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이 터진 이틀 뒤(3월 22일) 지구촌 곳곳에서는 다시금 "No War!"를 외치는 큰 물결이 출렁거렸다.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낮 12시쯤 타임 스퀘어에 가까운 맨해튼 중심가를 꽉 메운 반전 데모대들은 브로드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행진을 벌였고, 뉴욕대학이 자리한 워싱턴 광장에서 오후 늦게까지 "부시는 이라크 학살을 중지하라"며 목청을 높였다(경찰 추산은 10만, 주최 쪽 주장은 25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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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점은 이들 참가자들은 반전 데모를 하나의 '민주주의의 건강한 놀이'로 여기는 모습이었다. 일부 직업적인 운동가들을 빼고는 심각한 얼굴들이 아니다. 반전데모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들이다. 그들이 지닌 건강한 시민의식에 비추어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못마땅하다고 여기니까 비판의 목청을 돋우지만, 돌맹이를 던질 생각을 품지는 않는다.
많은 참석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담은 플래카드를 정성 들여 만들어 들고 나온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본 딴 대작들도 선보인다.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법한 플래카드들이다. 이런 것들을 정리해보면, 21세기 미국 뉴욕시민들의 현실인식이 어디쯤 와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메시지들을 주제에 따라 나눈다면, 크게 아홉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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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알 카에다 모집책?"**
첫째, 전쟁/평화와 테러리즘에 관한 플래카드다. "War is terrorism" "Peace Now" "Not in our name(전쟁에 우리 이름을 팔지 말라)"라 쓰여진 플래카드들이 많이 보였다. "Your hate will not save you safe"는 이라크전쟁이 9.11사건의 보복임을 상기시킨다. 젊은이들은 사랑을 전쟁에 대비시키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Make her sweet love, not war", "Make love, not war", "Make dance, not war" 등이다.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플래카드들은 다음과 같다.
"War orphans make great terrorists"
"George W. Bush - al Qaeda recruiter of The Year"
"War is not the answer"
"War, what is it good for?"
"Might ‡ Right"
"God will not bless war"
"What kind of victory is it?"
"Liberty, justice for all!"
"Freezinf my ass off for peace!"
"Drums not guns" "No! Not war drums, peace drums"
"There must be a better way"(전쟁말고 다른 나은 길이 있다)
"Lay down your swords"
"Swords into plowshares"(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라)
"Ban all nuclear wea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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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라크에 대한 공습과 경제제재를 중단하라는 구호들이 적힌 플래카드다. 이라크 침공에 참여한 미군을 송환하자는 "Support our troops bring them home", 후세인 체제 전복 뒤 이라크 신식민지화 계획을 비판하는 "Colonization overthrows us all", 9.11 테러에 이라크가 관련 없다는 "9.11 terrorists: Saudis 15, Iraqi 0"이 눈길을 끌었다. "Shock and awe, the Bush gangs, not civilians"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군사전략이 '충격과 두려움'이란 점에 착안한 플래카드다. "See you in the Hague, Mr.Bush"는 이라크침공이 전쟁범죄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Stop human genocide" "No war on Iraq! End the sanctions!"
"Drop Bush, not bombs"
"Fire Bush, nor missiles"
"Duct tape your bombs, not our windows"
"Bombs kill too many children and too few dictators"
"Almost 50% of Iraq's population is 15 years old"
"Preemptive = unilateral, uncivilized"
"Bush/ Blair: Axis of arrogance"
"Yee-ha is not a foreign policy"(yee-ha는 우리말로 '와!'란 의성어로, 적진을 향해 돌격할 때 내지르는 함성)
***"범죄의 축-부시, 럼스펠드, 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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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부시 미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는 플래카드들이다. 먼저, 이라크에서 대량파괴무기가 발견되질 않았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은 "Empty warhead found in the White House", 부시의 얼굴 위에 "이 테러리스트를 탄핵하라(Impeach this terrorist)", 플래카드 한면에는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뒷면에는 부시의 얼굴과 함께 "I have a nightmare"이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많았다. 부시가 자주 말하는 "God bless America"에 빗대어 "God bless hysteria" "God blesses other nations too"도 흥미로운 표현이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당선됐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고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의미를 담은 "George conned his way into office, conned his way into war", 2004년 대선에서 부시를 뽑지 않겠다는 "If we wanted war, we would elect Bush"도 눈길을 끌었다.
부시에 대한 노골적인 욕설도 많다. "Son of a Bush" "Fuck Bush" 등이다. "Bush is a moron, liar, hypocrite"(부시는 저능아, 거짓말쟁이, 위선자) "Stop mad cowboy disease!" "No blood for morons", "Somewhere in Texas a village is missing its idiot", "Even my cat hates Bush"도 같은 맥락이다.
