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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이심전심', 젊은세대는 '노심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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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이심전심', 젊은세대는 '노심초사'?

<데스크 칼럼> 정운경 화백의 적대적 '세대대결론'을 보고

"누굴 찍을 건가?"
"그런 거 뭘 물어. '이심전심'이지. 젊은 세대는 '노심초사'거든."

나이든 노인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불콰하게 취한 어느 뒷골목 술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선거 얘기가 아니다. 7일자 중앙일보 35면 사회면 우측 상단에 자리잡은 정운경 화백(67)의 '왈순아지매'에 나오는 만화대사다.

***'정치적 복선'은?**

왈순아지매 남편이 중년의 샐러리맨 동료에게 묻는다. "누굴 찍을 건가?"

동료가 왈순아지매 남편과 나가면서 답한다. "그런 거 뭘 물어."

함께 택시를 탄 뒤 동료가 말한다. "'이심전심'이지."

이어 길거리의 젊은이들 다섯명을 그려 놓은 뒤 "젊은 세대는 '노심초사'거든."

여기서 말하는 '이심전심'은 이회창 후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이심(以心)'이 아니라 '이심(李心)'인 것이다. 또 '노심초사'란 노무현 후보를 가리킨다. '노심초사(勞心草思)'의 '노심(勞心)'이 아니라 '노심(盧心)'인 것이다.

고사성어를 교묘히 이용해 기성세대는 이회창 후보를 밀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노무현 후보를 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셈이다.

문제는 과연 정운경 화백이 이날 4단컷 만화를 통해 단순히 최근 대선 추이의 한 측면만 말하고자 했는가이다. 그 이상의 '정치적 복선'은 깔려있지 않은 것인가.

***독자들의 울분섞인 반응**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은 정 화백 만화를 본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독자들의 반응이 읽힌다. 이날 실린 정 화백 만평에 대한 의견달기에는 몇몇 독자들의 분노어린 글이 실려있다.

"왈순아지매 오늘 만화는 분명히 선거법 위반인 것 같다. 선관위는 뭐 하나?"
"세상은 변하는데...(정)운경님 세대가 영원히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젠 젊은 우리 세대가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전하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알겠는데...너무 유치해서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드디어 결심했다. 23년 구독의 중앙일보를 끊기로! 오늘 왈순아지메가 결심을 굳혀 주었다. 독자는 당신들이 생각하듯 끄는 대로 따라가는 바보가 아니다."

이같은 독자 반응이 전체 독자의 뜻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운경 화백의 만화를 '통쾌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웬 난리냐"는 글을 올린 독자도 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만화를 본 독자들은 정 화백이 단순히 '사실 전달'만 하려 한 게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이 만화에서 정화백의 '정치적 입장'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의 노예"**

경북 안동 출신으로 올해 67살이 된 정운경 화백은 현재 중앙일보 고문을 맡고 있는 중앙일보의 간판스타 중 한명이다.

중앙일보는 그동안 수차례 이번 대선에서의 정치적 중립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경우 각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는 일이다. 정 화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는다는 것과, 그것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선을 열흘 앞둔 예민한 시점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입장의 건전성 여부다. 정 화백의 만화를 보면 '세대간 적개감', 더 나아가 '적대적 세대대결' 구도가 읽힌다.

이번 선거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세대대결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니, 기성세대는 당연히 이회창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가 읽히는 만화를 마음대로 그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정운경 화백이 불편부당을 지향하는 언론인이라면 말이다.

67세라는 정 화백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의 이같은 관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령의 한계까지 초월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의무이자 책무다. 스스로 '나이의 노예'가 된다면 언론이라는 공간에서 물러서야 할 때가 된 게 아니냐는 고민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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