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민 뜻 따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민 뜻 따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촘스키 강연> '제국과의 대결' <2>

***‘새 유럽’은 누구인가?**

이라크전쟁이 이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사태진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합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유럽의 반전운동이 어찌나 거셌던지 미국을 “방위”한다는 도날드 럼즈펠드 장관은, (지도자들마저 반전에 가세한) 독일과 프랑스를 “낡은 유럽(old Europe)”이라고 몰아쳤습니다. 미국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데 대한 분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편에 서 있다”고 호언했습니다. 미국의 편에 있다는 이들 수많은 유럽 국가들을 럼즈펠드는 “새 유럽(new Europe)”이라고 불렀습니다. “새 유럽”의 대표주자는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입니다. 만일 그가 (수뢰혐의로) 감옥에 갇히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면 그는 곧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자신을 포함해 ‘3B’(부시-블레어-베를루스코니) 라인을 만들자고 간청할 것입니다. ‘자 이탈리아도 우리 편이다’ 백악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인의 80%가 넘는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국민들도 “낡은 유럽" 사람들이며 그들 역시 프랑스나 독일과 함께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쳐박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자들은 모조리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게 미국 지도자들의 메시지입니다.

<사진: 블레어와 베를루스코니>

스페인도 '새 유럽'의 위대한 회원으로 찬양받고 있습니다. 갤럽 국제여론조사에서 스페인 사람의 75%가 전적으로 전쟁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는데도 말입니다. 뉴스위크의 저명한 외교정책 분석가에 따르면 새 유럽의 희망적인 국가들에서도 이같은 상황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던 (동구의) ‘새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반면 유럽의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과 복지국가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의 여론은 ‘낡은 유럽’과 거의 같습니다. 이 분석가는 체코슬로바키아인 3분의 2가 전쟁에 반대하고 있으며, 폴란드에서는 유엔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입증하더라도 전쟁을 지지하는 국민이 4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폴란드 언론들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가 입증되더라도 37%만이 전쟁에 찬성한다는 것은 ‘새 유럽' 심장부의 지지율로는 지극히 낮은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공개서한을 통해 새 유럽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그런 나라들입니다. 물론 국민 전체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입장을 밝힌 것뿐입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덴마크를 봅시다. 전쟁반대 여론이 독일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덴마크 지도자는 ‘새 유럽’일지 몰라도 덴마크 국민들은 ‘낡은 유럽’인 셈입니다. 포르투갈, 53%가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도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며 96%는 미국과 동맹국만의 일방적 공격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영국, 40%가 무조건 반대, 90%가 미국의 일방적 공격에 반대입니다.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헝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새 유럽’이라는 이 근사한 말은 감히 국민의 뜻을 거스르려는 몇몇 정치지도자들만을 지칭하는 말인 것입니다.

낡은 유럽은 럼즈펠드가 자신들을 “문제 국가”라고 선언한 데 대해 요란스럽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쾌감은 미국의 사려 깊은 평론가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죠. 주로 미국 언론만 보고 있는 미국인들은 “염세적인 유럽 동맹국들”이 부시 대통령의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부시의 “도덕적 정당성”의 증거로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말하는 ‘복음주의적 열망’을 제시합니다. 부시는 지구상에서 악을 몰아내는 데 헌신하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증거 중에 가장 믿을 만하고 객관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유럽인들처럼 반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국인들은 냉소적인 유럽인들이 부시의 순결한 영혼을 “(대책없는) 도덕적 순진함”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정치선전 전문가들이 대중들에게 먹힐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염세적인 (낡은) 유럽과 “인간성의 타락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상주의적인 신세계(미국과 새 유럽)”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들어왔습니다. 인간성의 타락을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이상주의적인 신세계의 커다란 목표라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그렇게 외쳐 왔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새 유럽’의 여론에서는 이를 마케팅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거의 없습니다. 팔리는 물건은 필연적으로 정당하고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려 깊은 평론가들에 따르면) 새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이 자국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편을 들려 하는 것은 “퇴행적 민주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 독일인들과 프랑스인들을 고립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며 독일과 프랑스는 (더 이상) “유럽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겨우 낡은 유럽 및 새 유럽의 민중들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들은 새 유럽의 정책들에(이라크전쟁 등)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이는 사려 깊은 평론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죠, 있습니다.

***미 지배엘리트에 따르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을 묵살하는 것'**

공식 성명과 이에 대한 반응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는 자신은 세계를 지배할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나타납니다.

또 다른 예는 많습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들 편에 섰을 때, 이는 정치적 리더십의 충격적 패배이며, 독일이 문명 세계에 편입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심각한 문제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영미 민주국가의 엘리트들이 문제가 아니라, 독일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우파정당 기사련(CSU)의 대변인은 독일의 문제는 “정부가 유권자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미 엘리트의 해석을 따른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 터키>

터키의 경우는 더욱더 시사하는 바가 뚜렷합니다. 터키 국민들은 전쟁에 매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의 90%가 전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터키 정부는 ‘무책임하게도’ 자신들을 당선시킨 국민들의 목소리를 수용해 왔습니다. 터키 정부는 주인(미국)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명령하기 위해 미국이 발휘하는 강한 압력과 위협에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선거에 의해 세워진 정부가 상부(미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그 정치지도자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 터키 주재 미국 대사였고 현재는 훌륭한 원로 정치가이자 평론가인 모턴 아브라모비츠의 설명을 소개하겠습니다. 10년 전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터키는 투르구트 오잘이라는 진짜 민주주의자에 의해 통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걸프전에 개입하지 말라는 국민들의 말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후 터키의 민주주의는 뒷걸음질쳐 왔다는 것이 아브라모비츠의 진단입니다. 지금의 터키 정부는 “민중들의 여론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적 성취”의 측면에서 형편없이 퇴보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터키에는 이제 (미국을 위한) 오잘이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터키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경제적 압박이나 기타 억압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엘리트 언론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내세우며 이같은 조치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지배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실제로 어떠한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브라질입니다. 서반구 지역에서 자유선거가 가장 잘 정착된 브라질 국민들은 대다수가 국제 금융계와 투자자들, IMF와 미국 재무부가 강하게 반대하는 정책에 오히려 찬성표를 던집니다. 40년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군부 쿠데타를 촉발시켜 경찰국가로 이어지게 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남부 및 북부의 주민들이 바뀌었고, 더 이상 쿠데타를 쉽사리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 덕택에 쿠데타가 아니고서도 민중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더 간단한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제 통제, 자본 유출, 통화 공격, 사유화 그리고 대중들에 의한 의사결정의 기회를 제한하는 수많은 장치들이 개발돼 있습니다. 이것들을 통해 지배계층은 각국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국제 투자자 및 대부자들의 결정에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국제경제학자들은 투자자와 대부자들의 모임을 ‘실질적 의회(virtual parliament)'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해당 국가의 국민이 아닌) 이들이 실질적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하면 대중들의 불만이란 아무 의미 없는 소음일 뿐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