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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3492원, 여기서마저 해고되면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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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3492원, 여기서마저 해고되면 갈 곳이 없다"

화장실도 없는 경비실에서 24시간, 아파트 경비원의 현실

아파트나 연립 빌라 단지 등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경비원들. 회사에서 퇴직한 이들이 생계를 위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상당수는 24시간 교대로 고된 노동을 하지만 '하는 일 없다'는 빈축도 자주 듣는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동 현실을 살펴봤다. (편집자)

아파트 경비원 절반 이상은 60세가 넘는 고령자다. 그들은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높은 강도의 일을 한다. 지난 2007년 고용노동부는 이런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최저임금의 70% 지급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경비원의 임금을 높이도록 정했다. 원래 방침대로라면 경비원들은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100% 적용받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 고용노동부는 경비원과 같은 감시·단속직 노동자에 대해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전면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던 방침을 3년 유예해 2015년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100% 적용이 3년 유예된 배경에는 관리비가 늘어날 것을 걱정한 아파트 주민의 입김이 크다. 그다지 하는 일도 없는 경비원의 임금을 높일 이유가 없다는 것. 하지만 과연 그럴까.

"화장실도 없고 바람도 막지 못하는 경비실"


ⓒ인권오름
지난 10일 찾은 서울 중구 모 아파트 경비실. 2평 남짓한 공간 이곳저곳에는 택배 박스가 쌓여 있었다. 몸 둘 공간은 책상 의자뿐이었다. 그마저도 등받이가 없다. 아파트 경비원 김철호(가명·68) 씨는 불편한 자세로 몸을 기울여 아홉 개로 나누어져 아파트 곳곳을 비추는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김 씨가 있는 경비실에는 화장실이 없다. 이 아파트의 경비실 여덟 곳 중 절반에만 화장실이 있다. 김 씨는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다른 경비실에 들러서 볼일을 보고 온다"며 "경비실을 비워둘 수 없으니, 빨리 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초조하다"고 말했다.

계약상에는 식사 시간을 포함해 하루 3시간을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쉬는 시간을 줘도 김 씨는 갈 곳이 없다. 김 씨는 "화장실도 없는데 탕비실까지 바라는 건 무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경비실에 있는 수밖에 없지만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TV와 신문이 모두 금지되어 있다. CCTV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김 씨는 "휴식시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겨울이 되면 경비실에서 오들오들 떨며 버텨야 하는 김 씨였다. "겨울에는 저걸로, 여름에는 천장에 달린 선풍기 한 대로 버틴다"며 한쪽에 놓인 히터를 가리켰다. 그는 "제대로 된 난방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창문 바람막이라도 제대로 설치돼 있으면 좋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 씨가 일하는 경비실 창문은 70년대에 만들어진 나무로 돼 있어 외풍이 심했다.

잠시 눈을 붙이기에는 등받이 없는 책상 의자가 너무 불편하다. 그 와중에도 민원은 계속해서 들어온다. 아파트 주민은 경비원에게도 휴식시간이 보장돼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일 안 하고 뭐하느냐'는 다그침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는 것은 포기한다. 김 씨는 "얼마 전, 작은 TV를 구해와 휴식시간 동안 책상 밑에 숨겨두고 본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치 그 모습이 멀리서 보기에는 조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경비가 졸고 있다'고 바로 관리사무소에 주민의 민원이 들어왔죠. 민원이 들어오면 경위서를 써야 하고, 경위서 3번이면 퇴출입니다. 이젠 그마저도 못해요."

김 씨는 하루 두 번 아파트 주변을 청소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금방 쌓이는 낙엽 때문에 아무리 청소를 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 김 씨는 "그래도 온종일 눈을 치워야 하는 겨울이나, 화단마다 물을 뿌려 줘야 하는 여름보단 조금 낫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변 순찰도 하루 두 번씩 돈다. 한번 순찰을 할 때마다 아파트 복도에서 지하주차장과 아파트 옥상까지 꼼꼼히 살핀다. 가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위험한 장난을 치는 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분리수거를 한다. 구분해서 버릴 수 있도록 해놓았지만 그것을 지켜주는 주민은 드물다. 쪼그려 앉아 300명이 버린 이틀 치 쓰레기를 일일이 구분해서 버리다 보면 무릎부터 허리까지가 시큰하게 아파져 온다.

