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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들어간 '조흥은행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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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카운트다운 들어간 '조흥은행 해법'

정부 "정치논리 배제, 경제논리로 풀겠다"

"바뀐 것은 없다. 조흥은행 매각은 예정대로 밀고 나간다."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가 조흥은행 입찰제안서 마감일인 2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29일 민주당과 재경부의 힘겨루기**

지난달 29일 재경부와 민주당은 한차례 눈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했다.

이날 민주당은 조흥은행 매각을 대선후에 하기로 재경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대책본부 노동위원회는 조흥은행 매각에 대한 노 후보 입장을 밝히라는 금융노조 질의서에 "조흥은행의 독자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분히 연말대선을 의식한 제스처였다.

당연히 정부가 발끈 했다. 재경부는 즉각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노무현 후보측의 독자생존 주장에도 크게 반발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조흥은행의 매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여러 사항을 잘 따져서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걸음 발을 뺐다. 민주당측은 이어 "노사정 합의 당시 조흥은행이 독자생존하도록 약속했다는 것은 조흥은행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문을 닫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민주당의 후퇴는 정부의 반발외에 조흥은행 매각 반대라는 입장발표가 연말대선을 의식한 '정치논리'의 작동이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결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간 힘겨루기에서 일단 정부가 승리한 양상이다.

정부는 지난 24일 한나라당의 조흥은행 조기매각 반대에 이어 29일 민주당까지 반대입장을 밝히는 등 연말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권의 잇딴 개입발언이 나오는 데 대해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표가 아쉬운 사정은 이해 가나, 경제에 정치가 개입하려는 구태의연함을 계속 보이는 데 대한 일종의 환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IMF사태를 겪었음에도 정치권은 여야 할 것없이 IMF사태에서 배운 게 없어 보인다"고 냉소했다.

정부는 오는 12월19일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조흥은행 문제는 경제논리대로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경부,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

조흥은행 지분 80%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인 정부는 2일 네 군데 입찰자로부터 입찰 제안서를 받는다. 정부는 매각과정에 한점 의혹이 없게 이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방침이며, 이미 입찰자들로부터 이에 대한 동의를 구한 상태다.

정부는 입찰 제안서가 접수되면 오는 11일 조흥은행 매각을 위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원회를 소집키로 했다. 이날 매각소위에서 곧바로 조흥은행 문제가 결론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둘다 난리니, 일단 12.19 대선이 끝난 뒤 매듭을 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말을 넘기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다.

현재 입찰경쟁은 신한지주 컨소시엄과 서버러스 컨소시엄 양파전으로 압축된 양상이다. 둘다 조흥은행 지분 50%이상을 인수, 경영권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최근의 경합상황과 관련,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강 경합구도를 내심 즐기고 있다는 증거다. 경쟁을 벌이는 당사자들이야 죽을 맛이겠으나, 정부 입장에서 보면 매물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경쟁이 진행되면, 조흥은행에 투입한 2조7천억원과 3천억원의 부실채권 매입비용 등 도합 3조원의 원리금은 물론 투자수익까지 건질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정부는 주당 6천원을 받으면 원리금 회수가 가능하고, 그 이상을 받으면 투자이익까지 거둘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흥은행의 이유있는 항변**

정부는 그러나 조흥은행을 단지 '가격조건'만으로는 매각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미 입찰자들에게 가격조건 외에 인수후 경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경영 플랜'도 함께 제출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정부가 이처럼 주문을 한 것은 조흥은행 임직원들을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 입찰자들은 '경영 플랜'을 통해 조흥은행 경영권 인수후 인원정리를 비롯해 경영 자율성 문제 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상세히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흥은행 입찰자들이 인원정리 문제 등에서 유연한 태도를 가져주기를 희망하는 눈치다. 조흥은행 임직원들의 반발에도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흥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신들이 정부의 지분 매각조치에 반발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IMF사태 발발후 조흥은행의 부실은 5조5천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공적자금은 부실의 절반인 2조7천억원이 투입돼 부실을 털어내는 데 쓰였다. 나머지 부실 2조8천억원 가운데 2조여원은 그후 조흥은행 임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털었다. 앞으로 더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은 6천억~7천억원 정도다. 이것도 내년이면 다 갚을 수 있다.

이런 마당에 조흥은행을 다른 은행에 매각하겠다니 직원들이 7백여명이나 삭발을 하고 은행의 중추인 지점장들이 무더기로 사표를 쓸 정도로 열불이 나는 게 아니겠나. 정부는 조흥은행의 이같은 심정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같은 조흥은행측 울분에 대해 정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나서 입찰자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게 정부생각이다. 그 대신 입찰자들이 조흥은행 분위기를 정확히 읽고 이에 대한 플랜을 먼저 제시토록 한다는 게 정부생각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조흥을 향한 신한과 시버러스의 러브레터**

정부 희망대로 실제로 최근 들어 조흥은행 인수를 희망하는 신한지주 컨소시엄과 시버러스 컨소시엄은 조흥은행 임직원을 겨냥한 제스처를 내놓기 시작했다.

