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정통부 장관 아들과 가족들의 이중국적 및 병역 면제 논란이 뜨겁다.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로서 진대제 장관과 그 가족의 도덕성이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다.
논란의 핵심은 자신과 그 가족이 미국의 영주권 혹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장관이라는 직책을 맡아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가족 모두가 미국 영주권자인 점을 활용해 아들이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진 장관 본인은 미국 영주권을 뒤늦게 포기했다고 하지만, 아이들 모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시민으로 키우려 한 진 장관과 진 장관 가족 모두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나 진 장관의 입장과 처지를 적극 두둔했다. 진 장관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제기되자 노대통령은 "살아온 과정에서 볼 때 자연스럽고 특별한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 시절 미주 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계화 시대에 이중국적을 광범위하게 허용하지 않으면 고립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무차별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안 되겠지만 악의 없는 것은 폭넓게 허용해 한국민이 활동무대를 세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세계화 시대에 외국인 장관의 기용까지 고려한 마당에 '자연스럽고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 진 장관과 그 아들, 그리고 가족들의 미국 영주권이나 이중국적, 그리고 '합법적인 병역면제'를 문제삼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인 셈이다.
일부 언론들도 이 문제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와 전향적인 대처를 주문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대립의 각을 세워왔던 조선일보조차 5일자 사설(공직자 국적ㆍ병역에 공적 기준 마련을)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를 제안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 '검증 기준이 부처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청와대 해명과 '(면제과정에) 악의가 없어서"라는 대통령의 언급은 이 문제의 복잡 미묘한 성격에 비춰 볼 때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 때 그 때 사안별로 각기 다른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뜻이어서 공평하지 않거니와 국민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고 노대통령과 청와대의 시각과 해명의 문제점을 짚기는 했다.
그러나 곧 이어 "지금은 국적을 초월해 인재를 데려다 쓰는 세상"이라며 "이 정권이 외국인 각료 기용도 고려하겠다는 개방성을 과시했으면, 이 문제를 개별 조건과 사정으로 설명할 게 아니라 공론화해야 옳다"고 제안했다. "진 장관 파문이 일방적 매도나 편파적 옹호를 떠나 보편적 잣대가 마련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맞는 말이다. '진 장관 문제'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의 의미'와 '국민의 정체성'에 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사안인 만큼 이 문제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당연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흥분부터 할 일도, 그렇다고 "자연스럽고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 만큼 대충 접고 넘어가서도 될 일도 아니다.
***'진 장관 영주권'이나 '아들 시민권'이 문제될 이유는 없어**
'진 장관 문제'에 대한 논란에서 먼저 분명히 하고 넘어갈 일이 있다. 진 장관 문제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영주권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주권은 국민의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다. 흔히들 영주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미국 영주권자를 생각하기 쉽고, 미국 영주권자 대다수(?)가 미국 시민권(미국 국적)을 얻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아 '미국 영주권 = 미국 시민권'으로 등치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영주권은 말 그대로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거주권'일 뿐이다. 사업 상의 이유 등으로 그 나라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부여하는 '장기 체류권'이다. 이들 장기 체류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각 나라는 영주권자에게 의료 보험 등 각종 사회적 편익을 내국인 수준으로 동등하게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주권은 어디까지나 영주권일 뿐 그 나라의 국민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등 참정권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따라서 진 장관과 그 가족들이 미국 유학 시절에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것을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진 장관 아들의 미국 시민권 또한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미국에서 출생한 진 장관의 아들과 다른 자녀들에게 출생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법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미국 정부가 '제멋대로' 한 일일 뿐이다.
일부 언론은 진 장관의 아들이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면서도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사실을 문제 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법은 30일 이상 국내에 거주할 목적으로 국내에 주거하는 국민들에게 주민등록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주민등록법 제6조). 하지만 해외 이주자들은 예외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해외 이주자란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을 말한다. 정부는 주민등록 사무지침(편람)을 통해 이들 영주권을 취득한 해외 이주자들에 대해서는 거주여권(외국 영주권을 취득한 재외국민에게 부여되는 여권)을 무효화시켜야만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진 장관의 아들은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이다.
진 장관 아들의 병역 면제 역시 '합법적'이다. 가족이 모두 외국 영주권자일 경우 병역법은 병역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에 장기 상주하는 재외국민의 처지와 형편을 고려한 병역 특례 조치인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가운데 우리나라 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 국민들이 병역을 면제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러나 귀국후 15년간 미국 영주권 유지한 이유는?**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진장관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과 병역 면제는 '자연스럽고 악의가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먼저 진 장관 부부의 미국 영주권 취득이나 그 자녀들의 미국 시민권 취득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자연스럽고 악의가 없는 것'은 그 취득까지만 그럴 뿐이다.
