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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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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 무엇이 문제인가?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4>

검찰이 성폭력 예방을 명분으로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밝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검찰과 경찰은 각각 관련 법안과 장비 등을 준비해 놓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얼핏 듣기에 이는 강간, 폭력범죄의 위협을 받는 여성들을 위해 획기적인 뉴스일지 모른다. 그러나 범죄자 검거가 용이해진다는 점을 들어 이를 환영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은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DNA를 채취해 이 중 각 개인마다 고유한 유전자 부위를 분석해 특정한 유전자형(profile)을 만들어 저장해 두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저장된 정보는 범죄 현장에서 수거돼 분석된 DNA정보와 비교해 범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쓰이게 된다. 분석에 사용될 수 있는 DNA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 머리카락, 혈액 등에서 뽑아낼 수 있고 심지어는 범인이 사용했던 장갑, 흉기, 유리창에 찍힌 지문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

범죄예방을 위한 이러한 획기적인 신기술에 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먼저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은 특정 범죄자들에 대한 강제적 DNA 채취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재범률이 높다는 이유를 들어 이미 죄 값을 치른 범죄자들의 DNA를 국가가 강제로 채취해 보관하는 것은 범죄의 재발을 전제하는 것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기 ‘신체 일부’를 강제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유전자 정보은행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국가의 강제적 DNA 채취에 맞서 샘플 반환 소송이나 ‘양심적 DNA 거부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NATURE |VOL 418 | 8 AUGUST 2002 585page

인권침해 논란 못지 않게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개인유전정보의 남용 가능성이다. 유전자 은행을 적극 찬성하는 일부 인사들은 유전자 감식에 사용하는 DNA부위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전정보와 상관이 없고, 저장된 정보는 전적으로 개인식별에만 쓰일 수 있는 것이기에 그로부터 다른 정보를 얻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물론 컴퓨터에 저장되는 정보는 식별 정보이다. 하지만 신원확인에 사용되는 DNA부위와 다른 정보(예컨대 개인의 건강상태에 관한 정보)의 분석에 이용되는 DNA부위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석위치가 다를 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분석 후 남은 DNA 샘플들이다. 만약 감식 후 남은 DNA를 완전히 폐기한다면 유전정보의 남용 위험성은 줄어들겠지만 일반적으로 차후의 검증 목적이나 신기술 적용을 위해 계속 보관하게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남겨진 DNA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유전정보를 추출할 수 있고 이런 정보들은 신원확인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보관중인 DNA에 대한 접근이나 외부 반출을 법으로 규제할 수 있겠지만 작은 튜브에 담겨 있으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DNA의 보관 속성상 남용 여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유전자 정보은행은 일단 설립되고 나면 그 속성상 수집되는 정보의 범위가 확대되거나 다른 정보은행과 연동되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어서 문제는 더욱 커진다. 외국의 유전자 정보은행의 사례를 보면, 처음에는 대부분 정보은행 설립의 이유를 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 살인이나 강간범 같은 흉악범의 DNA만을 저장하지만 나중엔 사소한 절도나 사기범에 대해서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 상황도 언뜻 보기엔 강간범 같은 일부 범죄자만 포함될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만 입력해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어 입력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뉴욕주를 보더라도 설립 초기엔 입력 대상 범죄가 21개였지만 1999년에는 비폭력 범죄를 포함해 107개로 대폭 확대되었다. 일부 주에서는 미성년자, 교통법규 위반자들에 대한 DNA 채취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의 개인식별 자료들은 다른 신상정보나 신원확인용 유전자 은행들과 연동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가가 소유한 다양한 개인 정보들이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연동, 통합되는 것처럼,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의 경우에도 머지 않은 미래에 미아, 이산가족, 군대와 같은 각종 신원확인용 유전자 정보은행과 연동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검찰은 미아 찾기 유전자 정보은행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법무부가 마련한 법안도 범죄자 정보은행을 행방불명자의 신원확인과 같은 행정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우려를 제기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주요 선진국들이 이미 범죄자 대상의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립해 ‘별탈없이’ 운영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과 우리 나라의 상황을 단순 비교해 정보은행의 긍정적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범죄자 정보은행의 설립을 놓고 이미 사회적 논쟁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저장된 유전정보의 활용범위나 운영방법(입력대상, 샘플폐기 여부 등) 등에 대한 나름의 합의를 도출해 내었다. 또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프라이버시보호법과 같은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 나라는 정치공간이 폐쇄적일 뿐 아니라, 전국민 주민등록번호제도와 지문날인제도를 전산화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전세계적으로 흔치 않는 강력한 국가감시체계를 갖춘 나라이다. 이렇게 특수한 식별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유전정보까지 국가가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과연 국가기관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 문제는 국가에 의한 개인 유전정보의 수집, 그리고 이로 인한 유전적 프라이버시 침해와 연결해 폭넓게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유전정보의 활용 정도에 비해 유전자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부족한 편이고 이에 따라 개인의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일부 법과학자들에 의해서 논의가 주도되면서 기술적 우수성만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가 기술적 강조만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여부는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논의 한 후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 칼럼을 매주 쓰게 될 'Citisci Group'은 모두 5인(강양구, 김명진, 김병수, 김병윤, 안성우)으로, 자연과학ㆍ공학과 인문ㆍ사회과학, 학계ㆍ연구소와 시민운동, 제도권과 비제도권, 학생ㆍ직장인과 룸펜ㆍ백수 사이의 경계를 어지럽게 넘나들고 있는 인간들의 종잡을 수 없는 집단이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주류적 관점에 피곤함을 느끼고 이를 갈아치울 수 있는 이론과 실천을 모색중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는 citisci@jinbo.net이라는 경로를 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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