시버러스 컨소시엄의 참여자인 제일은행의 로버트 코헨 행장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우리는 인수합병할 때 대상이 되는 기관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조흥은행은 역사가 깊고 존경할만한 금융기관"이라고 말했다. 조흥은행 인수시 감원 등이 없을 것임을 시사하는 노골적 발언이었다.

제일은행은 지금 조흥은행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처지다. IMF 구제금융의 반대급부로 미국의 힘을 빌어 제일은행을 헐값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후 제일은행 사세가 나날이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요인을 털어내는 데에만 주력했을뿐, 시장상황 변화에 따른 공격적 영업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 들어 전체 시중은행 가운데 영업이익이 가장 적을 정도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따라서 무슨 수가 있더라도 조흥은행을 인수해 여기에 제일은행을 합침으로써 '반전'을 도모하지 않으면 투자수익은커녕 원금마저 찾기도 힘들다는 게 지금 코헨 행장을 비롯한 뉴브릿지 캐피탈측이 느끼는 위기감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흥은행 임직원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조흥은행을 인수하겠다는 게 제일은행의 속내다.

제일은행이 끼어들기 전만 해도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던 신한지주도 입찰이 양파전으로 압축되자, 우회적 통로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조흥은행측에 전하기 시작했다.

신한지주가 현재 내놓은 제안은 경영권을 인수하더라도 조흥은행을 일방적으로 피인수합병하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는 것이다.

신한 관계자에 따르면, 신한지주는 조흥은행 경영권을 인수하면 이 은행을 신한은행과 합치지 않고 일단 신한지주회사 산하의 독자적 은행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즉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한 지주회사 밑에 병존하는 '형제은행'으로 자리매김해 상당 기간 동안 독립적이면서도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럴 경우 감원은 결코 급한 사안이 아니며, 우선 시스템이 동일해 합치기 쉬운 전산부문부터 통합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조흥은행이라는 '이름'도 존속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한 관계자는 신한증권이 굿모닝증권을 인수한 뒤 새 증권사 이름을 '신한굿모닝증권'이라 명명한 점을 주목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흥은행 임직원의 자존심을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의미다.

***조흥은행 문제, 경쟁력 측면에서 접근해야**

이같은 인수희망자들의 잇따른 '화해 제스처'에 조흥은행측은 일단 만족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싸운 보람이 있어 일단 일방적으로 피합병되는 사태를 막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지난주말 노조가 조흥은행 거래 1백대 기업의 여신 자료를 되돌려준 것도 이같은 상황판단의 산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 상황이 순탄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는 조건만 맞으면 이번에 반드시 조흥은행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흥은행에 대해서도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이번 문제를 보기를 희망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과 손 잡는 게 경쟁력 측면에서 우위에 서는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조흥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조흥은행의 고민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고민은 많다. 마음 같아선 혼자 독자생존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홀로 살 수 없을 만큼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현실도 인정 안할 수 없다.

만약 제일은행과 합친다면 모든 면에서 조흥은행이 순식간에 조직을 장악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제일은행은 실패작이 아닌가. 뉴브릿지 캐피탈은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다는 명분아래 고객들을 쫓아냈다.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외형을 확장시켜야 하는 은행 경영의 기본상식을 무시한 결과 지금 제일은행은 시중은행들 가운데 가장 처지는 은행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실패한 경영진이 합병의 주도세력이 된다는 점은 솔직히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신한은 제일은행보다 여러 모로 앞선다. 하지만 과연 신한이 조흥은행을 일방적으로 흡수합병할 수준인가는 의문이다. 또한 각종 전문기관들이 조사한 은행 브랜드 가치를 보더라도 1백5년 역사의 조흥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신한보다 앞서고 있다. 단, 동일기종을 택하고 있는 전산부문에서는 신한이 조흥보다 약간 앞서 있는 점은 인정한다. 신한이 과연 이같은 장단점을 모두 인정한 뒤 '대등합병'을 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조흥의 반발을 단순한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지 말고, 보다 냉철한 관점에서 접근해주기를 희망한다."

***정운찬 총장, "전윤철팀, 전임자들보다 소신 뚜렷해"**

이처럼 '조흥사태'는 극한갈등을 거치면서 서서히 접근점을 찾아가는 양상이다. 과연 이번 진통이 옥동자를 낳는 생산적 진통으로 결론지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단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조흥은행 문제는 경제논리로 풀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개입은 독(毒)이 될뿐이다.

소신있는 경제학자인 정운찬 서울대총장은 지난주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와 관련, "전윤철 부총리는 전임자들에 비해 소신이 뚜렷해 보인다"고 긍정적 평가를 했다. 정치논리등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부치는 스타일이 좋아보인다는 평가다.

과연 전윤철 경제팀이 주위의 이같은 기대대로 합리적이면서도 소신있는 '조흥은행 해법'을 찾아낼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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