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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언론개혁

이효성의 언론마당 <19> "정부 주도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은 우리 사회의 다수가 변화와 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낡은 정치 청산"을 표방했던 그의 당선으로 정치는 이미 바뀌고 있으며 앞으로 더 크게 바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치 못지 않게 변화와 개혁이 요구되는 분야의 하나가 언론계다. 우리 언론 특히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몇몇 대신문들은 과도한 권력을 남용하면서 언론의 정도에서 너무 많은 일탈을 했기 때문이다.

87년 6월항쟁 이후로 정치의 민주화와 함께 사회 여러 부문에서 개혁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잘못된 관행의 정상화, 특권의 폐지, 권력의 민주화와 분산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이들 대신문은 개혁을 통해 민주적인 언론으로 거듭나는 대신 잘못된 관행을 계속하면서 정치권력의 약화를 틈타 정치권력에 버금가는 언론권력이 되었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특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정상적인 언론이라 부를 수 없는 일탈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들은 정치를 제3자적 입장에서 보도하는 정치의 관찰자 또는 감시견에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정치에 개입하여 정권을 창출하고 호령하고자 하는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세력으로 행동했다.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신 수구적인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사실을 조작ㆍ왜곡하는 편파보도를 통해 수구세력을 위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고, 수구세력에 유리한 판세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간ㆍ이념간ㆍ세대간 분열을 조장했고, 진보적인 고위 공직자를 좌경 친북 세력으로 낙인찍어 낙마시키는 등으로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해서 이런 언론들은 개혁되어 마땅하다. 그 권력집중을 막고 언론의 정도를 걷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언론개혁을 주창하고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부에 의한 언론개혁은 언론장악이나 언론탄압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오해되기 쉽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일탈적인 언론이고 그래서 개혁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언론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순간 언론은 그에 저항하며 언론자유를 위한 순교자로 둔갑할 수 있다.

2001년에 있었던 국민의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부의 정당한 조세권 발동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연후에 이루어진 탓에 이들 신문은 이를 언론탄압으로 몰았고,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따라서 아무리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해도 정부가 언론개혁을 주창하고 언론개혁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언론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는 일이야말로 절대 금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누구보다도 언론개혁에의 의지가 강하다. 그 점은 최근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을 취소시킨 공정위의 조치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를 지시한 점에서 잘 드러났다. 노 당선자의 주위에는 노 당선자만큼 언론개혁에의 의지가 강한 사람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설령 그런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조중동을 표적으로 한 쾌도난마적인 언론개혁을 추진하고픈 유혹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이번 대선에서 입증되었듯이, 이미 의제설정력과 여론지배력을 상당량 잃어버렸다. 그런 언론을 상대로 판을 벌여줄 필요가 없다. 정부가 그들을 표적으로 언론개혁에 나서면 나설수록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언론장악을 위한 기도로 몰아 여론의 동정을 구하게 될 것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온갖 일탈적인 행태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성하고 거듭나는 대신 권력의지를 버리지 않은 채 권토중래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들은 노무현 정권과 일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말려든다면 어리석다.

둘째는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나서서 조중동을 개혁하고자 해도 취할 수 있는 혁신적 조처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일가의 특정 신문 소유지분 제한, 특정 신문의 시장지배력 제한, 소유와 편집의 분리와 편집권의 독립 등이 조중동을 개혁하기 위한 핵심적인 개혁조치들로 운위된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관련법을 개정해야 가능한데 조중동이 대변해온 한나라당이 국회의 절대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관련법의 개정은 무망하다.

그렇다면, 언론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개혁의 대상인 언론 자신이어야 할까. 정부가 언론의 일탈을 지적하고 자율개혁을 강조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자율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이나 조직은 흔히 자기 정당성을 믿고, 자신의 특권이나 기득권을 정당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잘못이 없고, 자기의 기득권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면 고칠 것도 없게 된다. 일탈적인 신문들이 반성 대신 시대착오적인 '야당지'를 자임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정부가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율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면, 언론개혁은 무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일탈적인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언론이 권력의지를 드러내면 낼수록 그것을 견제하는 움직임도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언론개혁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쟁점의 하나가 되었다. 일선 언론인들의 모임인 전국언론노동조합, 기자협회 등의 언론단체는 언론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비판적인 언론학자와 지식인과 일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들이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민언련, 언개련 등 언론개혁운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시민운동단체를 결성하여 언론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 이들은 또 언론권력화의 상징인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많은 운동단체들도 만들어 맹렬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언론개혁에 관한 한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이들 일선 언론인 단체나 언론학자나 언론개혁 시민운동 단체들이 나서서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다. 그리고 그런 여론을 토대로 정치권이 언론개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예컨대, 국회에 여야의원, 언론학자, 언론단체 대표,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언론발전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여기서 언론개혁안에 관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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