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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에 측근은 없다"

<데스크 칼럼> '어제의 측근'이 '오늘의 측근' 돼선 안돼

"측근은 없다."

국내 굴지의 대형금융기관의 CEO가 한 말이다.

그는 2만여명의 임ㆍ직원을 거느린 큰 조직의 수장이다. 그는 그러나 이 가운데 20여명의 임원들에 대해서만 연초마다 한 차례씩 인사권을 행사한다. 나머지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은 이들 임원에게 넘겨주었다.

"뭐하러 골치 아프게 모든 직원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나. 인사철마다 잡음만 생길 뿐이지. 그 대신 임원들에 대해선 서릿발 같은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 측근 운운하며 인정에 끌려선 안된다. 이렇게 엄격히 인사권을 행사하면 이들을 통해 2만여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수 있다."

***해마다 실적에 따라 '측근' 교체**

이 금융기관의 CEO가 된 뒤 그는 구조조정, 합병 등 많은 일을 했다. 이 과정에 그를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운 임원들도 있었다. 당연히 조직 안팎에서는 누구누구가 CEO의 핵심측근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핵심측근으로 거명된 한 임원은 "사정을 모르는 소리"라고 펄쩍 뛰며 부인했다.

"우리 CEO에겐 측근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아무리 지난해에 큰 공을 세웠어도 올해에 잘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 CEO는 연말이 되면 임원들을 하나씩 불러 수고했다며 보너스 봉투를 건네준다. 그러나 방에 내려와 봉투를 열어봤을 때 보너스 액수가 형편없으면 조용히 짐을 싸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무서운 분이다."

문제의 CEO는 평소 "내 후임은 외부에서 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임원들에게 현재 하는 일 이외의 딴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속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실적에 따라 '측근'을 교체함으로써 '측근'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이 CEO 특유의 인사 비법(秘法)인 셈이다.

***"교수 백명보다 회계사 한명이 낫더라"**

"교수 백명보다 회계사 한명이 낫더라."

내로라 하는 한 경제시민단체의 전 최고책임자가 한 말이다. 이 시민단체는 경제정의 실현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던 교수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져 지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적 위상을 구축한 전문NGO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 초기부터 교수들과 함께 이 조직을 이끌어온 이 책임자는 지금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의 잘못된 관행을 싸워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싸울 것인가라는 문제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대방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로 중무장한 세력이다. 이들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에게도 그들 못지 않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실제로 모 재벌과 싸우는 데 회계사 한 분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참여했다. 그때부터 싸움의 국면이 확 달라졌다. 문제 재벌의 재무자료 등을 분석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파헤쳐냈다. '야, 이래서 전문가들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전문역량들을 모을 줄 알아야 한다."

***'어제의 측근'이 '오늘의 측근'이 돼선 안돼**

정권교체기를 맞아 '인사'가 각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특히 인수위 인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그렇다 보니 인사를 놓고 벌써부터 상당한 잡음이 일고 있고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인사는 만사(萬事)일 수도, 망사(亡事)일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인사는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신중함에 신중함을 더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무현 당선자는 최근 당에서 파견할 인수위 실무진 인선을 놓고 인수위 책임자들을 크게 질책했다. '다면평가'라는 인사 원칙을 무시했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당 안팎의 여론을 의식, 핵심측근 3인의 인수위 파견도 백지화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적잖은 혼란을 느끼게 한다.

역대 당선자보다 상대적으로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 당선자 입장에서 보면 인사가 상당한 난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노 당선자가 참조할 수 있는 몇몇 원칙이 앞의 CEO와 시민단체 최고책임자의 '인사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우선 측근을 없애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제의 측근'이 자동적으로 '오늘의 측근'이 돼선 안된다. '오늘의 측근'이 '내일의 측근'이 되어서도 안된다. 측근들이 언제나 긴장감을 갖고 일에만 매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측근이라 불리는 것이 도리어 영전에 장애물이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다음은 두루 전문가를 영입하는 일이다. 한나라당 이회창씨의 정계은퇴로 노 당선자를 위협할 정치적 라이벌은 당분간 출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DJ 집권초기보다 크게 유리한 대목이다. 광범위한 인사 탕평책, 그 중에서도 노 당선자의 최대 당면현안인 외교와 경제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실물 전문가들을 삼고초려의 정신으로 대거 영입하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것이야말로 노 당선자가 '성공한 국가CEO'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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