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계곡 저편 활터에서 허공을 가르는 살을 보면 가슴속에 한줄기 청량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 얘기 주제는 활이다. 우리 민족이 어찌하여 유난히 활쏘기에 능한지, 음양 오행을 빌어 얘기하고자 한다.
고구려의 벽화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 민족은 고래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한 민족이었다. 활은 거의 우리 민족의 장기(長技)이고 국기(國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활쏘기와 말타기는 원래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장기는 아니다. 중국에도 고대의 주(周)나라 이래, 군자가 반드시 배워야 할 과목으로 육예(六藝)라는 것이 있었다. 그 내용은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이다. 그 중에 사와 어가 바로 활쏘기와 마술이었다. 이로서 중국 문명을 창출해 낸 사람들 역시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로 들어오면서 사냥을 위해 개발된 활은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위대한 병기로서 오늘날의 미사일(missle)에 해당된다. 위협적인 사냥감이나 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range attack) 무기이어서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공용(功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겠으며, 활을 사용한 이래 인류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바라다보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 그 무섭던 맹수들을 만만히 보기 시작한 것이다.
화살촉은 처음에 돌을 예리하게 깎아서 사용했다. 청동기 시대 이후에는 금속제로 변해갔지만, 훗날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몽고 기병대의 화살촉은 여전히 돌로 만든 것이었다. 동시에 인류는 말을 기동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대규모 기동전이 시작되었다. 이제 활과 말은 사냥의 수단이 아니라, 부족이나 나라 사이의 첨단 전쟁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활에 대해 음양 오행의 관점에서 설명해보자. 활은 앞서 말했듯이 허공을 격하여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무기로서 그 본질은 불(火)에 해당된다. 오행상 하늘은 불이기 때문이다. 저번에 비행 조종사들의 사주에 관해 얘기하면서 뛰어난 파일롯트는 일간이 불인 경우가 많다고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동방 갑목(甲木)의 나라이기 때문에 목생화(木生火)하여 전진하는 기상이 있으므로 당연히 불을 좋아하고 무기에서도 유독 활을 능기로 하는 것이다. 월드컵 당시의 붉은 악마 역시 불과 태양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다.
그리고 말 역시 음양 오행 상으로 불에 속한다. 12지를 동물에 비길 때, 말이 오(午)에 해당되어 불이란 것이 아니라, 말의 뛰어난 기동성 때문에 불이라 하는 것이다. 12지를 동물에 비긴 것은 근거가 그다지 이치에 맞지 않는 속설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일치하고 있을 뿐이다.
활도 불이고 말도 불이니 우리 민족은 당연히 기마와 궁시(弓矢)에 능한 민족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강역이 한반도 내로 쪼그라들면서 말이 귀해지고 동시에 주자학의 독재가 가져온 폐단으로 무(武)를 경시하면서 우리 민족이 말타기를 거의 포기해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주자학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념의 독재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말을 타지 않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그 바람에 우리의 상무 정신이 무뎌지고 기동성이 줄어든 것이 아쉬운 것이다. 우리 민족은 말타기를 포기했을 때 역사의 탄력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나의 소원’에도 ‘독재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이 계급 독재이고, 계급 독재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 철학을 기초로 하는 독재’라는 내용의 글귀가 있었다고 기억나는데, 실로 탁견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독선(獨善)이 정치권력과 결합하면 이념의 독재가 되는 것으로서 필자가 실로 진저리치는 것이다. 그같은 독선에서 벗어나려면 늘 깨어있어야 하고 늘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장기가 활이라고 얘기하면 영국도 옛날 정복왕 윌리엄이 헤이스팅즈 전투에서 장궁(長弓, long bow)대를 활용하여 대승을 거둔 전례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겠지만, 영국의 롱 보우는 우리의 맥궁에 비하면 정말 게임도 아니 되는 활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를 제패한 양궁은 서양식 활로서 정확성과 명중도가 높게 개량되었지만, 그것은 실전용이 아니다. 서구인들이 중심이 되어 올림픽을 개최하다 보니 양궁이 종목으로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궁이 우리의 맥궁보다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맥궁(貊弓)은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활로서 짐승의 뿔로서 만들어졌는데, 그 성능이 뛰어나기로 동아시아 일대에 명성을 날렸던 활이다. 맥궁은 훗날 각궁(角弓)의 원조가 되었다. 맥이란 한반도에 살던 우리 민족의 갈래로서 맥이라 하지만 사실 그 발음은 백이고, 원 발음은 ‘밝’이다.
b가 m으로 자음 교체된 것을 지금도 맥이라 읽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우리 민족은 태양의 민족이고 ‘밝’의 민족인 것을 자기 이름도 모르고 쓰고 앉았으니, 쯧쯧쯧! 나중에 발해만의 난하 일대에서 옮겨온 선진의 동이 사람들, 즉 단군 조선의 사람들과 합쳐져서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룬 사람들로서, 맥(貊)이란 짐승을 뜻하는 글자와 백(밝)이란 글자가 합친 것인데, 사냥을 주로 하던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니, 당연히 활에 능했을 것이다.