진 장관이 귀국하고서도 '15년' 동안이나 미국의 영주권을 계속 유지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진 장관은 귀국해서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갖고 정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일정 기간 이상 미국에 거주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영주권을 계속 유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는 미국에 돌아가 살 작정이었던 것일까? 이런 그의 처신과 행보를 '자연스럽고 악의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진 장관은 아들이 결국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은 다른 자녀들과는 달리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해명은 아들이 성인으로서 자신의 국적을 선택한 것인데 부모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설명으로도 들린다.
***진 장관 가족이 어느 나라 국민이기를 원했는가가 문제의 핵심**
사실 '진 장관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 장관과 그 가족들이 과연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했는지가 관건이다. 진 장관은 자신의 자녀들이 한국 국민이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미국 국민이기를 바랐던 것일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진 장관과 그 가족들은 '한국 국민'이기보다는 '미국 국민'이기를 선호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미국 국민' 혹은 예비 미국 국민인 '미국 영주권자'로서 '한국 국민'의 선택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고나 할까.
진 장관과 가족들의 이런 선택은 재일 동포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재외 국민은 1백7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외국 영주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재외 국민은 재일국민(재일동포)들이다. 재일동포 60만명 가운데 40만명 정도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이른바 민단계로 불리는 재일동포들이다(나머지 20만 명은 일본이 '조선'이라는, 국적 아닌 기호로 표기하고 있는 조총련계이다).
이들 재일 국민들은 모두 일본의 영주권자들이다. 이들은 일본의 온갖 차별과 귀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1세들은 물론, 2세나 3세, 4세 까지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철저한 동화정책과 차별정책으로 이들 재일 국민들의 귀화를 유도하고 있다. 재일 국민들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온갖 차별과 소외 속에서도 민족의 자존심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도 영주권을 취득하고도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 나라에 거주하고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것으로 족한 것이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재일국민들을 비롯한 재외국민들은 그 동안 정부가 재외 국민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등 국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재일동포인 이건우씨등을 비롯한 '재일국민참정권회복을 위한 시민연대'와 프랑스 주재 상사원들과 유학생은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외국민에게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것을 요구하고, 헌법 소원까지 냈었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또 통신과 교통이 발달해 외국에 있는 재외국민도 얼마든지 선거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마당에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재외국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들은 물론이고 필리핀이나 알제리 같은, 우리나라 보다 국력이 약하고 경제 형편이 어려운 나라들도 재외 국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여태껏 선거 관리상의 어려움을 들어 이들에 대한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영주권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를 비롯한 재외국민에게는 '병역면제' 등의 사유를 들어 국민 정서상 거부감이 있다는 이유로 선거권 부여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재일동포에게는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주민등록도 불허**
내가 알고 있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재일동포 3세인 이상은양 등 5명은 얼마 전에 행정자치부에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했다. 외국 영주권자이긴 하지만, 국내에 30일 이상 머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일동포들은 영주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민등록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해외이주를 위한 영주권자도 아니기 때문에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도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전자우편을 개설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활 상 여러 불편이 많다는 하소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의 답변은 차갑고도 단호했다. 외국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진 장관 문제'를 접하면서 가슴 한편으로 분노가 치미는 것은 바로 이런 일 때문이다. 일제 시대 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불가피하게 일본에 건너가 온갖 차별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만은 어떻게라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이들 재일 국민들이나, 설령 외국에 오래 거주해 영주권을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고집하고 있는 다른 재외 국민들의 국민된 권리과 편익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으면서도, 굳이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마다하는 특권층 사람들에게는 한량 없이 포용력을 발휘하는 이 전도된 현실과 빗나간 '글로벌리즘'이 황당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족 한마디 덧붙이자면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자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이 의심되는 인사를 장관 같은 주요 공직에 앉히는 일은 없다. 단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운영의 정체성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 가족이 모두 미국 국민이거나, 미국 국민이기를 희망하는 장관이 어느 나라를 위해, 누구를 위해 복무할까? 그에게 있어서 국익이란 어느 나라의 국익일까? 양자택일의 절대 절명의 국가 위기나 양국간 국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의 선택은 과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의 복리민복을 위한 것이 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그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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