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잘 이용하는 방법-2:
'뛰어난 의사', '친절한 의사', 그리고 '좋은 의사'**
의사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의사’를 고르는 안목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뛰어난 의사, 친절한 의사, 그리고 좋은 의사’라는 작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다루는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철저한 공부를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의학 교육은 충분히 실력이 ‘뛰어난 의사'를 양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신설되어 교수진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한 의과대학이 예외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의학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신 의학지식과 첨단 의료장비로 무장한 의사들이 일하고 있는 병원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상황에서 실력이 ’뛰어난 의사‘를 찾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일부 오지의 경우에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또한 최근에는 각 병원마다 친절한 병원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친절한 진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CS(고객 만족)이라는 용어를 백화점이나 호텔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병원에서도 쉽게 듣게된 것도 친절한 진료를 위한 병원의 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개인병원의 경우에는 치열한 환자 유치경쟁 때문인지, 예전과 같은 의사들의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는 거의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즈음에서 과연 실력이 ‘뛰어난 의사’나 ‘친절한 의사’가 꼭 ‘좋은 의사’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레지던트 수련과정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말씀드리는 것이 여러분들이 ‘좋은 의사’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개의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님들의 진료 시간이 오전/오후로 나누어져 있고, 많은 수의 환자를 한정된 시간안에 진료해야 하므로 환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라는 말도 생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경우에도 환자가 꼭 알아야할 정보에 대해서는 설명을 끝내야만 진료를 마무리하는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왜 힘들게 그렇게 진료를 하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두가지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레지던트의 교육을 위해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네도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이런 진료 태도는 꼭 배워야 하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피부병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잘 알아야만 치료를 꾸준하게 받아서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교수님의 진료 태도에 대한 환자분들의 반응이었는데, 대개는 무섭고 불친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정말 환자를 위하는 의사인데, 환자들은 엄격한 태도의 그 교수님을 무섭게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분이 친절하지 않고 약간은 어렵다는 환자의 느낌에 동감하지만, 교수님의 진료와 치료에 대한 철학에 대해서만큼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환자의 구미에 맞추어 적당히 하는 진료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설명하고, 치료는 꼼꼼하고 철저하게 하는 것이 의사의 기본적인 자세이며 그 기본에 충실한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친절하고, 환자에게 딱딱하지만 성실한 의사가 가장 이상적인 '좋은 의사'일 겁니다. 하지만 의사도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고 따라서 환자들이 의사를 고를 때에도 완벽한 '좋은 의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기준으로든 한명의 주치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런 경우에 실력, 친절함, 성실성 중에서 어디에 더 가중치를 두고 의사를 평가해야 할까요?
먼저 의사의 ‘실력’에 대해 살펴볼까요?
지금의 우리나라 의학교육체계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라면, 진료나 수술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환자나 보호자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친 의사가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전문의 수료과정은 이미 전국적으로 표준화돼 있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전문의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실력 차이라는 것은 백지장 한두장 차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너무 전문의의 실력을 평가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문의가 된 다음에도 얼마나 더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많은 지에 대한 평가는 별개일 수 있습니다.
‘좋은 의사’의 두 번째 평가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친절’입니다.
친절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환자의 불평을 아무런 말도 없이 미소지으며 들어주는 의사는 친절하게 보입니다. 반대로 환자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의사, 듣기 싫은 말일지라도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려 노력하는 의사는 오히려 불친절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소만 지으며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의사보다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의사가 '좋은 의사'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 오히려 환자의 병을 고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없는 미소보다는 딱딱한 잔소리가 의사의 미덕(美德)입니다.
마지막으로 의사의 성실성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자신이 맡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질환에 대한 정보(질병의 원인, 경과, 치료법, 예후, 예방법등)를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꼼꼼하게 설명을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그 일을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진료뿐 아니라 치료나 수술을 할 때, 그 과정이 반복적이고 지루할 지라도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실한 의사라야만 이런 반복되는 일을 싫증내지 않고 잘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의사’의 기준은 실력, 친절함, 성실성 외에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력 ,친절함, 성실성을 모두 갖추었다면 정말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의사가 드물다면 이런 평가 요소중에서 중요한 요소를 먼저 고려해 의사를 선택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교수님은 아마 ‘좋은 의사’의 기준으로 '성실성'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역시 ‘좋은 의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력이나 친절함보다는 ‘성실성’에 두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피부과 전문의로 9년째 진료를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얼마나 '좋은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자신있게 ‘좋은 의사’노릇을 하고 있다고 답할 수는 없지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항시 잊지않고 있습니다.
그 교수님은 잘 웃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그 분이 환자에게 하는 잔소리는 무심한 의사의 친절한(?) 미소보다 훨씬 값지고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웃기만 하고 별 다른 설명이 없는 의사보다는 표정이 좀 덜 친절해보여도 환자에게 많은 설명을 해주는 의사를 고르셨다면 비교적 '좋은 의사'를 골랐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귀를 즐겁게하는 말이 몸을 망치게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좋은 의사’를 고르는 기준을 ‘좋은 대통령’의 기준으로 바꾸어 생각해보아도 괜찮을 것 같네요. 유권자들의 말초적 감각만을 즐겁게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체(國體)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더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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