각궁은 나중에 물소뿔로 만들어진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지금 전통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활도 바로 각궁이다. 그리고 우리의 활은 원래 말에 탄 채 달리면서 사격하는 용도로 쓰였던 것이다. 바로 무용총의 수렵도가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
저 멀리 적군이 있으면 다가가서 활을 쏴대다가 적이 접근해오면 후퇴한다. 후퇴하면서도 말안장에서 뒤로 돌아앉은 채 여전히 활을 쏴대니 다가오는 적은 계속 피해가 발생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쟁 기술이었다. 말에서 이 같은 고난도의 기술을 발휘하려면 중심을 받쳐주는 등자가 필수적이다.
등자란 말에 탔을 때, 발을 얹어놓아 중심을 받쳐주는 마구이다. 서양에서는 AD 13세기 이후에야 개발되었지만, 아시아의 기마대들은 진작부터 등자를 쓰고 있었다. 고구려의 기병들도 물론 사용하고 있었고, 고분에서 출토된 바도 있다.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의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등자의 발명이 인류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는 내용을 방영했는데, 사실 잘못된 내용이었다. 서양에서는 중세에 등자가 나오기 전까지 기사들은 사실 말 위에서 제대로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말에 타고 있다가 전투 시에는 말에서 내려 대결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등자의 발명으로 마상 기마전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구는 몽고 기병의 침입으로 비로소 등자를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등자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기원 전후해서 이미 사용하고 있었으니, 동아시아의 기마 궁병대가 얼마나 막강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의 기사군단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 역시 몽고의 기마 궁병대였고, 중국의 한나라가 무서워했던 흉노의 부대 역시 기마 궁병대였다. 그리고 과거 만주 벌판을 지배했던 고구려 역시 주력이 기마 궁병대였다.
돌아가서 우리의 각궁이 뛰어난 점은 그 뛰어난 충격 흡수성에 있다. 나무나 철로 만든 단순한 활은 쏠 때마다 충격이 궁사의 팔에 무리를 주어 장시간 사격하기가 어렵지만, 각궁은 화살을 내고 난 후의 반동력이 활 자체의 탄성에 흡수되어 없어져 버린다.
거기에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에 없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편전(片箭)이다. 애기살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편전은 그 명칭이 고려전이라 부르기도 했다. 편전은 그 길이가 일반 화살의 절반 정도인 짧은 살로서 특수하게 제작된 통(‘통아’라고 한다)에 넣어 발사했다.
통아를 거쳐 화살을 발사하므로 화살의 탄도가 안정되고 사정 거리가 일반 화살의 두 배에 달했다. 동시에 관통력도 뛰어나서 상방으로 쏘는 곡사(曲射)가 아니라 직사(直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니 일종의 캐논(cannon) 포였다. 속도가 워낙 빨라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기에 피하기도 어려워, 일본이나 중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비밀 병기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편전의 사법(射法)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대에 워낙 이 편전을 비밀 무기로 했기에 널리 퍼지지 않았고, 선비들이 즐기는 풍류놀이로서의 활쏘기는 살이 날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즐기는 것인데, 편전은 그런 풍류보다는 실전용이라, 비행 궤적이 빠른 탓에 잘 보이지가 않았기에 실전되고 말았던 것이다. 최근 일부 뜻 있는 국궁 애호인들이 그 사법을 이리 저리 연구하면서 재현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동양 3국을 비교하면, 우리는 활이고, 일본은 칼이며, 중국은 창이었다. 우리는 갑목이라 불을 좋아하니 활이었고, 일본은 을목이라 금(金)의 기운을 따라서(乙庚化金) 칼에 능했다. 그래서 단병 육박전에서는 일본의 무사가 으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무토의 나라인지라 자루가 긴 창을 주 병기로 삼았던 것이다.
활에 관해 얘기하다 보니 남은 얘기가 너무도 많지만, 어느덧 끝낼 때가 된 것 같다.
우리의 국기인 활쏘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국의 활터에서 적지 않은 애호인들이 활을 쏘면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활이 말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주었던 상무 정신과 역사의 탄력성은 이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갑목의 민족으로서 불을 좋아하는 기풍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으니 지난 여름의 붉은 악마가 바로 그것이다.
각궁이나 편전의 실제 모습을 보시려면, 용산에 있는 전쟁 박물관에 가시면 된다. 아주 잘 만들어진 다양한 활과 살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호탄으로 알려진 화살, 즉 쏘면 소리가 나는 효시(嚆矢)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전쟁박물관에서 처음 편전을 대하고 나서 아니 이렇게 짧은 화살이 있었단 말인가 하고 신기해했었고 그 바람에 활에 대해 더욱 관심이 생겼었다.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늘 활터에 나가 푸른 창공에 살을 날려보고픈 마음 가득하다. 언젠가 꼭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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