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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후세인 독재의 희생양들을 죽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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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후세인 독재의 희생양들을 죽이려 한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1> ‘미국의 양심’ 하워드 진의 이라크전쟁 비판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MIT대학)와 더불어 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ㆍ보스턴대학)은 미국의 진보적인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움직임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왔다. 최근(1월 10일) 미 공영방송 PBS <지금>(Now) 프로그램의 진행자 빌 모이어스는 하워드 진을 초청, 이라크전쟁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필자

***"이라크전쟁은 석유 때문"**

PBS(빌 모이어스)= 이즈음 PBS는 멀지않아 벌어질 가능성이 큰 이라크와의 전쟁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어왔다. "테러리즘과 전쟁"(Terrorism and War)이라는 새 책을 펴낸 하워드 진은 잘 알려진 역사학자이고 보스턴대학 교수다.
그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했고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왔다. 그의 여러 저술 가운데 "미국 민중의 역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공식기록에서 소외되어온 사람들의 관점에서 쓰여졌고, 1980년 출판된 이래 미국내 반체제 이념의 바탕이 돼왔다. 오늘 그에게 테러리즘과 이라크에 대한 견해를 들어본다. 하워드 진, 당신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곧 벌어질 것으로 보는가.

하워드 진= 내 느낌으로는 이라크와의 전쟁이 곧 벌어진다. 부시행정부는 누가 반대하더라도 이라크전쟁을 벌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국제사회와 미 국민들이 아무리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더라도,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전쟁을 벌일 태세다. 나는 이 나라(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아우성 치기는커녕,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PBS=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을 벌인다면,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공식적인 발표로는 사담 후세인의 대량파괴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하워드 진, 당신은 부시행정부가 무슨 이유로 이라크전쟁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는가.

하워드 진= 대량파괴무기 때문이라는 부시행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사담 후세인은 독재자이지만 한때 미국이 키웠던 독재자다. 미국은 그동안 (보편적 인권보다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제3세계의 많은 독재자들을 용납해왔다. 그들이 권력을 쥐도록 (은밀히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돕기도 했다. (80년대 이란-이라크전쟁 때 이뤄진) 사담 후세인의 생화학무기 개발도 미국이 도왔다.

북한은 이라크보다 훨씬 많은 대량파괴무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는 전쟁을 벌일 것 같지 않다. 결국, 내 생각엔 석유가 이라크전쟁의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그밖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부시행정부가 사담 후세인을 미워하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겠고... 부시행정부는 미국이 세계 제1의 슈퍼 파워라 믿고 있고, 이라크전쟁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후세인이 핵무기 갖고있다 해도..."**

PBS= 당신이 이라크전쟁 반대론을 거두어 들일 만한 (이를테면, 사담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로 미국을 공격하려든다는) 어떤 증거를 부시행정부가 내놓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지...

하워드 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다면, 미국은 수천 수만,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지만, 어쩌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미군이 이라크전쟁에서 죽이게 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희생자인 이라크 국민들이다. 바로 이런 측면이 나로 하여금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도록 도덕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정당한 전쟁(just war)에 대한 도덕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는 균형(proportionality)이다. (사담 후세인 독재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전쟁의 목적이 아무리 도덕적일지라도 (많은 이라크국민들이 희생돼) 균형이 깨진다면 우리는 전쟁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PBS=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들 말한다. 테러리스트들은 9.11 테러공격으로 많은 민간인들을 죽였다. 이 부분이 이라크전쟁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된다고 보지 않는가. 부시행정부는 미국이 테러를 당하고도 가만있는 종이 호랑이(paper tiger)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데...

하워드 진= 내가 알기로 많은 미국 시민들이 9.11 테러공격과 이라크전쟁을 맞바꾸는, 다시 말해서 두 사건을 등치(等値)시키려는 부시행정부의 태도를 달갑게 보지 않는다. 두 사건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테러리스트들이 미 국민을 가능한 한 많이 죽이려든다지만, 단순히 사람 목숨만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 초강대국인 미 제국(American empire)도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드러내면서 (아랍국가에 적대적인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돕고, 세속적이고 친미독재왕조인 사우디와 쿠웨이트를 돕는)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정치적 목적 아래 그들은 9.11 테러공격을 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지금 부시행정부는 거꾸로 이라크 국민들을 죽이려 한다.

PBS=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체제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비판해왔는데...

하워드 진= (웃으면서) 지금 이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은 나쁜(evil) 나라들이 있다. 부시가 악의 축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할 이유가 인권침해라면, 부시는 (이라크전쟁으로 고생하고 목숨을 잃을) 수많은 이라크 국민들의 인권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지구상에는 지금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AIDS같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부시행정부는 그런 비참한 현실을 바로 보지 않고 (엉뚱하게 이라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그저 잔돈푼이나 적선하듯 던져주면서, 이라크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PBS= 만약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개발중이라는 확신을 품는다면, 이라크전쟁에 대한 당신의 반대 견해를 바꿀 것인가.