"경비 일은 '속 내장까지 다 꺼내놓고 해야 하는 일'"

경비 일은 몸만 고된 게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 권형만(가명·69) 씨는 아파트 주민에게 인터폰을 할 때는 연신 굽실거린다.

"혹시나 아래층에서 위층 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연락이라도 오면 위층에 연락해서 '혹시 오늘 손님이 오셨나요. 집이 소란스럽다고 하네요. 조금만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하고 아래층에 또다시 연락해서 '아이를 키우는 처지를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하죠."

300명에 달하는 주민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특히나 층간소음과 같이 주민 간의 문제일 경우, 권 씨가 중재역할을 해야 해서 더욱 괴롭다. 권 씨는 경비원 일을 "속 내장까지 다 꺼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경비원 일마저 잃으면 당장 살 길이 막막한 김 씨는 "주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고 말했다.

"먼저 인사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웃으며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죠. 젊은 사람에게 반말을 듣는 일도 많고. 나도 사람이니 당연히 상처를 받지만 혹시 언쟁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100% 경비원 책임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합니다."

아파트 주민에게 배달되는 택배도 조심해야 하는 대상이다. 하루에 보통 스무 개 이상의 택배가 온다. 명절 때는 백 개가 넘을 때도 있다. 권 씨는 "무거운 물건은 주민이 직접 가져가지 않고 경비원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권 씨는 택배를 배달하고 나면 허리부터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 못 듣는 권 씨였다.

"24시간 꼬박 근무…사실상 휴식 시간 없어"

지난달 김동배 인천대 교수가 100가구 이상으로 구성된 전국 440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아파트 경비원에 대해 진행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전국 아파트 경비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의 97%가 24시간 동안 근무하고 하루를 쉬었다.

아파트 경비원 박평호(가명·69) 씨는 "12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하면 집에서 잠을 잘 수 있겠지만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 두 배로 드는 출퇴근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24시간 교대가 인수인계하기에도 쉬우므로 대부분 경비원들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한다.

박 씨가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한 달에 15일을 일하고 받는 월급은 110만 원. 시급으로 따지면 3492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4320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그나마도 박 씨는 용역회사 소속이라 월급의 약 10%를 소개비 명목으로 용역회사에서 가져간다. 게다가 용역회사는 임금을 덜 주기 위해 '휴식 시간'이라는 꼼수를 사용한다.

경비원이 근무하는 24시간 중 점심시간 30분, 저녁시간 30분을 포함해 총 3시간을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시간은 월급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쉴 곳도 없고 자리를 비우는 동안 대신할 사람도 없어서 이름뿐인 '휴식 시간'이다. 경비원들은 "돈 주기 싫어서 만들어놓는 휴식시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 씨가 이런 것을 모르는 건 아니나 여기를 그만두면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다.

"해고되면 갈 곳이 없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은 30만여 명. 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 100% 지급을 유예함으로써 12%인 3만6000명의 해고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관리비 인상을 우려한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 해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3년 뒤, 또다시 최저임금 100% 지급 시한이 다가오면 그땐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명확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노동부는 60세 이상 고령자를 일정비율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안을 통해 고용 유지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비원 박평호 씨는 20년 전, 번듯한 의류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러다 부도를 맞았고, 빚도 생겼다. 빚을 갚기 위해 막노동을 했다. 그마저도 나이를 먹자 힘이 모자랐다. 시장판에 나가서 물건을 팔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았다.

시장 일은 막노동보다 힘이 덜 들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았다. 장사가 아주 안되는 날에는 밥을 굶기도 했다. 박 씨가 돌고 돌아 자리 잡은 곳이 경비원 일이었다. 그렇게 얻은 경비 일인지라 여기서 해고되면 갈 곳이 없는 박 씨다.

그렇기에 최저임금도 못 되는 돈을 받고도 아파트 주민에게 굽실거리며 힘들게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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