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반대 데모 이래로 가장 큰 규모였다."
"인류의 양심(良心)들이 되살아났다"
1천만명이 참여해 지구촌을 "전쟁 반대!"(No War!)의 함성으로 달구었던 2.15 전세계 동시다발 반전집회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이곳 뉴욕 유엔빌딩 가까이에서 열렸던 반전집회도 주최 쪽에서 놀랄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뉴욕집회를 주도한 '평화와 정의 연합'(United for Peace & Justice)의 대변인 밥 윙은 "10만명쯤이 모일줄 알았는데, 50만명이 모였다"고 싱글벙글이었다.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경험자들**
언제나 그렇듯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느냐는 시비 거리다. 1.18워싱턴 반전집회 참석자 숫자를 놓고 경찰 당국은 3만, 주최 측은 50만이라 주장했다. 같은 날 열렸던 샌 프란시스코 집회도 경찰은 처음엔 4만-5만이라 했다가 나중에 10만에서 12만5천이라고 수정 발표했었다(주최 측 주장은 20만). 2.15 뉴욕집회도 주최 측은 50만, 경찰은 10만 정도다(뉴욕 현지 언론들은 대체로 20-25만 규모로 보도).
유대인 출신 뉴욕시장 불룸버그는 이번 2.15 뉴욕 반전집회 건으로 욕을 먹고 있다. 집회장에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가능한 한 막아보려고 경찰로 하여금 지나치게 거리 통제를 했던 탓이다. 밥 윙은 "불룸버그의 방해만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이 모였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주최 측의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려는 듯, "The World Says No To War"라 쓰여진 대형 걸개그림이 걸린 연단이 설치된 맨해튼 1애비뉴 52번가에서 북쪽으로 72번가까지 약 2km의 넓은 거리가 온통 사람들로 메워졌다. 시민들은 곳곳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젼과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연사들의 선창에 따라 "No War!" "Drop Bush Not Bombs!" "No Blood For Oil!" "No Slaughter For Oil!" 등의 구호를 외쳤다. <뉴욕타임스>는 성공적인 2.15 집회를 가리켜 "거리의 새로운 힘"이란 제목을 달았다.
필자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당히 많은 70대, 80대 노년층을 반전집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부인과 함께 반전집회 현장에 나온 케이시 알렌(81) 노인. "우리 부부는 60년대 베트남전쟁 때도 여러번 반전집회에 참석했었다. 그 당시 모든 반전 집회들이 대단했지만, 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사람들이 모처럼 많이 모인 특별한 날"이라 부인의 손을 맞잡고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노인들은 저마다 반전 메시지가 적힌 작은 피켓을 들고 "No War!"를 외쳐댔다. 집에서 정성 들여 만든 그 나름의 독특한 반전 피켓을 들고 나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아마추어 화가인 한 할머니는 "폭탄 대신 부시를 떨어뜨려랴"는 구호 아래 부시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떨어져 내리는 희화(戱畵)를 높이 쳐들었다. 반전 집회 당일 맨해튼의 날씨는 영하 5도. 바람이 불어 노인들이 하루 종일 바깥에 머물며 서 있기가 쉽지는 않은 날씨였다. 필자가 아는 미국 할머니 미리엄 코헨(83세)에게 당일 찍은 사진을 전자메일로 보내주자, 그 집회 때문에 감기가 걸려 누워있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코헨 할머니가 집회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었듯, 베트남전쟁 반대데모 당시와 달라진 것은 대중을 동원하는 데 인터넷이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집회가 열린다는 정보조차 모를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의 반전운동가들은 저마다 인터넷 홈 페이지를 개설해놓고 전자메일 홍보 등을 통해 보통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70개 반전단체들이 모여 이번 뉴욕집회를 이끈 http://www.unitedforpeace.org와 지난 1월 워싱턴 집회를 주도했던 http://www.internationalanswer.org다.
***20, 30대보다 비판의식 높아**
노년층이 반전 집회장의 주요 구성원을 이룬다?
서울의 동숭동에서 열렸던 반전 집회장과는 다른 모습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각종 여론조사를 들여다보면, 미국 노년층의 반전 의식이 20대나 30대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다수 여론은 아직 부시 행정부의 대 이라크전쟁 움직임을 지지하는 편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2.5 유엔연설 직후인 2월 6-9일 사이에 치러졌던 <워싱턴포스트>-ABC 공동 여론조사결과가 잘 보여준다.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벌이는 것을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1001명) 가운데 66%가 찬성을 했고, 31%만이 반대했다.
10명 가운데 6명 가까운 숫자가 "영국, 호주, 이탈리아 같은 우방이 미국을 지지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1월 하순에 50%대로 떨어졌던 부시의 대통령직 업무수행에 대한 지지도도 파월의 유엔 연설 영향을 받아 63%로 올라갔다(아주 지지 42%, 지지 21%, 아주 반대 21%, 반대 14%).
