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는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지, 국민을 위한 운동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두 대에 걸쳐 명확히 확인했다."
박태준(TJ) 전 총리의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 YS-DJ 집권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는 주장이다.
***"민주화는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다"?**
TJ는 이날 낮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청암회 송년회에서 인사말을 하던 중 이같은 주장을 했다. 청암회는 박 전 총리의 아호인 청암을 따서 지어진 'TJ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날 모임에는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를 비롯해 김용환 이양희 이재선 의원, 자민련 송광호 의원, 신국환 산자장관, 한영수 지대섭 김칠환 김고성 전 의원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TJ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최근 자신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배경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DJ정부 5년간의 정치.경제.남북.외교.교육정책을 모두 '실패'로 규정한 뒤 "결국 그동안 민주화를 외치고서 정권을 잡은 분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민주화세력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에서 새 대통령을 뽑을 상황을 맞았지만 이 다음 또다시 혼란이 조장되면 정말 구제불능이 된다"며 "이번에는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에 의해 선택이 이뤄져야 하겠다"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재차 밝혔다.
TJ는 그러나 그 자신이 DJ정부 상반기에 국무총리까지 지낼 정도로 깊게 관여한 대목을 의식한듯 "지난 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결정한 날을 전후해 제가 동분서주했던 기억을 한다"며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했는데 이후 이 정권이 이 나라를 어떻게 해 놓았느냐"고 자신에 대한 공동책임론을 반박했다.
***TJ에게 이런 비판 할 자격 있나**
TJ의 이같은 발언은 그가 박정희시대 포철신화의 주역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할 수 있는 비판'이라는 평가도 나오며, 실제로 개발연대 세대 중에서는 이런 비유를 하는 이들이 TJ 말고도 많다.
한 예로 최근 중앙일보 정운경 화백은 사단컷 만화에서 일본의 10년 장기불황을 경제적으로 '잃어버린 10년'에 비유한 뒤 YS-DJ 집권 10년은 정치적으로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다른 개발연대 세대들은 몰라도 최소한 TJ만은 함부로 이런 얘기를 해서는 안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TJ야말로 DJ정부의 최대수혜자 가운데 한사람이었기 때문이다.
TJ는 YS 집권기에는 철저히 소외됐다. 92년 대선과정에 YS를 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결과 그는 YS집권기 동안 부정축재 혐의를 받고 집까지 차압되는 정치탄압을 받으며 일본에서 서러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때 그에게 정치복권의 기회를 준 게 DJ였다. DJ는 대선이 임박한 97년 9월29일 도쿄로 TJ를 찾아가 협조를 구했고 TJ가 이에 응함으로써 양자간 공조체제가 구축됐고, 여기에 JP(김종필)가 합류함으로써 이른바 'DJT 연합'이 출범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TJ, "한나라당은 없어져야 할 정당"**
DJ는 집권후 TJ에게 최대한 예우를 다했다. JP가 DJ정부의 초대총리가 되자, TJ는 자민련 총재가 됐다. 이때 한나라당이 총리 인준을 거부하며 제동을 걸자, 범여권은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빼냈다. 이 과정에 가장 큰 득을 본 쪽이 자민련이었다. 탈당파들이 대거 자민련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TJ는 "한나라당은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는 말까지 서슴치 않으며 자민련 덩치부풀리기를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TJ를 공적 1호로 지목하기까지 했었다.
TJ는 또 DJ의 '기업구조조정 전도사'임을 자처하며 재벌들에게 '빅딜'을 압박했다. 빅딜은 그후 DJ정부의 대표적 경제정책 실패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TJ는 그후 JP가 총리직에서 물러나자 DJ정부의 2대 국무총리가 됐다. DJ는 TJ총리 재직기간중 반드시 일주일 한두차례 그와 독대해 정책을 함께 풀어나갔다. DJ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론의 검증과정에 과거 부동산투기 의혹이 드러나면서 중도하차해야 했다.
TJ는 그후 신병을 치료하느라 국내에 거의 있지 않았다. 그 사이에 DJ는 3홍비리로 상징되는 친인척 및 가신비리로 철저히 망가졌다.
연말대선이 다가오자 그를 향한 각정파의 영입 노력이 있었고, 얼마 전 그는 이회창 후보를 택했다. 26일 청암회 모임에서의 발언은 이같은 선택에 따른 불가피한 발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TJ 정도의 정치거물이면 최소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이번 발언을 접한 이들의 지적이다. 권력의 한 중앙에서 권력의 수혜를 입었던 인물인 까닭이다. 그의 발언은 또하나의 '감탄고토'가 아니냐는 게 한때 그를 존중했던 이들의 한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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