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법은 흔히 기존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적용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법은 또 그 보호 또는 적용의 대상이 기존의 사회 현상이나 존재라는 점에서도 보수적이다. 그래서 법은 새로 출현한 사회 현상이나 존재를 그 보호 또는 적용의 대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이 새로운 현상이나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의 이런 보수성은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수가 많다. 법의 이런 보수성은 오늘날 우리 실정법들이 인터넷 매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데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언론으로서 인터넷 매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온라인 신문, 웹진, 넷캐스팅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인터넷 신문, 인터넷 잡지, 인터넷 방송 등 인터넷 매체가 버젓한 언론기관 또는 언론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기존의 신문, 잡지, 방송과 같은 주요 언론들도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버전을 서비스하고 있다. 앞으로 언젠가는 모든 매체들이 인터넷 매체로 전환할지도 모른다. 쌍방향성, 하이퍼링크, 검색기능, 멀티미디어 기능, 맞춤 뉴스 기능 등 인터넷매체는 기존의 오프라인 언론들이 갖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으로 인해 인터넷 매체는 가장 민주적이고 다기능적인 언론이 될 잠재성이 크다. 이런 장점에 힘입어 인터넷 언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발전된 통신 인프라, 값싼 인터넷 이용료, 그리고 인터넷 이용자의 폭발적인 증가에 힘임어 인터넷 신문, 잡지, 방송 등이 최근 많이 생겨났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대자보>, <이데일리>, <아이뉴스24>, <이비뉴스>, <민중의 소리>, <라디오21> 등과 같은 인터넷 매체들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인터넷 매체의 일부는 기존의 신문과 방송에 맞먹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 매체들은 이미 어엿한 언론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엄연히 현실적인 언론으로 실재하고 있음에도, 인터넷 매체는 정간법, 방송법, 선거법 등에 의하여 언론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 때문에 오프라인 언론(즉, 법적인 언론기관)에 허용되는 언론자유와 중재제도의 혜택을 온라인 매체에는 누리지 못한다.
말할 것도 없이, 엄연한 인터넷 매체를 언론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선거법이나 언론 관계법은 시대착오적인 실정법이다. 이런 실정법에도 불구하고, 그 실제적 활동에 의해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에 의한 그 활동의 수용에 의해서, 인터넷 매체는 하나의 훌륭한 언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사실은 언론의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도 인정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가 2002년 2월에 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문광부는 <오마이뉴스>가 정간법상의 정기간행물은 아니지만, "그간의 보도내용과 사회적 역할 등을 감안해 볼 때, 오늘날 급속한 정보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라 정보통신을 이용하여 사실상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인터넷 매체는 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이미 기존의 언론 못지 않은 영향력까지 발휘하고 앞으로서 더욱더 그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언론으로서 사회적으로 실재하고 잠재성이 큰 인터넷 매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터넷 매체의 언론활동은 헌법 21조 언론자유 조항에 의해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선거보도와 같이 민주정치의 구현에 필수적인 정치적 언론활동은 더 보호되어야 한다. 정치적 언론활동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우리 헌법의 언론자유 조항이 보장해야 할 가장 중요한 언론활동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인터넷에서의 언론활동은 헌법의 언론자유 조항에 의해 그 자유가 보호되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 전문 법률가인 랜스 로우즈는 온라인 시스템은 개인의 언론활동(speech), 언론기관(press), 평화적 집회, 정부 청원의 보호를 밝힌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법적 간섭으로부터 완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그 이유로 적어도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두 가지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온라인 시스템의 모든 업무는 단순히 그 이용자들의 전자적 언론(electronic speech)을 수집하고, 조직하고, 재분배하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전자적 활동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구어(the spoken word)나 인쇄된 자료(printed materials) 만큼이나 언론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것들이 국가의 법으로 동등하게 보호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온라인 시스템도 전자적 언론의 통로로서 보호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나르는 전자적 언론이 부당하게 제한된다.
둘째, 온라인 시스템과 그 이용자의 많은 활동이 전통적인 출판물 발행자와 유사하다. 수정헌법 1조는 일차적으로 정부 통제로부터 출판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다. 수정헌법 제정 이후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전하여 이제 "언론기관"(the press)은 서적, 통신 서비스,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 케이블 텔레비전, 그리고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 포함한다. 출판업자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온라인 시스템과 그 사용자는 최신의 "언론기관"으로서 적어도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수준의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인테넷 매체와 기존 언론기관 사이에 아무런 법적 차별이 없다.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의 언론활동에 대하여 기존 매체보다 더 큰 자유가 주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언론행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비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도 기존 매체보다 더 허용적이다. 예컨데, 1996년의 새로운 통신법(the Telecommunications Act)의 커뮤니케이션 품위 조항(the Communications Decency Act)은 인터넷 상의 음란물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나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실정법은 아직도 인터넷 매체를 언론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매체는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하다. 언론중재 제도의 대상도 되지 못하여 기사로 인한 불만을 중재에 의하지 못하고 곧바로 재판으로 해결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오프라인 언론에는 허용된 후보자 대담이나 토론도 할 수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오마이뉴스>는 2002년 2월 민주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을 상대로 '열린 인터뷰'를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마이뉴스>가 정간법과 방송법상 등록된 언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저지했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1년이 지난 최근(2003. 2. 28)에야 이 건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헌법재판소는 온라인 언론이 오프라인 언론과 같이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피해갔다. 대신 법의 보수성을 택한 셈이다. 아쉬운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실정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인터넷 매체를 언론으로서 그 실체를 인정하는 판결로 헌법과 실정법이 규정한 언론으로서 자유와 지위를 향유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정보사회의 총아인 인터넷 매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따라서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우리 실정법과 사법당국의 보수성이 하루빨리 고쳐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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