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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들의 현명한 판단을...

<데스크 칼럼>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표결에 부쳐

‘법과 질서(law and order)'라는 말을 미국인들처럼 즐겨 쓰는 민족은 없다. 걸핏하면 ’법과 질서‘를 들먹이는 게 그들이다. 인구당 변호사 숫자가 세계 최고일 정도로 미국이 변호사의 천국인 것은 이런저런 다툼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그들의 생활습관 탓일 게다. 인구당 (감옥에 갇혀 있는) 재소자 숫자가 세계 최고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법을 어긴 시위자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미국 경찰들을 보면(70년대 베트남전 반전 시위 중에는 경찰의 발포로 사망한 대학생도 있었다) 과연 미국은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런데, 그 미국이 지금 ‘법과 질서’를 심각하게 어기고 있다. 그것도 자신들의 주도로 만든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말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어째서 국제법 위반이며 국제질서 혼란인가는 더 이상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반전시위와 반전집회가 이번 침략의 부당성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경찰이라고 자임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경찰이 지금 깡패처럼 굴고 있다. 지구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단속은커녕 스스로 말썽을 부리고 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은 그 친구(이라크) 문제가 있다고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데 유독 혼자서만 ‘이 놈은 문제가 많은 놈이야’라며 막무가내로 두들겨 패고 있다.

경찰이 깡패로 둔갑한 자체가 우선 큰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깡패가 동네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할 정도로 싸움을 잘한다는 데 있다.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데다 다른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은 온갖 첨단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비만 보더라도 2등에서 10등까지를 합친 액수보다도 더 많이 쓰고 있다. 깡패로 둔갑한 경찰, 게다가 동네 최고의 싸움대장인 이 깡패를 가만 놔뒀다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이든, 이란이든 마구 두들겨 팰 게 분명하다.

이번 전쟁을 그저 바라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극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깡패’가 제멋대로 굴도록 방치한다면 다음에는 더 큰 사고를 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이 깡패를 돕겠단다. 북한 핵문제 등에서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이번에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국익’과 ‘실리’를 위해서란다. 공병, 의무병 외에 전투병까지 보낸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노무현 정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 전쟁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벌여온 전쟁들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쟁, 그리고 걸프전쟁 등 이전까지 미국이 주도한 전쟁은 최소한의 명분과 국제적 지지가 있었다. 공산세력의 침략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킨다든가 지역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는 등의 명분이 있었고, 그때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미국의 주도를 인정하고 이에 협조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르다. 영국을 비롯한 극소수 국가들 외에는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이번 침략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명분 없는 전쟁이요, 약육강식의 강도 행위인 것이다. 이번 침략전쟁을 한국이 돕는다면 한국은 미국과 함께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세계의 지도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군사적 패자(覇者)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경제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가 될 자격을 상실했다. 이번 전쟁이 그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마디로 미국은 변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예전처럼 무작정 미국을 추종하기만 하면 우리의 안보와 평화와 번영이 보장되던 시기도 이젠 지났다. 지금부터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했다. 하지만 정부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동의 절차가 남아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가 그것이다. 오늘(28일) 그 표결이 이루어진다.

국회의 ‘파병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한 가지 상기시키고 싶은 사례가 있다. 바로 터키다. 터키 정부는 이번 전쟁을 앞두고 미국측의 회유와 압력에 의해 자국 영토와 영공 사용권을 미국측에 허용했다. 그러나 이달 초 터키 의회는 표결을 통해 단 4표 차이로 이같은 터키 정부의 결정을 뒤집어 버렸다. 당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터키 사람들은 ‘미국은 이번 전쟁의 목적으로 중동지역의 민주화를 꼽았다. 우리의 표결이야말로 민주화의 산 증거가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또다른 터키인은 ‘미국인들은 언제나 터키가 민주화 후진국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번 표결로 우리는 민주화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수준이 터키보다도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가지 더. 지금은 혼돈(chaos)의 시대다. 자연계나 인간사회를 대상으로 한 카오스 이론의 핵심은 아주 조그마한 차이가 매우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경에 있는 나비의 팔락거림이 뉴욕에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파병 여부가 이번 전쟁의 결과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물론 세계사 진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자신의 한 표가 이라크전 파병이라는 대세에 별 영향을 미치겠느냐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의원들의 한 표, 한 표는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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