는지는 살필 필요가 없다.
<선과 악을 넘어서(Beyond Good and Evil, 원제 Jenseits von Gut und Bose, 1886)>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주된 저서의 하나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선언에서 가리킨 신은 선과 악을 절대적으로 규정하는 신을 말한 것이다. 당시 인간의 본성 탐구가 인종과 계급의 차별을 뒷받침하는 본질 규정의 사이비 과학으로 흐르는 풍조에 대한 준열한 경종이었으며, 선악의 상대성에 대한 그의 관점은 20세기 정치-사회-교육 사상의 뼈대가 되었다.
교양있는 현대인은 이 선악의 상대성 개념에 익숙하다. 니체가 지목하여 이야기하기 전부터 근대적 합리주의가 이 개념을 지향해 왔기 때문에 근대적 교육과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 일체의 정치사상이 모두 이 개념을 원리로 삼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가 이 개념을 완전히 등진 ‘절대악’을 외치고 나서니 모두 충격을 느끼는 것이다. 식자들이 부시의 시대착오에 어처구니없어 하는 한편에서 부시의 무식과 무교양에 친근감을 느끼는 대중은 이것을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주지사 시절부터 부시가 사형집행에 열심인 것도 이 ‘절대악’ 개념 때문이다.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바로 선악의 상대성 개념에 큰 근거를 둔 것인데, 부시는 ‘죽일 놈들’ 죽이는 데 아무런 회의도 느끼지 않는다. 3년 전 공화당 후보지명전 초기 아이오와 주의 토론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정치사상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예수님”이라고 태연하게 대답해서 청중을 아연하게 했던 것이 바로 부시다. 니체의 책을 그가 읽어보았을 리는 만무하거니와, 그 이름이라도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미국 대통령이 기독교를 신봉한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카터 대통령은 전도사급의 열성신자였고, 클린턴은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현란한 수사를 자유자재로 펼쳤다. 유독 부시를 놓고 미국 지식층이 걱정하는 것은 그의 원리주의 성향, 그리고 신앙과 현실을 연결시켜 줄 교양이 극히 천박해 보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유럽인과 미국인의 지지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도 이 ‘절대악’ 개념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미국의 지식층은 거의 비슷한 교양내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태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결정적 차이는 대중의 태도에 있다. ‘절대악’ 규정의 주체가 되는(된다고 믿는) 미국인과 국외자로 밀려나는 유럽인이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부시의 ‘절대악’ 개념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몇 가지 성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성보다 감정이 대외정책에 지배적 역할을 할 것이다. 적의 입장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 악한 존재니까 박멸하기만 하면 된다. 악의 박멸은 선한 행위니까 수단과 방법도 가릴 필요가 없다.
둘째, 호전적 정책으로 일관할 것이다. 악을 박멸하는 행동에는 망설일 필요 없이 적극적으로 나가면 된다. ‘절대악’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이를 박멸할 사명에 대한 믿음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셋째, 미국의 국론은 극단적으로 분열될 것이고, 부시의 호전적 정책은 결정적 파탄에 이를 때까지 반대파를 철저히 묵살하고 추진될 것이다. 부시의 유엔 연설을 보자. “역사에는 주재자가 있어서 시간과 영원을 그의 목적으로 채운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악이 실재한다는 것, 그러나 결국 선이 이를 극복할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은 여러 종교의 가르침이며, 이 믿음으로부터 우리는 긴 여행을 위한 힘을 얻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가지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토론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부시의 소박한 믿음이 현실정책에 아무 여과 없이 반영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대중에게 일으킨 반향은 적지 않으며, 그 참모들은 이 반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을 정책의 기본노선으로 삼을 것이니, 충분히 감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절대악에 믿음을 가진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이 ‘악의 축’으로 각인된 것은 한반도에 6.25 이후 최대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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