그러나 속내용을 보면, 부시를 지지하는 주요 구성분자는 미국 남부와 중서부에 거주하는 백인(특히 30대 남성)들이다. 흑백간에도 편차가 심하다. 백인의 부시 지지율은 68%(아주 지지 47%)로 높은 반면, 흑인은 33%에 머물고 있다(아주 지지 12%). 세대간에도 차이가 있다. 61세 이상의 노년층은 부시에 대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다. 30대 남성의 부시 지지율은 70%에 이르는 반면(아주 지지 48%, 지지 22%). 61세 이상의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부시를 덜 지지한다 (아주 지지 43%, 지지 15%). 부시의 이라크정책에 대해 30대가 69% 지지를 보낸 데 비해 61세 이상의 노년층은 58%에 머물렀다.
<워싱턴포스트>-ABC 조사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20, 30대 3명 가운데 2명이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61세 이상의 노년층 가운데 부시의 이라크전쟁 지지율은 절반을 조금 넘는데 그친다.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1966-1970년 사이에 이뤄졌던 갤럽 여론조사도 젊은 세대가 노년층에 비해 미 행정부의 베트남전쟁 개입에 덜 비판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이뤄진 여론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자료를 뒤적여보면서, 반전 집회장에서 많은 노인들을 만날 수 있는 까닭을 깨달았다.
***"미국이 전쟁을 쉽게 이긴 까닭에..."**
집회현장에서 만난 70대 초반의 제이미는 육군 헬기 조종사였다 퇴역한 예비역 중령.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경력을 지녔다. 부통령 딕 체니의 얼굴 위에다 'Got Oil?'이란 피켓을 들고 나왔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엔 별로 반전에 대해 깊은 생각을 못했는데,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 미군이 베트남에서 한 부정적인 행위들을 알고 나서 전쟁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자들이 모여 만든 '평화를 위한 예비역' (Veterans for Peace)의 열성회원이다. 그에게 있어서 반전은 곧 "미국적 가치의 하나인 평화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고 곧 애국"이다.
제이미 노인과 함께 나온 그의 친구는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전쟁을 마치 컴퓨터 시뮬레이션처럼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세대는 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었는가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1991년 걸프전쟁이나 코소보전쟁, 아프간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이 별로 죽거나 다치지 않고 전쟁을 이겼다는 사실 때문일까, 전쟁을 그리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이 이라크전쟁에 대해 찬성하는 배경에는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난생 처음 반전 데모에 참석해본다는 한 할머니도 만났다.
"나는 타고난 보수주의자여서 반정부 비판집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 개입이 아주 옳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데모에 나서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밀어부치는 것은 정말로 옳지 않다. 이라크 석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 만큼 미국이 절박한 문제에 부딪쳤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담 후세인이 지닌 무기가 문제라면, 유엔 사찰단에 더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이라크 인권이 문제라면, 사우디나 쿠웨이트 인권은 왜 문제가 안 되는가. 부시가 잘못하고 있다."
***반전 집회의 한계**
미국의 반전 집회도 몇가지 문제점들을 지닌 것으로 지적된다. 조직자들이 참가자들의 정치적 정서를 너무 앞질러 집회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연사들 가운데 흑인운동 출신이나 무슬림 출신 연사들, 또는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제국주의'(imperialism)라는 용어를 쓰기 일쑤다. 반전이란 공통분모를 지니긴 했지만, 단순히 "No War!"를 외치고자 나온 일반 미국 시민들이 듣기엔 얼마간 거북스런 용어다. 지난 1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반전집회에서는 등장 연사의 성향에 따라 흑백차별, 인디언 인권문제, 노동문제 등이 함께 거론돼 반전 초점을 흐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미국 반전운동의 한계라면 한계일 것이다.
2.15 뉴욕 반전집회를 앞장 서 이끈 '평화와 정의 연합'(United for Peace & Justice)의 대변인 밥 윙은 "그렇다고 여배우 수전 서랜든 같은 이른바 유명인사(celebrity)들만 연단에 세우고 직업적 운동가들을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 말한다. "워싱턴 집회 때의 경험을 살려 연사들에게 되도록 반전 초점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밝힌다. 보다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으려면, 그래서 높아진 반전 여론으로 부시행정부를 압박하려면, 초점을 반전에다 모아야한다는 판단에서다.
베트남전쟁 당시 반전운동가들 사이엔 이런 말들이 오갔다. "닉슨 대통령은 미식축구를 보는 데 빠져 반전데모를 볼 틈이 없다." 그러나 훗날 드러난 사실이지만, 닉슨은 "반전데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나"에 상당한 촉각을 세우고 있었고, 1973년 파리평화회담을 통해 미군 철수 결정도 반전데모로부터 영향이 작용했다.
안타깝게도 부시는 닉슨이 아닌 듯하다. 2.15 반전 집회 이틀 뒤(2월 17일) 실린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반전집회에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2월 17일은 '대통령들의 날'(Presidents' Day)이라 해서 공휴일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속내는 편치 않을 것이다. 반전 데모 참가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그 때문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 "전쟁보다는 사찰기간 연장" 쪽으로 흔들리고 있고...
관련 링크 http://www.unitedforpeace.org,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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