"Bush is a disgrace to what America stand for"
"Bush, No.1 criminal" "Bush is a war criminal"
"Sadam: dictator of Iraq. Bush: dictator of world"
"Regime change in Washington"
"Regime change begins at home"
"The Bush regime is the evil we deplore"
"Bush is a weapon of mass destruction"
"Bush, most dangerous man on earth"
"Start regime change in White House"
"Exile gang, W.Bush"
"Brave new Bush"
"Block Bush" (미식축구 헬밋을 쓴 부시 얼굴 위에 적힌 구호)
"War starts with Dubya" (Dubya는 George W. Bush의 가운데 글자 W.의 텍사스식 발음)
"Will trade Bush for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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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그의 측근들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도 눈길을 끌었다. "Impeach George, Dick, Rummy(럼스펠드)", 부시, 딕 체니, 칼 로브(텍사스 출신 백악관 고위보좌관) 얼굴 위에 "Texas of Evil"라 적은 플래카드가 인상적이었다. 럼스펠드가 후세인에게 "When we sold you the Anthrax we never said you could use it"라고 말하는 플래카드도 보인다. 1983년 럼스펠드가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로 이라크를 방문한 뒤, 이란-이라크전쟁으로 고전하던 후세인을 지원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온건파로 분류돼온 콜린 파월 국무도 이라크침공 유엔결의안 추진과 관련해 도마에 올랐다. "Don't follow, Bush, Dick, Colon(콜린 파월)". 이스라엘의 '태생적 강경파' 총리 아리엘 샤론도 한패로 다뤄진다. "Axis of criminals: Bush, Rumsfeld, Powell, Rice, Sharon" 등이다.
***"나를 프랑스로 추방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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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이라크와 북한이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이 불량국가라는 "Axis of evil = USA, UK, Israel", "USA is a rogue Nation",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펴는 강압책을 지적한 "End Israeli occupation" 등이다. "Better old-fashioned Europe than new-fashioned fascism"은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프랑스와 독일을 부시 족에서 'old Europe'이라 비판했던 점을 떠올린다. "Deport me to France"도 같은 맥락이다.
"New World Disorder"란 플래카드도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독자 여러분도 짐작하시듯, 91년 걸프전 승리 뒤 (그리고 옛소련과 공산권이 무너진 뒤 유일 초강대국 지도자로 떠오른)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선언했고 아들 부시가 이어받은 이른바 '신질서'가 실상은 '미국의 평화와 질서'일 뿐이란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Like Father, Like Son"은 부시 부자를 비판한 것이다. "Hey Bush, I know you and your father"는 부시 부자 2대에 걸쳐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점을 일깨우는 플래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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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부시 행정부의 석유 야망으로 이라크전쟁이 일어났음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도 많다. "How many lives per gallon?"과 부시행정부에서 에너지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딕 체니의 대머리에다 쓴 "Got oil?"이 인상적인 플래카드다.
"Stop American imperialism"
"No war for empire"
"Peace before profit"
"Evil, killing field for oil"
"Bomb Texas. They have oil, too"
"Read between the pipelines"
"George W. is a Petroleum Byproduct"
"Oil baron, imperialist"(부시의 얼굴 위에 적힌 구호).
***"미국 언론은 매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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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미 주류언론에 대한 비판적 플래카드도 여러개 눈길을 끌었다.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북소리를 미 신문방송들이 앞다퉈 울려댄 데 대한 비판이다.
"US media = Pentagon"
"American news media = whore" (미 언론은 매춘부다)
"Corporate media, bloody hands"
"Don't trust corporate media"
여덟째, 전쟁에 귀한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고용, 교육, 건강복지, 빈민층을 위해 예산을 써야 한다는 비판이다. 이날 뉴욕 반전데모에는 관련 시민단체들이 저마다 아래와 같은 문구를 대형 플래카드에 써들고 구호를 외쳐댔다.
"For the poor, not for the war!"
"Money for the jobs! not war!"
"Fight AIDS, not wars!"
"Health care, not warfare!"
"Money for schools, not for war!"
"Saddam didn't raise my tuition"
"Bush helps the rich, and abandon the poor"
"Labor's enemy is Whit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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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9.11 뒤 불어닥친 미국의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이다. "John Ashcroft hates freedom"은 9.11 뒤 애쉬크로프트 미 법무가 인권침해 법안들을 밀어붙인 데 대한 비판이다. "Where is Hillary and Chuk?" 는 뉴욕주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인 힐러리 클린턴과 척 슈머가 이라크전쟁에 대해 침묵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관련 구호들은 다음과 같다.
"No police state"
"Dissent is patriotic"
"Peace is patriotic"
"Patriots vote to impeach"
"Resistance is fertile"
"Acitvists make better lovers"
위에 적은 주장과 구호들은 올들어 뉴욕에서 열린 몇몇 반전평화집회에 참석했을 때 본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놓친, 시사성이 강하면서도 재치가 번득이는 메시지들이 많을 듯하다. 문제는 이런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들(부시 미 대통령과 그의 강경파 참모들)이 고개를 돌리고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등장한 플래카드가 "The Bush regime is the evil we deplore"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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