하워드 진= 그렇지 않다. 나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어딘가에 감추고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해도, 그런 사실이 즉각 전쟁을 벌여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라크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는 주변이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미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가 대량파괴무기를 쓴다면 미군의 공격을 받아 절대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일 것이다.

***드레스덴 폭격의 무차별성**

PBS= 전쟁을 반대한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쿠웨이트를 비롯한) 이웃국가들을 침략하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라크 독재자를 전쟁말고 어떻게 몰아내야 하나.

하워드 진= 국제연합(UN)을 통해서다. 유엔헌장은 어떤 국가도 (적국이 침략해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리 공격한다는) 예방전쟁론을 내세워 전쟁을 벌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껏 미국은 많은 경우 대화로써 전쟁을 피해왔다. (이란혁명 직후인 1980년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해 일어났던) 인질사건도 전쟁이 아닌 협상으로 풀었다. 옛소련과 대화로 위기를 풀지 않았더라면 핵전쟁으로 수천만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PBS= 당신은 테러리즘의 위협이 심각하다고 보지 않는가.

하워드 진= 물론 나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요점은 한 국가를 폭격한다고 해서 외부의 위협을 없애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9.11 뒤 아프간에서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테러리즘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PBS= 만약 당신이 미국 대통령이라도, 9.11 테러공격을 받은 뒤 방어(self-defense) 차원에서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했을 걸로 보는데...

하워드 진= 미국이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미국을 공격했나. 공격자들이 머물고 있는 나라 전체를 폭격하는 것은 방어가 아니다. 그것은 무차별적인 폭력(indiscriminate violence)일 뿐이다. 빈 라덴이 미 보스턴 남부에 숨어있다고 치자. 그래서 그곳을 폭격했다고 치자. 그래서 1천명이 죽었는데, 빈 라덴은 어디론가 도망쳤다. 현실은 이 모양이다.

PBS= 당신은 2차대전 때 공군조종사로서 독일 군과 시민을 겨냥, 폭격에 나섰던 전력이 있는데...

하워드 진= 그 전쟁은 그야말로 미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해둘 점이 있다. 만일 당신이 공중폭격에 나선다면, 9천 미터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 당신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지르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사지가 어떻게 잘려나가는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별다른 거리낌 없이 다음날 또 폭격에 나선다. 그리고 또다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이것이 현대전쟁의 본질이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도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나는 독일의 드레스덴에 대한 영미 공군기의 무차별 공습으로 죽은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1945년 2월, 독일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뤄졌던 드레스덴 폭격은 2차 대전 중 연합군이 저지른 만행으로 일컬어진다. 당시 13만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이유로, 지금껏 수많은 민간인들이 폭격으로 죽었다. 전쟁은 관련 당사자들을 무자비하게 만드는 속성을 지녔다.

***"전쟁 비용, 지구촌 돕는 데 써야"**

PBS= 비전투원(민간인) 희생자가 생기는 탓에 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는 것이 당신의 결론인가.

하워드 진= (웃으면서) 그렇다.

PBS= 그런 이유로 당신이 평화주의자가 됐나.

하워드 진= 아니다. 나는 '평화주의자'란 용어를 쓰고 싶지 않다. 그 용어에 담긴 수동적인 의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평화주의자'란 지구상 어디에선가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로 여긴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같은 독재자 처리문제와 더불어 전세계에는 (빈곤, 굶주림, AIDS같은) 많은 다른 심각한 문제들이 놓여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지말고 다뤄야 한다. 그러나 전쟁을 벌여선 안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전쟁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낳아왔다.

PBS= 미국이 테러리즘과 어떻게 싸워야 한다고 보는가.

하워드 진= 미국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군사적 초강대국에서 인도주의적 초강대국(humanitarian superpower)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은 다른 제3세계 나라들에 비해 훨씬 부강하다. (천문학적인 국방비에다 쏟아 붓는 대신) 아프리카에 의약품을 보내는 데 그런 부(富)를 써야 한다. 지구촌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써야 한다.

PBS= 이라크전쟁이 며칠 지나면 곧 터질 것 같다.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 걸로 보는가.

하워드 진= 나는 역사가다. 역사가는 앞날에 대해 잘 모른다. 다른 사람들처럼 추측할 뿐이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라크전쟁이 곧 터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국시민들이 이라크전쟁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시 대통령이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생겨날 희생자들, 그 숫자가 아무리 적을지라도 그런 희생자들에 대해 부시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필자 김재명씨는 국내 언론에서 십수년간 기자로 활동했던 중견 언론인으로 현재 미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 분쟁지역들(발칸 4회, 중동 3회, 동티모르, 캄보디아, 시에라 리온,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페루 등)을 취재한 르포 기사들을 국내 매체에 기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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